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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Yun Son-do(윤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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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Yun Son-do
Family Name
Yun
First Name
Son-do
Middle Name
-
Preferred Name
-
Pen Name
약이, 약이, 고산
ISNI
0000000081293917
Birth
1587
Death
1671
Occupation
Poet
Period
Classical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윤선도(尹善道)

 

1. 기본 정보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조선 중기 관료이며 문인으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을 지은 시조 작가이다. 그의 관직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고 세련된 우리말을 사용하여 시조 미학의 극점을 이루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2. 생애

윤선도는 1587년 6월 22일 한성 연화방(오늘날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출생했다. 호는 고산(孤山)이다. 8세(1594)에 명례방(오늘날 명동)의 큰아버지 댁으로 입양되며 가문의 장손이 되었고, 집안의 막대한 부를 물려받게 된다. ‘국부(國富)’라고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정치적 주류에서 밀려난 남인(南人) 가문이었다. 타협을 모르는 성품으로 인해 정적들과 대립하였는데, 당시의 집권 세력에게 맞서다가 거듭하여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정치적 좌절 속에서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 자연미를 노래한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30세(1616)에 처음 정치계에 등장할 때, 당시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던 대북파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려 함경도로 유배당했다. 유배지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견회요(遣懷謠)>를 썼다. <견회요>는 5수로 된 연시조인데, 임금에 대한 절절한 연모의 정을 보여주고 있다.

42세(1628)에 장원급제를 하였고,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스승이 되면서 임금의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48세(1634)에 모함을 받아 좌천되고 가족은 전라남도 해남으로 이주한다. 해남에서 은거하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 집안의 종과 자제들을 모아 배를 타고 임금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강화도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망한 그는 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그 길로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잠시 쉬기 위해 보길도에 닻을 내렸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이 섬에 머물기로 한다. 섬 안에 ‘마치 연꽃 봉오리가 피어오른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 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그 안에 인공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지으며, 곳곳에 이름을 붙이고 정착한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임금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내려갔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유배를 간다. 유배를 마친 후, 해남으로 돌아와 금쇄동(金鎖洞)에 머물며 56세(1642)에 <산중신곡(山中新曲)>을 그리고 59세(1645)에 <속 산중신곡(續山中新曲)>을 지었다. <산중신곡>에는 <만흥(漫興)>, <오우가(五友歌)> 등 18수의 시조가 들어있다.

은거하던 중 63세(1649)에 자신이 가르쳤던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등극하자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로 인해 다시 모함을 받고 부용동에 들어와 65세(1651)에 <어부사시사>를 짓는다. 이듬해에 효종의 배려로 다시 정계에 진출하지만 반대 당파의 상소가 이어져, 사직하고 경기도 양주로 내려간다. 여기서 <몽천요(夢天謠)> 3수를 짓는다. 당시 올린 상소가 또 문제를 일으켜 보길도로 내려간다. 효종 사후에 예송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이로 인해 또 유배를 간다. 유배가 끝난 후 보길도로 내려가 살다가 1671년(85세)에 숨을 거둔다.

 

3. 작품 세계

윤선도는 모두 17편(75수)의 시조를 남겼는데 연시조가 8편이고 단시조가 9수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하기도 하고, 사회와 화합을 지향하기도 하며,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1. <만흥(漫興)>

<만흥>은 6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산중신곡>의 맨 앞에 전하고 있다. <산중신곡>은 산속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감회를 노래한 것인데, <만흥>에서는 소박한 삶이 주는 만족감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아래 작품에서는 술잔을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정이, 사랑하는 임이 찾아온 것보다 더 반갑다고 표현하고 있다. 순우리말을 사용하여 언어나 웃음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윽한 즐거움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역)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러할까

말씀도 없고 웃지 않아도 못내 좋아하노라

 

(원문)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리랴

말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노라. (<산중신곡: 만흥 3>, 『고산유고』)

 

3.2. <오우가(五友歌)>

<오우가>도 <산중신곡>에 전하는 6수의 연시조이다.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이라는 5가지 자연물이 자신의 참된 벗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각 자연물이 가진 속성 즉, 그치지 않고, 변하지 않고, 굽히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말하지 않는 점을 부각하고 있는데 이 속성은 모두 유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적 덕목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우가>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자연을 자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나무를 노래한 아래 작품도 우리말의 묘미를 살려 대나무의 곧은 품성과 욕심이 없어 속이 비어 있는 점을 칭찬하며 그러한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역)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은 것은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어 있는가?

