임제(林悌)
작성: 김세호(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진재교(성균관대 교수, 윤문)
분류: 일반주제
◆기본 정보
임제(林悌, 1549∼1587)는 조선 전기 문인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 등이다. 15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해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점차 치열해지던 시기에 호탕한 기질과 자유분방한 성격, 남다른 기상을 드러내며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고, 예교나 유교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작가 생애
임제는 젊어서부터 자유분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하며 풍류를 즐기고 살았다. 1571년(선조 4) 23세에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이때부터 술을 끊고 공부에 뜻을 두었으며 성운(盛運)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에 전념했다. 1577년(선조 10) 29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흥양현감(興陽縣監)‧예조정랑(禮曹正郎)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본래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관직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1587년(선조 20)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들에게 제왕의 나라에 태어나지 못하였으니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작품 세계
임제는 평생의 행적이 보여주듯 호탕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었다. 안석경(安錫儆)은 “우리나라에 임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걸지사(豪傑之士)다. 소년 시절에 시로 이름났고 호를 백호자(白湖子)라 하였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살이에 얽매이지 않고 보검과 준마로 변방을 치달렸다. 병법을 이야기하기 좋아했고 의기도 상쾌했다”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임제의 작품에는 파격적이거나 호방한 성격을 지닌 작품들이 다수 나타난다.
임제의 시문집으로 『임백호집(林白湖集)』이 전하는데 모두 4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부터 권3까지는 시(詩)가 수록되어 있고 권4에는 문(文)이 수록되어 있다. 시문은 주로 자신의 기개가 세상과 맞지 않음을 알고 벼슬에 뜻을 끊은 뒤 유람을 일삼으며 비분강개한 심정을 풀어낸 작품이 많다.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결과 전국 각처의 승려들에게 준 시가 많이 전하는데 권2의 「매당자명록(梅堂煮茗錄)」이 그러하다. 「금선요(金仙謠)」는 불교의 이야기를 도가적 분위기로 풀어낸 장시로, 신비롭고 호탕한 느낌을 주는 걸작이다. 여기에 일찍 죽은 큰딸을 애도한 「망녀전사(亡女尊詞)」는 특히 절절하고 간곡함이 마음을 울린다. 또한 「자만(自挽)」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인데, 풍류 사십년 세월에 자신의 죽음을 슬프하기 보다 속세를 벗어나 신선세상으로 가는 과정을 읊조리고 있다.
특히 임제는 「증기(贈妓)」, 「증옥정(贈玉井)」, 「희증탐라기(戱贈耽羅妓)」와 같은 기생 관련 시를 많이 남겼다. 다만 저자가 명기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조상했다는 시조는 문집에 실려 있지 않다. 황진이의 묘에 조상했다는 일화는 이덕형(李德泂)의 「송도기이(松都記異)」에 소개되어 있다. 이덕형은 “사문(斯文) 임제는 호걸스러운 선비이다. 일찍이 평안도평사가 되어 송도를 지니다가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글을 지어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제사지냈는데, 그 글이 호방하여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외워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특히 변방의 말직으로 돌며 경험한 벼슬살이의 쓰라림,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 그 시대에는 드물게도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두루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보고 우러난 풍류의 정서를 모두 시로 남겼다.
