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ABC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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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Jung Yakyong(정약용)

Title
Jung Yakyong
Family Name
Jung
First Name
Yakyong
Preferred Name
-
Pen Name
Cheong Yak-Yong, Chŏng Yagyong, Jung Yakyong
ISNI
0000000081227936
Birth
1762
Death
1836
Occupation
Scholar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Period
Classical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정약용(丁若鏞)

 

작성 : 김보성(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분류 : 일반주제(?)

 

◆기본 정보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그는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시를 남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작가 생애

정약용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이다. 정약용의 생애는 송재소 교수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해제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수학기(修學期) :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정재원(丁載遠)이고, 모친은 윤두서(尹斗緖,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의 손녀다.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16세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문집을 보고 사숙(私淑)하였다. 28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 사환기(仕宦期) : 31세에 「기중도설(起重圖說)」을 바쳐 수원성(水原城)을 축조할 때 활차(滑車)를 이용하게 하여 경비를 절약시켰다. 33세에 암행어사로서 경기도 연천(漣川)을 순찰하고 전(前) 연천 현감인 김양직(金養直)의 죄를 밝혔다. 34세에 병조참의(兵曹參議), 우부승지(右副承旨)가 되었지만 둘째 형 정약전(丁若銓)이 ‘주문모(周文謨) 사건’에 연루되어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당하였다. 36세에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제수되었으나 노론(老論) 벽파(辟派)들의 모함 탓에 황해도 곡산 도호부사(谷山都護府使)로 내보내졌다. 이때의 경험이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짓는 자양분이 되었다. 38세에는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어 훗날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집필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자신을 천주교와 연관시키는 상소가 잇따르자 39세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소내[苕川,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로 내려갔다.

- 유배기(流配期) : 1801년(정약용 40세)에 신유옥사(辛酉獄事)로 남인(南人) 시파(時派)에 속하던 인물들이 대다수 참형을 당하였다. 이때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은 옥사하고, 둘째 형 정약전은 신지도(薪知島)에 유배되었으며,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長鬐)에 유배되었다. 같은 해에 ‘황사영(黃詞永) 백서(帛書)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유배 갔다. 정약용은 이때 제자 군단을 양성하여 많은 저술을 집필하였다. 47세에 다산(茶山)의 초당(草堂)으로 옮겼다.

- 해배기(解配期) : 57세에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재(馬峴)로 돌아가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집필하였다.       

 

◆작품 세계

정약용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여유당집(與猶堂集)』을 경집(經集) 232권과 문집〔文集, 시(詩)‧잡문(雜文)‧잡찬(雜簒)을 통칭〕 260권으로 구성하였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시문집(詩文集) : 시문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론(田論)」이다. 다산이 제도 개혁 중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토지제도의 개혁이었다. 그가 진단한 당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농민의 굶주림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다산의 방대한 개혁안도 농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초점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탕론(蕩論)」에서 천자(天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며, 대중이 추대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대중의 의사에 따라서 천자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가 주장한 대표적인 문학론은 조선시(朝鮮詩) 선언(宣言)이다. “나는 조선 사람이니, 조선시를 즐겨 쓰노라(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라 주장하였고, 실제 창작에서도 우리나라의 고사(故事)를 사용하기도 하고 순수한 우리의 토속어를 한자화(漢字化)하여 시어(詩語)로 사용하기도 했다. ‘보릿고개’를 ‘맥령(麥嶺)’으로, ‘높새바람’을 ‘고조풍(高鳥風)’ 등으로 표기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편지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배지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산의 생활철학, 학문하는 자세, 문학적 견해 등이 곡진하게 나타나 있다. 강진에서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된 형님인 정약전(丁若銓)에게 보낸 편지에서 뜨거운 형제애(兄弟愛)를 드러내고 있는가하면 저술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하는 편지글에서 다산사상의 핵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 1811년에 펴낸 지리서(地理書)다. 기존 지리서의 오류를 바로잡고 북방 강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조선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 상의절요(喪儀節要) : 1815년에 완성하고 1817년에 펴낸 의례서(儀禮書)다. 이전에 지었던 『전석상례(箋釋喪禮)』 10권을 요약하였다.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풍수설을 부정한다든가, 장사(葬事) 지내는 방위와 시간을 기존과 달리 말하는 등, 상례(喪禮) 절차 중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쳤다.

