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ABC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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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Yi Tae Jun(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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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Yi Tae Jun
Family Name
Yi
First Name
Tae Jun
Middle Name
-
Preferred Name
-
Pen Name
Yi T`ae-Jun, YI TAE-JUN, T`aejun Yi
ISNI
0000000078343821
Birth
1904
Death
1956
Occupation
Novelist
Period
Modern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Korean(한국어)
  • French(Français)
  • Japanese(日本語)
  • English(English)
  • Chinese(简体)

 

도입부

 

이태준(1904~1960년대 초)은 한국의 소설가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4학년에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25년 일본에서 ≪조선문단≫에 <오몽녀>를 투고하여 입선, 같은 해 ≪시대일보≫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태준의 대표작으로는 <가마귀>, <달밤> 등의 단편소설과 ≪구원의 여상(女像)≫, ≪사상의 월야≫와 같은 장편소설, 그리고 문장론인 『문장강화』가 있다. 

 

생애

 

이태준(호 상허)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진명리에서 출생했다. 1909년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부친(이창하)를 따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했으나, 같은 해 8월 부친이 사망한 후, 다시 귀국했다.함경북도 배기미(梨津)에 정착하고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12년 모친이 사망하여, 친척집을 전전하며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했으나 가출하여 2년간 떠돌았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가람 이병기를 스승으로 만나 습작을 시작했다. 1924년 교지인 ≪휘문≫의 학예부장이 되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했으나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고, 같은 해 7월 3일 ≪시대일보≫에 발표하여 등단했다. 1926년 4월 동경의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중퇴 후 귀국했다. 이후 개벽사, 중외일보, 중앙일보 등 출판사,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32년 이화여전, 이화보육학교, 경성보육학교 등 학교에 출강하여 작문을 가르쳤다. 박태원, 이효석 등과 함께 1933년 구인회(九人會)를 조직했고, 창작에 몰두했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달밤>(1933.11), <가마귀>(1936.1) 등을 발표했다. 1943년 강원도 철원 안협으로 낙향하여 해방 전까지 칩거했다. 해방 이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선문학가동맹>,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소문화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1946년 월북.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등지를 여행했다. 단편 <해방전후>를 발표하여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했다. 1954년 3개월간의 사상검토 작업 중,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비판을 받았으며 한설야에 의해 비판·숙청되었다. 사망 시기는 불분명(1953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60년대 초 산간 협동 농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짐)하다.1) 

 

작품 세계

 

이태준은 단편소설 <오몽녀>로 등단한 이후, 콩트 6편, 단편 63편, 중편 4편, 장편 14편을 창작했다. 문단에서는 순수문학을 주장했던 ‘구인회’의 주요 멤버였다는 점과 결부되어 1930년대 ‘순수문학의 기수’라 평가받았다. 이와 더불어 이태준 소설의 특징은 치밀한 결구, 완벽하게 짜인 구조, 간결한 언어, 뚜렷한 성격 제시와 인물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이전 이태준의 작품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보다, 대상과 사건의 섬세한 묘사, 동정적 시선을 내세워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작품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소설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특히 종군기자 시절 쓴 <첫 전투>(1949), <고향길>(1950)은 사회주의 이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태준의 첫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인 단편소설 <달밤>(1933)은 ‘나’가 주인공 황수건을 관찰하며 서사가 진행된다. 시골에 살고 있는 순박하고 우직한 인물인 황수건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해 실패를 거듭한다. ‘나’는 황수건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그의 아내마저 형수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달아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황수건은 처량하게 달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지나가는데, 황수건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이 장면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이태준의 두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인 <가마귀>(1936)는 폐병에 걸려 고향에서 요양 중인 한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잘 팔리지 않는 작가’인 ‘그’는 차츰 병든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까마귀를 무서워하는 여성을 위해서 까마귀를 잡아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까마귀를 잡아 그녀를 찾아갔지만 이미 그녀는 죽은 뒤였다. 그녀와 그녀의 약혼자를 실은 영구차는 떠나고, 까마귀들만 운다. 이 작품은 당대의 시대상황과 관련 없는 내용을 다뤄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서정성과 문체의 참신함으로 이태준 단편소설의 진수를 드러낸다고 평가받는다.