산문작품으로 본격적인 최초의 제주기행문인 『남명소승(南溟小乘)』을 지었다. 소설로는 「수성지(愁城誌)」‧「화사(花史)」‧「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과 같은 문제적인 작품을 남겼다. 모두 그가 마주한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불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급제해 벼슬살이에 나선 첫 3년 동안에 지은 것들이다. 허구적 기법을 활용했지만 「수성지」(1576)에 그려진 충신과 간신의 대립이라든가 군주〔天君〕를 수심에 빠뜨리는 상황 등은 당대 정치현실의 생생한 반영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생이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는 내용으로 충절을 말한 「원생몽유록」(1576)은 몽자류 소설을 한 차원 높였다. 이에 더해 당대의 금기인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것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금기를 넘어 동시대 사람들은 이에 공감하여 국역본까지 만들었는데, 사대부만 아니라 부녀자 층까지도 폭넓게 읽었다.「화사」(1578) 또한 식물세계의 여러 꽃을 군왕과 신하로 의인화하여 현실사회를 풍자하고 이상사회를 향한 소망을 피력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백호가 30세 되던 해에 쓴 것으로, 당쟁이 격화되어 동서 대립이 심각하던 시절이다. 이중「수성지」는 중세의 이념을 의인화하여 소설로 포착한 이념소설이자 사상소설로 한문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허균(許筠)은 백호의 문학을 두고 “인류문자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이다. 천지간에 이 문자를 얻지 못했다면 하나의 결함으로 될 것이다”라고 했다. 백호 문학이 없다면 오백년 조선 문학이 충만하지 못했으리라는 이 격찬의 발언은 백호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는 언급이다. 자신의 임종 자리에서 약소국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곡을 하지 말라고 호령한 남다른 기상과 기생의 연시를 대신 써줄 만큼의 빼어난 감수성과 정감을 표출하여 낭만적 정취를 한껏 살렸다. 이미 임제의 시와 산문은 모두 당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활달하고도 섬세한 그의 시와 산문 세계는 비할 데 없이 독창적이다.
임제는 평생에 걸쳐 절친하게 지냈던 인물들은 대개 방외의 무리이거나 불우한 이들이 많았다. 시로 교분을 맺은 승려는 이름이 명기된 자만 50명이 넘고, 시회 등으로 함께했던 이달(李達)‧양대박(梁大樸)‧양사언(楊士彦) 등은 모두 서얼 출신이다. 황진이의 묘에 곡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그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임제는 행적에서 보듯이 당시 정형화된 시풍에서 탈피하여 조선의 노래를 지향한 작품을 지었고, 특히 조선의 고유명사를 시문에 구사해 우리나라의 풍물을 포착하는 등 당대에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자료
『임백호집(林白湖集)』: 임제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는 신흠(申欽)과 이항복이 지는 서문이 있는데, 이항복의 서문은 1607년경 초고를 편차한 뒤 지은 것으로 앞뒤가 없어진 결문이다. 임제의 작품으로는 권1부터 권3까지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4에는 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임서(林㥠)의 발문이 실려 있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임제 저, 임형택․이현일 번역, 『백호시선』창비, 2011.
임제 저, 신호열․임형택․서한석 편역『신편 백호전집』, 창비, 2014.
이종묵, 「白湖 林悌 漢詩의 文藝美學」, 진단학보 96, 2003, 101-121.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grpId=&itemId=MO&gubun=book&depth=2&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O_0243A [한국고전종합DB] 『임백호집(林白湖集)』 한국문집총간
http://db.itkc.or.kr/dir/item?grpId=hj#dir/node?grpId=hj&itemId=MI&gubun=book&depth=3&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I_0243A[한국고전종합DB] 『임백호집』 해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63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제 [林悌]
Im Je (林悌, 1549-1587)
1. Introduction
Im Je was a literary man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origin of his family is Naju (羅州), his courtesy name is Jasun (子順), and his pen names are Baeko (白湖) and Punggang (楓江). He passed his civil service examinations and began his public service in 1577, during a time when the political factional strife between the Easterners (東人 dongin) and the Westerners (西人 seoin) was intensifying. However, with his magnanimous temperament and carefree personality, Im Je was renowned as a writer of a unique spirit who lived a life unrestrained by Confucius’s ideologies and courtesies.
2. Life
From an early age, Im Je was a free spirit who enjoyed indulging in the arts and living a life without restraint. When his mother passed away in 1571, Im Je stopped drinking and focused on studying the Confucian classics at the age of 23 by becoming a pupil of Seong Un (盛運, 1497-1579). At the age of 29 (1577), he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was appointed as a magistrate of Heungyang County (興陽縣監 Heungyang hyeongam) of Jeolla Province and then as a secretary of Minister of Rites (禮曹正郎 Yejo jeongnang). However, being a free spirit, he was not reluctant to give up his position at the government. He died at the young age of 39 (1587). It is said that his last words to his sons were that they need not be sorrowful for his death as they were not fortunate enough to be born in the country of an emperor.