- 경세유표(經世遺表) : 원 제목은 ‘방례초본(邦禮草本)’이다. 1817년에 저술하였는데 미완성작이다.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의 하나로 꼽힌다. 사회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부서나 분야가 개혁되어야 함을 주창하였다. 예를 들면, 육조(六曹,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기능을 강화할 것, 중인(中人)을 우대할 것, 서얼(庶孼)을 차별하지 말 것, 군현(郡縣)의 등급을 재조정할 것,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할 것, 토지 외의 분야에도 세금을 부과할 것, 병선(兵船)을 평소에 상선(商船)으로 활용할 것 등이다.

- 목민심서(牧民心書) : 1818년에 펴낸 책이다. 부임(赴任, 발령 받은 곳으로 감), 율기(律己, 자신을 다스림), 봉공(奉公. 공공업무에 힘씀), 애민(愛民, 백성을 사랑함), 이전(吏典, 이조의 법전), 호전(戶典, 호조의 법전), 예전(禮典, 예조의 법전), 병전(兵典, 병조의 법전), 형전(刑典, 형조의 법전), 공전(工典, 공조의 법전), 진황(賑荒, 자연재해로 괴로운 백성을 구제함), 해관(解官, 관직을 내려놓음)이라는 1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성의 편에 서서 당대의 부패한 관리 체계를 비판하였다.

- 흠흠신서(欽欽新書) : 1819년에 완성하고 1822년에 펴낸 형법서(刑法書)다. 형정(刑政)의 기본 이념과 역대 판례들을 소개하였다. 조선 후기 검시(檢屍) 제도의 수준을 보여준다.

- 아언각비(雅言覺非) : 1819년에 집필한 유서(類書)다. 당대 언어생활을 바로잡고자 어원(語源)을 밝히고 적절한 용례를 설명하였다.

- 매씨상서평(梅氏尙書平) : 1834년에 집필한 평론서(評論書)다. 공영달(孔潁達)의 『상서정의(尙書正義)』, 채침(蔡沈)의 『서집전(書集傳)』, 모기령(毛奇齡)의 『원사(寃詞)』 등을 참고서로 삼아, 한(漢)나라 이전에 존재한 『서경(書經)』(『고문상서(古文尙書)』)과 그 이후에 복원된 『서경』(『금문상서(今文尙書)』)을 낱낱이 비교하고, 매색(梅賾)의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가 거짓임을 밝혔다.

- 마과회통(麻科會通) : 1798년에 집필한 의서(醫書)다. 이헌길(李獻吉)의 『마진기방(麻疹奇方)』, 허준(許浚)의 『벽역신방(辟疫神方)』, 이경화(李景華)의 『광제비급(廣濟秘笈)』 등을 참고하였다. 천연두[麻疹]를 중심으로 유행병에 대한 증세와 처방을 서술하였다.

- 악서고존(樂書孤存) : 출판 연대가 미상인 악서(樂書)다. 고문헌을 참고하여 음악 이론과 성률 등에 관해 서술하고 오류를 정정했으며, 편종(編鐘)·편경(編磬)·금(琴)·슬(瑟)·생(笙)·적(笛) 등의 악기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2500여수의 시를 남긴 걸출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 작품에서 시종일관 민족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국가를 걱정하고 국가의 여러 모순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것이 바로 정약용이 동시기 다른 관료 문인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정약용은 당대 현실을 개혁하는 데 주력하며 경세가(經世家)이자 시인(詩人)인 삶을 살았다. 그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는 것이라면 시(詩)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뜻이 서지 않고 학문이 순전하지 못하며 대도(大道)를 듣지 못하고 임금을 요순(堯舜)의 성군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혜택을 입히려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너는 힘쓰도록 하여라.”〔답연아(寄淵兒)〕라 하였는데, 그는 실제 작품에서 이러한 문학의식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더욱이 그의「도강고가부사((道康瞽歌婦詞)」는 유배지 강진에서 직접 견문한 내용으로, 360행이나 되는 긴 서사한시(敍事漢詩)다. 조선 시대 하층민, 특히 심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것인데, 제목 그대로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포악한 시각장애인인 늙은 남성에게 팔려간 18살 꽃 다운 여인이 겪는 기구한 삶의 고통과 절망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어 조선 후기 한시사에서 주목할 수 있다.