 

단편소설집 ≪복덕방≫(1947)의 표제작인 <복덕방>은 1937년 ≪조광≫에 발표되었다. 복덕방에 모이는 서 참의, 박희완, 안 초시라는 세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안 초시의 자살과 장례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안 초시는 서해안에 항구가 생긴다는 소문에 딸의 돈으로 땅을 사지만 결국 사기를 당하고 자살한다. 무용을 하던 딸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아버지가 자살했음을 숨기고, 대신 안 초시에게 들었던 보험금으로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다. <복덕방>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당시 서민 생활의 단편을 부각시킨다.  

 

한편, 이태준의 장편소설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애정의 삼각관계 속에 갈등하지만, 애정관계를 극복하고 사회적인 자각을 통해 민중과 사회를 위한 사업에 뛰어든다. 이러한 도식성으로 인해 그간 통속소설 혹은 연애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태준의 장편소설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태준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사상의 월야≫(1941)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주인공 ‘송빈’과 그의 가족은 어린 시절 러시아로 망명하지만 부친이 사망한 후 귀국한다. 곧 모친이 병들어 사망하고 고아가 된 송빈은 친척집에 기거한다.고생 끝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지만 불합리한 규율을 강요하는 학교 측에 대항하다가 퇴학을 당한다. 그리고 송빈은 일본 유학을 위해 현해탄을 건넌다. 이 작품은 개인의 정신적 성장과 문명화를 상징하는 한편, 식민지 현실을 타계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여주며, 다른 장편소설들과 비교하여 통속성이 약하고,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2) 

 

주요 작품

 

1) 소설집 
≪달밤≫, 한성도서, 1934
≪가마귀≫, 한성도서, 1937
≪이태준 단편선≫, 박문서관, 1939
≪이태준 단편집≫, 학예사, 1941
≪돌다리≫, 박문서관, 1943
≪해방전후≫, 조선문학사, 1947
≪돌다리≫, 을유문화사, 1947
≪복덕방≫, 을유문화사, 1947(일본사, 1941.1(일문))
≪첫 전투≫, 문화전선사, 1949
≪고향길≫,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1952

 

2) 장편소설
≪제이(第二)의 운명≫, 한성도서, 1937
≪구원의 여상(女像)≫, 영창서관, 1937
≪황진이≫, 동광당서점, 1938
≪화관≫, 삼문사, 1938
≪삼자매≫, 문장사, 1939
≪청춘무성(靑春茂盛)≫, 박문서관, 1940
≪왕자호동≫, 남창서관, 1943
≪삼인우달(三人友達)≫, 남창서관, 1943(개제)
≪별은 창마다≫, 박문서관, 1945
≪세 동무≫, 범문사, 1946(개제)
≪사상의 월야≫, 을유문화사, 1946
≪농토≫, 삼성문화사, 1948
≪신혼일기≫, 광문서림, 1949(개제)

 

3) 전집
≪이태준 전집≫1-14, 깊은샘, 1988
≪이태준 문학전집≫1-18, 서음출판사, 1988
≪해금문학전집≫1-2, 삼성출판사, 1988
≪북으로 간 작가 선집≫3-4, 을유문화사, 1988
≪이태준 문학전집≫, 깊은샘, 1994
≪이태준 전집≫1-7, 소명출판, 2015

 

수상 내역

 

1941년 제 2회 조선예술상 수상
1946년 제 1회 해방문학상 수상(수상작 「해방전후」)
1948년 8·15 북조선최고인민회의 표창장 수상

 

참고 문헌

 

1) 강상호, <내가 치른 북한 숙청>, ≪중앙일보≫, 1993.6.7
2) 이병렬, ≪이태준 소설 연구≫, 평민사, 1998

 