3. Work
Throughout his life, Im Je was known to be a magnanimous figure. Ahn Sukkyoung (安錫儆, 1718-1774) described him as follows;
“Im Je was the hero of patriots (豪傑之士 hogeoljisa). At a young age, he became famous for his poems, taking on the pen name Baekhoja (白湖子). Though he passed his civil service examinations, he disliked the restraints of the governmental positions and, with the sword of State in hand, wandered the countryside on a swift horse. He enjoyed talking about military tactics and his loyalty was outstanding.”
This explains the extraordinary and magnanimous character of the works of Im Je.
In Imbaekhojip (林白湖集 Collection of Im Baekho’s Works), which contains Im Je’s collection of poems, there are 4 chapters in 2 volumes. Chapters one to three include poems (詩 si) while chapter four contains works of prose (文 mun). His writings mostly reflect his sorrowful indignation towards a world in which he felt he didn’t belong while wandering in the countryside. Many were written during his travels after forgoing his aspirations for a government position. As a result, many poems were left with Buddhist monks across the country. Much of the poems in the chapter two of Maedangjamyeongnok (梅堂煮茗錄) were written and preserved in this manner. Geumseonyo (金仙謠) is a long poem that unravels a Buddhist story with a Daoist ambiance and a masterpiece of mystery and adventure. Especially, Mangnyeojeonsa (亡女尊詞) which mourns the early death of his eldest daughter, is earnest and poignant. Moreover, in his poem Jaman (自挽), where he looks back at his life as he is nearing death, Im Je remembers his 40 years of indulging in the arts. Rather than mourning over his imminent death, he considers it as a path to the world of immortals.
In particular, Im Je left a large number of poems about female entertainers (妓生 gisaeng) such as Jeunggi (贈妓), Jeungokjeong (贈玉井), and Huijeungtamnagi (戱贈耽羅妓). However, the poem behind the popular myth that the author offered his condolences at the grave of Hwang Jini (黃眞伊, unknown birth and death date) is not included in any part of his anthology. The anecdote that he offered his condolences at the grave of Hwang Jini was introduced in Yi Deokhyeong’s (李德泂, 1561-1613) Songdogii (松都記異 Strange Tales in Songdo). Yi said, “this highly accomplished Confucian scholar (斯文 samun) Im Je is a heroic scholar. On the road to Pyeongyang (平壤), appointed as an assistant governor of Pyeongan province (平安道 都事 Pyeongando tosa), he stopped by Hwang Jini’s grave near Songdo (松都) county in Hwanghae province with a chicken and a bottle of alcohol to offer memorial service and then wrote a poem for her. That heroic piece of writing was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and is still being memorized today.”
Moreover, Im Je left poems that expressed a wide range of emotions. He wrote about the bitterness he felt as a low-level official being relegated posts in remote areas and the disappointment he felt for Joseon that was unable to escape from a narrow China-centered worldview. Furthermore, while it was rare for that period, he expressed a deep appreciation for all the beautiful landscapes he witnessed from Hamgyeong province to Jeju island.
For his works of prose, Im Je wrote Nammyeongsoseung (南溟小乘 Small Vehicle on Southern Seas) which is the first travel journal of Jeju Island ever to be written. He also left controversial novels such as Suseongji (愁城誌 Records of a World of Anxiety), Hwasa (花史 History of the Flower), and Wonsaengmongyurok (元生夢遊錄 Record of Wonsaeng’s Dream Journey). These works were written by him during the first three years of his public service after passing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In his works, Im Je criticizes and bemoans the reality of irrationalities and injustices he had to deal with. The works are fictional; however, in works such as Suseongji (1576), he depicts a vivid picture of the political climate of that period such as the opposition between loyalists and rebels and various other situations that brought woes to the king. The novel Wonsaengmongyurok (1576) illustrates the notion of fidelity through the story of Won Ho, a loyal official to the disposed King Tanjong, who has a dream of meeting King Tanjong (端宗, r.1452-1455) and the six martyred ministers (死六臣 sayuksin). This work elevated the dream novel genre, criticizing King Sejo (世祖, r.1455-1468)’s coup at a time when it was taboo to do so. Nevertheless, many sympathized with the criticism behind the work and a translated edition in Korean alphabet was made. It was read widely not only by the noble class but also by women.