정약용의 작품은 이처럼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순과 백성의 고통을 남김없이 드러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더욱이 정약용은 경학 저술과 시문에서 누차 군주를 바로잡고, 시대를 고뇌하며, 백성을 위한 위정자의 책무를 강조한 바 있기 때문에 정약용의 시와 문장은 단순한 문학 텍스트를 넘어 당대의 정치적 함의도 포함할 정도로 문학적 위상이 선명하다. 이 점은 다산 이전에도 다산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든 문학적 성과라는 점에서 다산 문학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한다.  

 

◆자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이 2008년에 출간한 『다산학단 문헌집성(茶山學團文獻集成)』에 정학연(丁學淵), 윤종벽(尹鍾璧), 혜장(惠藏), 윤정기(尹廷琦), 황상(黃裳), 이시헌(李時憲), 이청, 이강회(李綱會) 등 정약용의 제자나 정약용과 학적 교류했던 인물의 저술이 실려 있다.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연2회 발간하는 학술지 『다산학(Journal of TASAN Studies)』에 정약용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이 축적되어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SereArtiList.kci?sereId=001778&volIsseId=VOL000110565 [한국학술지인용색인] 다산학 (한국연구재단, 다산학술문화재단)

 

◆참고 문헌 및 사이트

송재소, 『한국 한문학의 사상적 지평』(돌베개 한국학총서 7), 돌베개, 2005.

송재소, 『다산시 연구』, 창비, 2014.

실시학사, 『다산 정약용 연구』(실시학사 실학연구총서 2), 사람의 무늬, 2012.

임형택 편집, 『다산학단 문헌집성』,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8.

정일균, 『다산사서경학 연구』, 일지사, 2000.

정민,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1․2, 천년의상상, 2019.

 

김호, 「유학이 오늘의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는가? - 공공성의 위기와 실학 : 다산 정약용의 “민주(民主)” 기획」, 『다산과 현대』 6,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3.

박철상, 「신자료 『선암총서(鲜菴叢書)』의 발굴과 『목민심서』 저술 과정의 검토」,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회, 2012.

심경호, 「다산 정약용 산문의 저술 시기 고찰」, 『다산학』 23, 다산학술문화재단, 2013.

임형택, 「시대의 답을 다산에게 묻다, 다산 정약용과 한국의 사회/인문과학 : 우리 시대의 공부와 다산」, 『다산과 현대』 4․5,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진재교, 「조선조 후기 정치 장(場)에서의 권력향배와 한문학 – 다산 정약용의 문학을 읽는 하나의 방법」, 『고전문학연구』 46, 한국고전문학회, 2014.

 

http://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 [한국고전종합DB]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http://db.itkc.or.kr/dir/pop/heje?dataId=ITKC_MP_0597A [한국고전종합DB] 송재소 외, 정본 여유당전서 해제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http://db.itkc.or.kr/dir/pop/heje?dataId=ITKC_BT_1260A [한국고전종합DB] 송재소, 다산시문집 해제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Jeong Yakyong (丁若鏞, 1762-1836)

 

1. Introduction

Jeong Yakyong was a scholar of Practical Learning (實學 Silhak) in the late Joseon period who left a vast amount of writing in almost all academic disciplines, including politics, economics, history, geography, literature, philosophy, medicine, education, military science, and natural science. He is not only known as a master of Silhak but also known as a representative poet and a composer of outstanding poems.