 

Yi Tae-jun est surnommé le "Maupassant coréen" ; son nom de plume était Sang-heo (상허, 尙虛). Il est né à Sanmyeong-ni dans la province de Gangwon-do au nord-est de la Corée du Sud. Après avoir suivi une scolarité normale en Corée, il part étudier au Japon à l'Université Sofia à Tokyo. Il réalise ses débuts littéraires en 1925 avec sa nouvelle Oh Mong-nyeo (오몽녀). En parallèle à ses activités d'écrivain, il travaille pour diverses revues littéraires et culturelles et participe à la création de la revue littéraire Phrases (문장).Il dépeint dans ses récits la souffrance des intellectuels de son temps, et fait figure d'un écrivain au style raffiné, tout à fait représentatif de la littérature coréenne dans les années 1930. Son perfectionnisme et la minutie de ses récits lui ont valu le surnom de "Maupassant coréen".Dans les années 1930, il travailla pour les journaux Chosun Ilbo et Chung-ang Ilbo et fut un des premiers à découvrir le génie littéraire du poète Yi Sang et à conseiller sa lecture ; il a notamment appuyé la publication des poèmes de Yi Sang dans ce journal. Ne souhaitant pas rentrer dans la propagande du gouvernement japonais au moyen de la littérature coréenne, il se retira en province et cessa d'écrire2.Vers octobre 1946, il entreprend un voyage à travers la Russie communiste, et sur le chemin du retour, il décide de s'installer en Corée du Nord. Pendant la Guerre de Corée (1950 - 1953), il officie en tant qu'écrivain et reporter de guerre et se rend sur le front pour assister aux affrontements. En 1952, il est interrogé sur son éthique et sa sensibilité politique et en 1956 se retrouve expulsé et interdit de territoire par la Corée du Sud . Suite à cela, on perd sa trace et la date de son décès reste sujette à caution.

 

1933年1月6日、慶尚南道晋州市に生まれる。1956年、東国大学校仏教学科を卒業後、連合新聞、ソウル新聞の記者、大韓日報政治部長と文化部長、国際新聞論説委員、編集局長などを歴任した。その後、韓国文人協会の常任理事などを経て、釜山産業大と母校である東国大学校で後輩育成に努めた。1949年高校在学中に文芸月刊誌『文芸』に『비오는 날(雨が降る日)』が推薦され登壇した李の作品世界は3期に区分される。詩集『적막강산(寂寞江山)』が代表作品である第1期は、生の根源的な孤独と世界の空虚を早くから気づいた人間の精神世界を描いた時期である。この時期の詩には生の虚無が深く感じられるが、それに対し淡々とした姿勢が特徴である。また、世俗的な計算と理解から離れ、存在の無常な流れに身を任せ、悠々自適に生きる超脱の姿を見せている。第2期は、激烈な耽美性が特徴的な1970年代以降の時期である。人間の本質的な虚無を表象する死を目前に自意識の強い人間の絶望的な抵抗の姿、又は強い生命力が否定的に燃焼されることで人間の生を最も極端的に表現するのが第2期の作品の特徴でもある。1980年代半ば以降、李の詩は世界の虚無を第3者として観察する心理的余裕を見せる。現実の変化と恐怖を多少冷静に受け入れる落ち着いた姿勢を見せている。

 

 

Introduction

 

Yi Tae Jun (1904-early 1960s) was a Korean novelist. He attended Hwimun High School until his expulsion in his fourth year, after which he traveled to Japan as an international student. In 1925, he submitted his short story “Oh Mong-nyeo” (오몽녀 Oh Mong-nyeo) to Joseon Mundan and was named the winner. The same year, he made his literary debut via the Sidae Ilbo daily. Yi is known the short stories “Gamagwi” (가마귀 Crow) like and “Dalbam” (달밤 Moonlit Night), novels such as “Guwonui yeosang” (구원의 여상 The Feminine Statue of Salvation) and “Sasangui worya” (사상의 월야 Moonlit Night of Ideology), and the syntax theory text “Munjangganghwa” (문장강화 Strengthening of Sentences).