저렇게 사계절 내내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원문)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다

뎌러코 시예 프르니 그 됴하 노라. (<산중신곡: 오우가 5>, 『고산유고』)

 

3.3.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어부사시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편에 모두 10수씩 놓여 있는 총 40수의 연시조이다. 현전하는 연시조 중 가장 방대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그에 대한 정감의 표출이 다층적이라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져 왔다. 다음은 40수 중 첫 번째에 놓인 작품이다. 화자의 시선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으로 이동하며, 봄에 느낄 수 있는 생기 넘치는 자연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나아가 밤이 지나 아침이 오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소멸과 생성, 후퇴와 전진이라는 우주의 질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대역)

앞 갯벌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떠라 배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 온다.

찌그덕 찌그덕 어여차

강촌의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원문)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 비췬다

ᄇᆡ 떠라 ᄇᆡ 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 온다

至匊悤 至匊悤 於思臥

江村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어부사시사: 춘사 1>, 『고산유고』)

 

4. 특징 및 의의

윤선도는 자연미를 노래한 최고의 시인이라 칭송받고 있으며, 특히 <어부사시사>는 시조 미학이 도달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그의 시조 작품은 이전 시대에 쌓아 온 문학적 전통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한껏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동안 정치인으로서 당시의 집권 세력에 맞서다가 패하여 좌절했던 순간에 창작되었다. 윤선도는 정치적으로 세력이 미약했던 남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패한 집권 세력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강경한 자세로 맞섰다. 인생의 상당 기간을 유배와 은거로 보내야 했지만, 이 시기에 최고의 국문 시가를 탄생시켰다.

 

 

 

 

 

 

 

5. 기타(해외번역사례)

Inez Kong Pai, The Ever White Mountain, John Weatherhill:Tokyo, 1965.

Kevin O’Rourke, The Sijo Tradition, Jung Eum Sa, 1987.

Kevin O’Rourke, The Fisherman's Calendar, Eastward, 2001.

Peter H.Lee, The Columbia Anthology of Traditional Korean Poetr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Sung-il Lee, The Crane in the Clouds, Homa&Sekey Books:NJ, 2013.

 

 

6. 참고문헌

6.1. 참고문헌

고미숙, 《윤선도 평전》, 한겨레, 2013.

김흥규, 《욕망과 형식의 시학》, 태학사, 1999.

성기옥, <고산시가에 나타난 자연인식의 기본 틀>, 《고산연구》 1, 고산연구회, 1987,

이형대, 『한국 고전시가와 인물형상의 동아시적 변전』, 소명, 2002.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동광당 서점, 1937.

 

6.2 외부링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하여가&ridx=0&tot=20432

보길도: 윤선도 원림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CATEGORY/2478/menu/253?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2478&bbIdx=17341&brdType=R

 

 

Yun Seondo (尹善道, 1587-1671)

 

1. Introduction

Yun Seon-do was a mid-Joseon period bureaucrat and literary man. He was a sijo (Korean traditional three-lined fixed poem) writer who wrote works such as Eobusasisa (漁父四時詞 Fisherman’s Calendar) and Ouga (五友歌 Song of the Five Friends). His career as an official was not easy, but he is said to have achieved the pinnacle of sijo aesthetics with a natural and sophisticated use of the Korean language.