 

2. Life

Jeong Yakyong’s family origin is Naju (羅州) county of Jeolla province. His courtesy name is Miyong (美鏞) and his pen names are known as Dasan (茶山),·Saam (俟菴),·Yeoyudang (與猶堂),·Chaesan (菜山), Sammija (三眉子). His life is well illustrated in Professor Song Jaeso’s release of the Anthology of Dasan Poetry (茶山詩文集 Dasan Simunjip). The key points are as follows:

 

Period of Learning: Jeong was born in Gwangju (廣州) county in Gyeonggi province. He was born between his father, Jeong Jaewon (丁載遠, 1730-1792), and his mother, granddaughter of Yun Duseo (尹斗緖, 1668-1715, descendant of Yun Seondo (尹善道, 1587-1671). It is said that Jeong compiled Sammijajip (三眉子集 Collection of Sammija Works) which collected his poems before he turned 10, but it is nonexistent now. At the age of 16, after he read a collection of books written by Seongho (星湖) Yi Ik (李瀷, 1681-1764), he then became an admirer of him. At 28, he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Period of Serving the Government: At the age of 31, Jeong wrote Gijungdoseol (起重圖說 Illustrated Explanations of the Crane) and saved expenses by using a pulley when constructing Suwon Castle (水原城). When he turned 33, as a royal secret inspector, he patrolled Yeoncheon (漣川) county, Gyeonggi province and revealed the illegality of Kim Yangjik (金養直, unknown birth and death date), former county magistrate of Yeoncheon. At the age of 34, he became a third minister of Ministry of Military Affairs (兵曹參議 Byeongjo Chamui) and a fifth secretary (右副承旨 Ubuseungji). However, due to his second brother, Jeong Yakjeon (丁若銓, 1758-1816) who was involved in the Ju Munmo (周文謨, chi. Zhou Wenmo, 1752-1801) incident, he was relegated to a less important post, defense inspector of a route of communication in Chungcheong province. At the age of 36, he was offered a position, fourth secretary (左副承旨 Jwabuseungji), but was sent to Gosan (谷山) county, Hwanghae province as a regional military commander because of vicious slander from the Noron (老論 patriarch’s faction) Byeokpa (辟派 party of principle). This experience became a motive for one of his work, Mongminsimseo (牧民心書 On Ruling the Hearts of the People). When he turned 38, he was promoted to a third minister of Ministry of Punishments (刑曹參議 Hyeongjo Chamui) and gained experience that later helped him write Heumheumsinseo (欽欽新書 New Treatise on the Legal System). After a series of petitions that associated him with Catholicism, he abandoned his office position at age 39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Socheon (苕川) village in Gyeonggi province.

 

Period of Exile: In 1801 (at 40 years old), when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broke out, many of the figures who belonged to the Namin (南人 Southerners) Sipa (時派, party of expediency) were sentenced to death. At this time, his third oldest brother Jeong Yakjong (丁若鍾, 1760-1801) died in prison, second oldest brother Jeong Yakjeon was exiled to Sinji Island (薪知島), and Jeong Yakyong himself was exiled to Janggi (長鬐), Gyeongsang province. But in the same year, when Hwang Sayeong (黃嗣永, 1775-1801)’s Silk Letter Incident occurred, his brother Yakjeon was exiled to Heuksan Island (黑山島) and Jeong himself to Gangjin (康津), Jella province. Jeong Yakyong wrote numerous writings while educating his disciples during his exile. At age 47, he moved to Dasan Chodang (茶山草堂 literally Thatched Cottage on a Tea Mountain).

 

Period of Release: He was released from exile at his age 57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Majae (馬峴) village, Gyeonggi province, where he wrote Mongminsimseo and Heumheumsinseo.

 

3. Works

In Jachan myojimyeong (自撰墓誌銘 Self-Written Epitaph), Jeong notes that he composed Yeoyudangjip (與猶堂集 Collection of Yeoyudang Works) with 232 chapters of annotation of the Confucian Classics (經集 gyeongjip) and 260 chapters of prose (文集 Works which contains poems and miscellaneous writings. The representative works of these are as follows.