 

Life

 

Yi Tae Jun (pen name Sang-heo) was born on November 4, 1904, at Jinmyeong-ri, Myojang-myeon, Cheolwon-gun, Gangwon Province. In 1909, he migrated to Vladivostok with his father Yi Chang-ha, a pro-enlightenment intellectual, but the death of his father in August that year led to Yi’s return to Korea and settlement at Baegimi (梨津) in North Hamgyeong Province, where he learned Classical Chinese at the local seodang. Following his mother’s death in 1912, Yi was passed from one relative to another and managed to graduate from Bongmyeong Elementary School in Cheolwon, but ran away from home and wandered for two years. In 1921, he entered Hwimun High School and encountered Lee “Garam” Byeong-gi, who took him in as a writing student. In 1924, Yi became the editor of the school magazine Hwimun, but he was framed as a mastermind behind the mass school boycott and was expelled. With the help of his friend Kim Yeon-man, Yi went to Japan as an international student. In 1925, he submitted the short story “Oh Mong-nyeo” to Joseon Mundan and was named the winner. On July 3 of the same year, he made his literary debut via the Sidae Ilbo daily. In April of 1926, he was accepted to the department of arts in Sophia University, Tokyo, but dropped out the following year and returned to Korea. He worked as a journalist for publishers and newspapers such as Gaebyeoksa, Jongwe Ilbo, and the Joongang Ilbo. Starting in 1932, Yi began to teach at institutions such as Ehwa Yeojeon, Ehwa Early Education School, and Gyeongseong Early Education School as a composition instructor. In 1933, Yi banded together with other writers including Park Tae Won and Lee Hyo-seok to form the Group of Nine (Guinhoe) and delved into his creative endeavors. Yi went on to publish his representative works “Dalbam” in November of 1933 and “Gamagwi” in January of 1936. In 1943, he returned to his hometown in Anhyeop, Cheolwon, Gangwon Province, and remained in seclusion until the liberation of Korea. Following national independence, Yi actively participated in groups such as the Central Council for Cultural Construction in Joseon, the Literature Alliance of Joseon, the Democratic People’s Front, and the Joseon-USSR Cultural Association. In 1946, Yi crossed over to North Korea and traveled to areas such as Moscow and Leningrad as a member of the North Korean Cultural Delegation to the USSR. Yi received the 1st Liberation Literary Prize for his short story “Haebangjeonhu” (해방전후 About Liberation-Era). In 1954, he was investigated for his ideology and was criticized by Han Chorya alongside Im Hwa and Kim Nam-chon for his activities in the Group of Nine and his ideological beliefs, and was purged. The date of Yi’s death is unknown. (He is said to have been sentenced to hard labor at a communist farm in the mountains of Jagangdo in 1953 and died of illness in the early 1960s.)[1]

 

Work

 

Following his debut with the short story “Oh Mong-nyeo,” Yi wrote a total of six vignettes, 63 short stories, four novellas, and 14 novels. His membership in the Group of Nine, a proponent of “high literature,” earned him the moniker of “standard-bearer of high literature” in the 1930s. Yi’s works are known for their meticulous construction, perfect structure, concise wording, clear personalities, and characterization.

 

Before the liberation of Korea, Yi preferred to pursue artistry by depicting the details and sympathetic qualities of characters rather than reflect social realities. Post-independence, however, Yi made efforts to include socialist ideology in his fiction. Socialist ideology is particularly visible in “Cheot jeontu” (첫 전투 The First Battle) (1949) and “Gohyanggil” (고향길 The Way Homeward) (1950), which were written during his time as a wartime correspondent.