 

2. Life

Yun Sun-do was born on June 22, 1587, in Yeonhwabang (蓮花坊), now referred to as Yeonji-dong (蓮池洞) Jongno-gu (鍾路區), Seoul. His pen name was Gosan (孤山). At the age of 8 (1594), he was adopted by his uncle’s family who lived in Myeongnyebang (明禮坊), referred to as Myeong-dong (明洞) today, and became the family’s eldest male descendant, inheriting its immense wealth. The family’s wealth was such that it was called the “gukbu” (國富 national wealth); but they were a family of Namin (南人 the Southerners; a political faction of the followers of Yi Hwang’s teachings) who were disconnected from the political mainstream. Due to his uncompromising personality, he regularly confronted his political rivals and was repeatedly frustrated by the opposing ruling faction of his time. However, he was praised as the most skilled poet, who conveyed natural beauty with unmatched literary prowess during times of political upheaval. When he first participated in politics at the age of 30 (1616), he was exiled to Hamgyong Province after incurring a political loss reproaching statesmen behaviors with a written appeal to the throne in opposition to Bugin (北人 the Northerners political factions) who were leading the political situation at that time. He wrote Gyeonhoeyo (遣懷謠 Song of Dispelling Gloom) during his harsh life in exile. Gyeonhoeyo is a yeonsijo (聯詩調 long narrative sijo made up of a series of pyeongsijo), which is composed of five stanzas, and it shows his longing for the king.

At the age of 42 (1628), Yun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with top marks and gained the trust of the king by serving as royal teacher to Prince Bongnim (鳳林大君, 1619-1659) and Prince Inpyeong (麟坪大君, 1622-1658). However, due to criminal accusations, he was demoted at the age of 48 (1634), and his family moved to Haenam (海南) County, Jeolla Province. During his retirement in Haenam, the Second Manchu Invasion occurred in 1636. Yun gathered his servants and children and took a boat to the king. However, when he arrived at Ganghwa Island, he heard that it had already been taken by the enemy. In despair, he turned the direction of his boat to Jeju Island without getting off. On the way to Jeju Island, he anchored the boat at Bogil Island close to his home in Haenam County to take a break and decided to stay on the island after seeing its beautiful scenery. He named that place on the island Buyong-dong (芙蓉洞) because it had the shape of a flower bud about to bloom. In Buyong-dong, he created artificial ponds, built a pavilion, named various places on the island, and ultimately decided to settle in Bogil Island. However, he was again exiled because he had not paid proper respect to the king during the Second Manchu Invasion. After the exile, he returned to Haenam County and stayed in Geumswae-dong (金鎖洞), where he wrote Sanjungsingok (山中新曲 New Songs from My Mountain Fastness) at 56 years of age (1642) and Song Sanjungsingok (續山中新曲 Sequel to New Songs from My Mountain Fastness) at 59 (1645). Eighteen sijo works, including Manheung and Ouga, are contained in the Sanjungsingok.

While Yun Seondo was in Geumswae-dong at Haenam County in 1649, his former royal student, Prince Bongnim ascended to the throne (King Hyojong, r.1649-1659). Then Yun again made an appeal to the King reproaching statesmen to be exiled to Buyong-dong again. There, he created Eobusasisa at the age of 65 (1651). In the following year, he returned to politics at King Hyojong’s request. However, due to the opposing faction’s persisting petitions, he resigned and moved to Yangju (楊州), Gyeonggi Province. In Yangju, he wrote the three-stanza poem, Mongcheonyo (夢天謠 Song of the Dream Visit to Heaven). From there, he moved back to Bogil Island from Yangju County from yet another lost political conflict. After King Hyojong's death, he debated other bureaucrats over the so-called mourning rite controversy (禮訟論爭 yesong nonjaeng) and was exiled again. After this exile, he went back to Bogil Island and died in 1671 at the age of 85 years old.