Hwasa (1578) was a novel that satirized the harsh realities of society and expressed hope for the ideal society by personifying the king and his servants as flowers in a world of plants. At the age of 30, Baeko [Im Je] wrote Hwasa when political factional strife was intensifying and the Easterners-Westerners conflict was becoming severe. Another of his works, Suseongji was an ideological novel in which the ideology of the middle ages was personified, earning it a unique position in the history of the novel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4. Literary Acclaim and Legacy
Heo Gyun (許筠, 1569-1618), regarding Baeko [Im Je]’s literary works, said “it is a very special writing (別文字 byeolmunja) since the emergence of human writing. If these words were not obtained between heaven and earth, history would be deficient.” The high praise that five hundred years of Joseon literature would not be complete without Baeko [Im Je]’s literary works is a comment that shows his literary status. Though he was a man of extraordinary temperament, forbidding wails and laments on his deathbed and instead deploring having been born in a weak and small nation, Im Je’s work holds a romantic mood as it expresses his sensitivity and warmth that led him to write a poem for female entertainers. The poetry and prose of Im Je were all highly respected in his time, and those lively yet delicate poems and stories are indisputably original.
Most of the individuals who held intimate lifelong friendships with Im Je belonged to the group of outsiders or the disadvantaged. The number of Buddhist monks who built friendships with Im Je through poetry is over fifty; and, people who shared time with Im Je in poetry clubs including Yi Dal (李達, 1539-1612), Yang Daebak (梁大樸, 1544-1592), and Yang Saeon (楊士彦, 1517-1584), were all sons of concubines. The fact that Im Je wailed over Hwang Jini’s grave does not seem so far-fetched, considering his usual conduct. Moreover, one can see clearly observe in Im Je’s works that he broke from the standard poetic style of the time and aimed for a new kind of song for the Joseon dynasty. He had a masterful command of the unique vocabulary of Joseon in poetry and prose, and,he made distinct literary achievements that have captured in writing the country’s institutions and customs for generations.
5. Resources
Imbaekhojip (林白湖集 Collection of Im Baekho’s Works): Im Je’s poetry anthology is made up of 4 chapters in 2 volumes. At the beginning of the work are prefaces written by Sin Heum (申欽, 1566-1628) and Yi Hangbok (李恒福, 1556-1618). The preface by Yi Hangbok was written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original in 1607 and is an incomplete text. In the body of the work, chapters one to three contain poems and chapter four contains prose. The end of the work is an epilogue written by Im Seo (林㥠, 1570-1624).
6. References and External Links
6.1 Reference
Im, Hyeongtaek and Yi, Hyeonil, Trans. Baekho Siseon, Changbi, 2011.
Je, Im. Hoyeol, Sin. Hyeongtaek, Im. Baekojoenjip. Changbi: 2014.
Lee, Jongmuk, Baekho Im Je Hansi ui munye mihak 白湖 林悌 漢詩의 文藝美學 . Jindanhakbo 96: 101-121. 2003
External links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Imbaekojip”.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grpId=&itemId=MO&gubun=book&depth=2&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O_0243A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Imbaekojip”.
http://db.itkc.or.kr/dir/item?grpId=hj#dir/node?grpId=hj&itemId=MI&gubun=book&depth=3&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I_0243A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Im Je”.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637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grpId=&itemId=MO&gubun=book&depth=2&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O_0243A [한국고전종합DB] 『임백호집(林白湖集)』 한국문집총간
http://db.itkc.or.kr/dir/item?grpId=hj#dir/node?grpId=hj&itemId=MI&gubun=book&depth=3&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MI_0243A [한국고전종합DB] 『Imbaekojip 임백호집』 해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63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제 [林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