 

Anthology of Poems (詩文集 Si munjip): The most remarkable in his collection of poems is Jeollon (田論 Discourse on Land). Dasan [Jeong Yakyong]’s primary focus was institutional reform on the land property system since the biggest social problem at that time was the deteriorated farmers’ lives. Massive reforms in which Dasan focused on was to free farmers from hunger. Also, in Tangnon (蕩論 Discourse of King Tang of Shang, China), Dasan states that since Son of Heaven (天子 cheonja) was neither descended from the sky nor raised from the earth, but made by the masses, Son of Heaven could be replaced by the public. His representative literary theory is the declaration of Joseon poetry: “I enjoy writing poems in Korean because I am a Joseon person.” When he creates a poem, he tends to use the Korean ancient history or sometimes make Korean native words in Chinese as a poetic word. Some of the examples he translated from Korean to Chinese were ‘bollit gogae (보릿고개)’ as ‘maengnyeong (麥嶺; boli means barley, pronounces maek[ng] in Chinese, gogae is hill, pronounces nyeong in Chinese0 and ‘nopsae baram (높새바람)’ as ‘gojopung (高鳥風).’

Letters also play a crucial role. Letters to his two sons from Gangjin, where he was exiled to, thoroughly reveal his philosophy of life, academic attitude, and literary opinion. In the letter to Chung Yakjeon, his brother who was exiled to Heuksan Island from Gangjin, Dasan reveals his close brotherhood. This letter asking questions about the doubts in the writing process gives a glimpse of Dasan’s core ideologies.

 

Abanggangyeokgo (我邦疆域考 An Examination of National Territory): This is a book of geomancy. By correcting the errors in the previous geography books and paying attention to the problems of the northern region, the book attempts to establish the legitimacy of the Joseon Dynasty.

 

Sanguijeoryo (喪儀節要 Essentials of Mourning Ceremony): This book of ritual ceremonies was written in 1815 and published in 1817. It summarizes ten chapters of Jeonseoksangnye (箋釋喪禮 Annotation of Funerary Rites). His views on the controversy on the ceremonial process, including denial of traditionally accepted geomancy or funeral times and places, are well illustrated in the book.

 

Gyeongseyupyo (經世遺表 Proposals for Good Government): The original title is Bangnyechobon (邦禮草本). While the book was initially written in 1817, it was never completed. It is also considered as one of the prestigious works, so called “One Proposal (表 pyo) and Two Books (書 seo) [Gyeongseyupyo, Mongminsimseo, and Heumheumsinseo]. It advocated that departments that play a substantial role in our society should be reformed. For instance, enhancing functions and powers of Six Ministries (六曹 yukjo), improving treatment on the middle class and sons of concubines, rebalancing the hierarchy of county and prefecture, implementation of well-field system (井田制), taxation on all sectors, and utilizing the battleship as a merchant ship are few examples.

 

Mongminsimseo (牧民心書): This book, published in the year 1818, is composed of 12 sections: buim (赴任 incoming replacement), yulgi (律己 control oneself), bonggong (奉公 focus on public service), aemin (愛民 apathy for people), ijeon (吏典 code of personnel), hojeon (戶典 code of taxation), yejeon (禮典, code of rituals), byeongjeon (兵典 code of military affairs), hyeongjeon (刑典 code of punishments), gongjeon (工典 code of public works), jinhwang (賑荒 save the people who are devastated by the natural disasters), and haegwan (解官 dismissal). He criticizes a corrupt government system with a perspective of ordinary people.

 

Heumheumsinseo (欽欽新書): This book of the law was completed in 1819 and published in 1822. It introduces judicial precedents as well as fundamental ideologies of justice. It shows the proficiency of the autopsy system in the late Joseon period.

 

Aeongakbi (雅言覺非 Correct Concepts for the Rectification of Errors): This is a classified reference book to identify the etymology and to explain the proper usage of the words to rectify everyday language. It was written in 1819.