 

“Dalbam,” the title story of Yi’s first short story anthology, is told from the perspective of a character known only as “I,” who observes the protagonist Hwang Su-geon. Hwang is a stubborn and naïve man living in the countryside whose every effort fails due to his inability to adapt to the changing times. The narrator assists Hwang, but even that effort goes to waste, and in the end, Hwang’s wife runs off after much hounding from her sister-in-law. In the final scene, Hwang gazes despondently at the moon and passes by with a cigarette in his mouth. This snapshot is a portrait of Hwang’s humanity as well as Yi’s display of his love for people.

 

“Gamagwi,” the title story of his second anthology, stars a woman with consumption convalescing in her hometown. The character identified only as “him” slowly grows fond of the woman, and when he finds out that she is afraid of crows, decides to kill them for her. He succeeds and goes to her, but the woman has already died. The hearse carrying the woman and her fiancé departs, leaving only the cawing of crows. This story was criticized for showing no relevance to the historical situation of Yi’s time, but is now considered the quintessential Yi Tae Jun short story for its sentimentality and the creativity of its tone.

 

“Bokdeokbang” (복덕방 The Lounge) is the title story of the anthology Bokdeokbang (복덕방 The Lounge) (1947), and was originally published in Jogwang in 1937. The story centers on three old men—Seo Cham-ui, Park Hui-wan, and Ahn Cho-si—who gather at the lounge, and ends with the suicide and funeral of Ahn. Ahn hears of a harbor construction project on the west coast of Korea and uses his daughter’s money to purchase land, but finds out that he has been conned and takes his own life. His daughter, a professional dancer, hides the fact that her father’s death was self-inflicted, in order to save her own face. In exchange, she gives him a grand funeral with the life insurance payout. By focusing on the elders who are unable to keep pace with changing times, “Bokdeokbang” paints a picture of the lives of the financially disadvantaged in Yi’s era.

 

In Yi’s full-length novels, the characters are often involved in love triangles, but the relationships are ultimately resolved and the characters come to an understanding about society, throwing themselves into good works for the people and the community. This trend in his stories led to Yi’s novels being considered “pulp” or “romance fiction,” but scholars have made efforts in more recent times to reexamine these novels.

 

Yi Tae Jun’s representative novel Sasangui worya is heavily autobiographical in nature The protagonist Song Bin is still very young when his family seeks asylum in Russia, but following his father’s death, the family returns to Korea. His mother dies of illness soon after, and the orphaned Song is taken in by relatives. After much hardship, he enters Hwimun High School, but is expelled for revolting against unjust regulations set by the administration. Song then crosses the sea to Japan to study as an international student. This novel represents the personal growth and socialization of an individual, while also seeking a solution to the realities of life in a colonized country. It is considered closer to high literature than the rest of his full-length novels.[2]

 

Works (partial list)

 

1) Short story collections
≪달밤≫, 한성도서, 1934 / Dalbam (Moonlit Night), Hanseong, 1934.
≪가마귀≫, 한성도서, 1937 / Gamagwi (Crow), Hanseong, 1937.
≪이태준 단편선≫, 박문서관, 1939 / Yi Tae Jun danpyeonseon (Yi Tae Jun Selected Short Stories), Bakmunseogwan, 1939.
≪이태준 단편집≫, 학예사, 1941 / Yi Tae Jun danpyeonjip (Yi Tae Jun Short Story Collection), Hakyesa, 1941.
≪돌다리≫, 박문서관, 1943 / Doldari (The Stone Bridge), Bakmunseogwan, 1943.
≪해방전후≫, 조선문학사, 1947 / Haebangjeonhu (About Liberation-Era), Joseon Munhaksa, 1947.
≪돌다리≫, 을유문화사, 1947 / Doldari (The Stone Bridge), Eulyoomunhwasa, 1947.
≪복덕방≫, 을유문화사, 1947 / Bokdeokbang (The Lounge), Eulyoomunhwasa, 1947.
≪첫 전투≫, 문화전선사, 1949 / Cheot jeontu (The First Battle), Munhwajeonseonsa, 1949.
≪고향길≫,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1952 / Gohyanggil (The Way Homeward), Alliance of Zainichi Educators, 1952.