 

3. Works

Yun Seondo left 17 poems (75 stanzas) of sijo, which are 8 yeonsijo (聯詩調 long narrative sijo made up of multiple sijo put together) and 9 dansijo (短時調 three-line sijo; pyeongsijo). [1] All of his works depict nature where the speaker aims to either become one with nature or achieve harmony with society. Some of his sijo also express those two characteristics in combination.

3.1. Manheung (漫興 A Rush of Excitement)

Manheung is a yeonsijo, which is composed of six sijo, presented in the front part of Sanjungsingok. In Sanjungsingok, he conveys his impressions of living in the mountains. In Manheung, he eloquently reveals the satisfaction of living a simple life. In particular, the excerpt below shows that the sentiments one feels while holding a drink and looking at a distant mountain are more joyful than meeting a loved one. Using purely the Korean alphabet, it is a work that begins to describe the profound joy of being one with nature, which cannot be fully expressed in language or laughter.

 

(Translation into Contemporary Korean)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러할까

말씀도 없고 웃지 않아도 못내 좋아하노라

 

(Original Text)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ᄇᆞ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리ᄒᆞ랴

말ᄉᆞ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ᄒᆞ노라.         

 

Manheung stanza 3 in Samjungsingok, of Gosanyugo

(孤山遺稿 Literary Remains of Gosan, Yun Seondo)

 

3.2. Ouga (五友歌 Song of the Five Friends)

Ouga is also a yeonsijo of six sijo in Sanjungsingok. In it, Yun Seondo conveys the five natural elements - water, rock, pine tree, bamboo tree, and moon - as his true friends. The work emphasizes the attributes of each natural element, that is, as things that do not stop, change, surrender, be greedy, or speak. These attributes are all normative virtues enshrined by members of the Confucian society. Thus, although Yun conveys nature in Ouga, he does not view nature as simply nature but rather as making up a society. [2] The excerpt below, which depicts a bamboo tree, emphasizes those virtues by praising the righteous and selfless character of hollowed bamboo in full use of the beauty of the Korean language.

(Translation into English)

Neither wood, Nor grass;

Who made it straight, why is it hollow?

So green, all the year around; that’s why I like it.

 

Translated by Kevin O’Rourke (2014)

 

(Translation into Contemporary Korean)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은 것은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어 있는가?

저렇게 사계절 내내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Original Text)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ᄂᆞᆫ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ᄂᆞ다

뎌러코 ᄉᆞ시예 프르니 그ᄅᆞᆯ 됴하 ᄒᆞ노라.

 

Ouga stanza 5 in Samjungsingok, of Gosanyugo

(孤山遺稿 Literary Remains of Gosan, Yun Seondo)

 

3.3. Eobusasisa (漁父四時詞 Fisherman’s Calendar)

Eobusasisa is a yeonsijo of forty sijo. There are ten sijo for each season - spring, summer, autumn, and winter. It is the longest among existing yeonsijo and interpretations vary due to its multi-layered expressions of the narrator’s perception of the world and his corresponding sentiments. The following is the first of the forty sijo. The poem depicts a lively nature in the spring as the speaker’s focus moves from the sky to the sea to the ground. Furthermore, the poem illustrates the harmonized cosmic order of the night and the morning, the rising and ebbing tide, extinction and creation, and retreat and advancement.

 

(Translation into English)

Mist lifts on the stream in front,

Sunlight illumines the mountain behind.

Push away, push away!

The night tide is almost out; soon the morning tide will be coming in.

Chigukch’ong, chigukch’ong, osawa!

Flowers

In profusion adorn the river village; distant hues are best.

Translated by Kevin O’Rourke (2014)

 

(Translation into Contemporary Korean)

앞 갯벌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떠라 배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 온다.