 

Maessi[sang]seopyeong (梅氏[尙]書平 An Evaluation of Mei Tse’s Classic of Documents): This book of editorial review was written in the year 1834. Referring Kong Yingda (孔潁達, 574-648)’s Shang shu zheng yi (尙書正義), Cai Shen (蔡沈, 1167-1230)’s Shu ji zhuan Seo (書集傳), and Mao Qiling (毛奇齡, 1623-1716)’s Yuan ci (寃詞), he compares and contrasts Gu wen shang shu (古文尙書) and Jin wen shang shu (今文尙書) which are two different editions of the Book of Documents (書經 Shujing). Thus, he proves and reveals that Mei Ze (梅賾)’s Wei gu wen shang shu (僞古文尙書)』 is a lie.

 

Magwahoetong (麻科會通 Comprehensive Treatise on Smallpox): This medicine book was written in 1798. He referred to Yi Heongil (李獻吉, unknown birth and death date)’s Majingibang (麻疹奇方), Heo Jun (許浚, 1539-1615)’s Byeogyeoksinbang (辟疫神方 Prescriptions to Prevent Epidemics) and Yi Gyeonghwa (李景華, 1721-?)’s Gwangjebigeup (廣濟秘笈). He describes the symptoms and prescriptions for the epidemic, specifically smallpox.

 

Akseogojon (樂書孤存 Examination of Documents on Music): Published year for this book of music remains unknown. He consults various ancient papers to illustrate and correct errors in music and rhythm theories. He describes instruments such as pyeonjong (編鐘), pyeongyeong (編磬), geum (琴), seul (瑟), saeng (笙) and jeok (笛) in detail.

 

4. Style and Legacy

Jeong Yakyong was not only a great scholar of Silhak (Practical Learning School) but also a prominent poet who composed approximately 2,500 poems. Through his literary works, he reflects his worries on the Joseon Dynasty and attempts to correct various contradictions based on the factual status of Joseon. This is where he differentiates himself from other bureaucrats. He focuses on the reform, living his life as a government official and a poet. He says, “If the poem does not mourn over the times and does not despise the world, it’s not a poem. It’s not a poem unless it praises high virtue, satirizes bad behavior, encourages good, and punishes the evil. Thus, those who do not have a will to support the king to benefit the people and have corrupted ideas must not compose poems; you must work hard to become a poet.” The sentences are from his letter to his son, Dabyeona (寄淵兒 Answer to his son, Hakyeon). He actually practiced his literary consciousness through his works.

Doganggogabusa (道康瞽歌婦詞) is about what he learns and sees in Gangjin, a place he was exiled to. This work is a narrative Chinese traditional poem (敍事漢詩 seosa hansi) with 360 lines, which is longer than any typical poems. It is about the lives of the underprivileged in the Joseon Dynasty, especially an 18-year-old woman being sold to a blind elderly man after being coerced by her drunk father. It also stands out from any other Korean poem in the late Joseon dynasty due to its lively description of the pain and despair of a woman.

Jeong Yakyong’s work focuses on revealing the social contradictions and the suffering of the people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addition, since he corrects the monarch and emphasizes the duty of the authority in his scholarly writings and poetry, his poems and sentences are acknowledged for incorporating 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contemporary period beyond mere literary texts. His literary achievements are highlighted for his distinguished writings and future impacts.

 

5. Resources

Dasanhakdan Munheonjipseong (茶山學團文獻集成), published by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t Sungkyunkwan University in 2008, includes works of Jeong Yakyong’s disciples and colleagues such as Jeong Hakyeon (丁學淵), Yun Jongbyeok (尹鍾璧), Hyejang (惠藏), Yun Jeonggi (尹廷琦), Hwang Sang (黃裳), Yi Siheon (李時憲),Yi Cheong, Yi Ganghoe (李綱會).

 

In the Journal of TASAN Studies, published twice a year by the Dasan Academic Cultural Foundation, several articles related to Jeong Yakyong have been accumulated.

 

[Korea Citation Index] Dasanhak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Tasan Cultural Foundation)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SereArtiList.kci?sereId=001778&volIsseId=VOL000110565

 

6. References and External Links

6.1. References

Song, Jaeso, Hanguk Hanmunhak ui Sasangjeok Jipyeong (The Ideological Prospect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Dolbegae Korean Studies series 7), Dolbegae, 2005.

 

Song, Jaeso, Dasansi Yeongu (A Study of Dasan’s Poems), Changbi Publishers, 2014.

 

Silsihaksa, Dasan Jeong Yakyong Yeongu (A Study of Dasan Jeong Yakyong) (Silsihaksa Silhak Study series 2), Saram ui Munui, 2012.

 

Im, Hyeongtaek, ed., Dasanhakdan Munheonjipseong (Compilation of Dasanhakdan Literary),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ungkyunkwan University, 2008.

 

Jeong, Ilgyun, Dasan Saseo Gyeonghak Yeongu (Studies on Dasan Jeong Yakyong’s Understanding of the Four Books), Iljisa, 2000.

 

Jeong, Min, Paran: Jeong Min ui Dasan Dokbon (The Waves: Reading Book of Dasan by Jeong Min) vol. 1-2, Cheonnyeon ui Sangsang, 2019.

 

Kim, Ho, “Yuhak i Oneul ui Munje e Dap eul Jul Su Itneunga? – Gonggongseong ui wigi wa Silhak: Dasan Jeong Yakyong ui “Minju (民主)” Gihoek (Can Study Abroad Answer Today’s Question? – Crisis of Publicness and Silhak: Dasan Jeong Yakyong’s “Democratic” Plan), Dasan gwa Hyeondae,” Dasan gwa Hyeondae (The Journal of Dasan and the Contemporary Times) 6, Dasan Silhak Research Institute, Yonsei University, 2013.

 

Park, Cheolsang, “Sinjaryo Seonamchongseo ui Balgul gwa Mongminsimseo Jeosul Gwajeong ui Geomto (A Review of the Excavation of the New Data Seonamchongseo and the Writing Process of Mongminsimseo),” Hanguk Hanmunhak Yeongu (A Study of Korean Classic Literature), The Society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2012.

 

Sim, Gyeongho, “Dasan Jeong Yakyong Sanmun ui Jeosul Sigi Gochal (A Study on the Period of Writing of Jeong Yakyong’s Prose),” Dasanhak (A Study of Dasan) 23, Dasan Academic Cultural Foundation, 2013.

 

Im, Hyeongtaek, “Sidae ui Dap eul Dasan ege Muntda, Dasan Jeong Yakyong gwa Hanguk ui Sahoe/Inmun gwahak: Uri Sidae ui Gongbu wa Dasan (Ask Dasan for the Answer of the Times, Dasan Jeong Yakyong and Korea’s Social/Humanities Science: The Study of Our Times and Dasan),” Dasan gwa Hyeondae (The Journal of Dasan and the Contemporary Times) 4, 5, Dasan Silhak Research Institute, Yonsei University, 2012.

 

Jin, Jaegyo, “Joseonjo Hugi Jeongchi Jang eseo ui Gwonryeok hyangbae wa Hanmunhak – Dasan Jeong Yakyong ui Munahk eul Ilkneun hana ui Bangbeop (The Propensity of Power and Chinese Literature in the Political Field of the Late Joseon Dynasty),” Gojeon Munhak Yeongu (A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46,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ssociation, 2014.

 

6.2. External Links

[Korean Classics DB] Yeoyudangjeonseo (與猶堂全書)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Korean Literary Collections)

http://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

 

[Korean Classics DB] Song, Jaeso and Others, The Original Copy Yeoyudangjeonseo Description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Korean Literary Collections)

http://db.itkc.or.kr/dir/pop/heje?dataId=ITKC_MP_0597A

 

[Korean Classics DB] Song, Jaeso, Dasansi Munjip Haeje (Biblographical Annotation of Collection of Dasan’s Poems),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Korean Literary Collections)

http://db.itkc.or.kr/dir/pop/heje?dataId=ITKC_BT_126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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