찌그덕 찌그덕 어여차

강촌의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Original Text)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ᄒᆡ 비췬다

ᄇᆡ 떠라 ᄇᆡ 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 온다

至匊悤 至匊悤 於思臥

江村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Eobusasisa Chunsa stanza 1 in Gosanyugo

(孤山遺稿 Literary Remains of Gosan, Yun Seondo)

 

4. Style and Legacy

Yun Seondo is praised as the poet who conveyed the beauty of nature best. In particular, Eobusasisa is considered to be the representative work that fully captured sijo aesthetics. [3] Yun’s sijo demonstrate his literary skills developed on the literary traditions accumulated from the previous era. Moreover, his works were created from his 30s to 60s, when he served as a politician and was defeated over and over again by the ruling power at that time. Yun Seondo was born from a family of Namin that was politically weak but uncompromisingly opposed against the corrupted powers. Although he had to spend much of his life in exile, he created  masterful Korean poems during those periods of banishment.

 

5. Others

5.1 Works in Translation

Pai, Inez Kong, The Ever White Mountain, Tokyo: John Weatherhill: 1965.

 

O’Rourke, Kevin, The Sijo Tradition, Jung Eum Sa, 1987.

 

O’Rourke, Kevin, The Fisherman's Calendar, Eastward, 2001.

 

Lee, Peter, H., The Columbia Anthology of Traditional Korean Poet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Lee, Sung-il, The Crane in the Clouds, Paramus, NJ: Homa & Sekey Books, 2013.

 

6. Resources

6.1 Source of Original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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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1 Samjungsingok, of Gosanyugo

7. References and External Links

7.1 References

Go, Misuk, Yun Seondo Pyeongjeon (Critical Biography of Yun Seondo), Hanibook, 2013.

 

Seong, Giok, Gosansiga e Natanan Jayeoninsik ui Gibon Teul (Basic Frame of Natural Recognition in Classical Siga), Gosan Yeongu (A Study of Gosan) 1, Gosan Yeonguhoe, 1987.

 

Lee, Hyeongdae, Hanguk Gojeonsiga wa Inmulhyeongsang ui Dongasiajeok Byeonjeon (East Asian Transformation of Korean Classical Siga and Characters), Somyung, 2002.

 

Jo, Yunje, Joseon Siga Sagang (History of Joseon Siga), Donggwangdang Library, 1937.

 

7.2 External Links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하여가&ridx=0&tot=20432

 

Bogildo: Yun Seondo Wollim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CATEGORY/2478/menu/253?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2478&bbIdx=17341&brdType=R

 

8. Notes

[1] The following is his yeonsijo; Gyeonhoeyo (遣懷謠 Song of Dispelling Gloom) 5 stanzas; Choyeongok (初筵曲 Song At the Beginning of the Feast) 2 stanzas; Payeongok (罷宴曲 Song at the End of the Feast) 2 stanzas; Hauyo (夏雨謠 Song in Summer Rain) 2 stanzas; Manheung (漫興 A Rush of Excitement) 6 stanzas; Eobusasisa (漁父四時詞 Fisherman’s Calendar) 40 stanzas; Mongcheonyo (夢天謠 Song of the Dream Visit to Heaven) 3 stanzas. As his dansijo (短時調), Yasimyo (夜深謠 Song in Late at Night), Ilmoyo (日暮謠 Song at Sunset), Jomuyo (朝霧謠 Song in the Morning Mist), Chuyajo (秋夜操Song at Autumn Night), Uhuyo (雨後謠 Song after Rain), Gisetan (饑歲歎), Chunhyoeum (春曉吟), Gogeum (古琴詠), Jeungbangeum (贈伴琴).

 

[2] Seong, Giok, Gosansiga e Natanan Jayeoninsik ui Gibon Teul (Basic Frame of Natural Recognition in Classical Siga), Gosan Yeongu 1 (A Study of Gosan), Gosan Yeonguhoe, 1987, 16.

 

[3] Lee, Hyeongdae, Hanguk Gojeonsiga wa Inmulhyeongsang ui Dongasiajeok Byeonjeon (East Asian Transformation of Korean Classical Siga and Characters), Somyung, 2002,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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