 

2) Novels
≪第二의 운명≫, 한성도서, 1937 / Je-2-ui unmyeong (The Fate of the Second), Hanseong, 1937.
≪구원의 여상(女像)≫, 영창서관, 1937 / Guwonui yeosang (The Feminine Statue of Salvation), Yeongchangseogwan, 1937.
≪황진이≫, 동광당서점, 1938 / Hwang Jini (Hwang Jini), Donggwangdang, 1938.
≪화관≫, 삼문사, 1938 / Hwagwan (Flower Crown), Sammunsa, 1938.
≪삼자매≫, 문장사, 1938 / Samjamae (Three Sisters), Munjangsa, 1938.
≪청춘무성 (靑春茂盛)≫, 박문서관, 1945 / Cheongchumuseong (Teeming with Youth), Bakmunseogwan, 1945.
≪왕자호동≫, 남창서관, 1943 / Wangja Hodong (The Prince Hodong), Namchangseogwan, 1943.
≪삼인우달 三人友達≫, 남창서관, 1943 / Saminudal (Three Friends), Namchangseogwan, 1943.
≪별은 창마다≫, 박문서관, 1945 / Byeoreun changmada (The Stars in Every Window), Bakmunseogwan, 1945.
≪세 동무≫, 범문사, 1946 / Se dongmu (Three Friends), Beommunsa, 1946.
≪사상의 월야≫, 을유문학사, 1946 / Sasangui worya (Moonlit Night of Ideology), Eulyoomunhwasa, 1946.
≪농토≫, 삼성문화사, 1948 / Nongto (Farmland), Samseongmunhwasa, 1948.
≪신혼일기≫, 광문서림, 1949 / Sinhonilgi (Honeymoon Diaries), Gwangmunseorim, 1949.

 

3) Collected works
≪이태준 전집≫ 1-14, 깊은샘, 1988 / Yi Tae Jun jeonjip 1-14 (The Collected Works of Yi Tae Jun vols. 1-14), Gipeunsaem, 1988.
≪이태준 문학전집≫ 1-18, 서음출판사, 1988 / Yi Tae Jun munhakjeonjip 1-18 (The Collected Works of Yi Tae Jun’s Literature vols. 1-18), Seoeum, 1988.
≪해금문학전집≫ 1-2, 삼성출판사, 1988 / Haegeummunhakjeonjip 1-2 (Collection of Formerly Banned Literature vols. 1-2), Samsung, 1988.
≪북으로 간 작가 선집≫ 3-4, 을유문화사, 1988 / Bugeuro gan jakka seonjip 3-4 (Collection of Authors Who Went Northward vol. 3-4), Eulyoomunhwasa, 1988.
≪이태준 문학전집≫, 깊은샘, 1994 / Yi Tae Jun munhakjeonjip 1-14 (The Collected Works of Yi Tae Jun’s Literature vols. 1-14), Gipeunsaem, 1994.
≪이태준 전집≫ 1-7, 소명출판, 2015 / Yi Tae Jun jeonjip 1-7 (The Collected Works of Yi Tae Jun vols. 1-7), Somyung, 2015.

 

Awards

 

2nd Joseon Art Prize (1941)
1st Liberation Literary Prize (1946) for “Haebangjeonhu”
8.15 North Korea Supreme People’s Assembly Award (1948)

 

References

 

[1] Kang, Sang-ho, “My Experiences of North Korean Purges,” Joongang Daily, June 7, 1993.
[2] Lee, Byeong-ryeol, Research on the Novels of Yi Tae Jun, Pyeongminsa, 1998.

 

李泰俊(1904-未详),韩国小说家。1925年在《朝鲜文坛》发表《五梦女》(《오몽녀》),从此开始创作活动。其作品提升了短篇小说的抒情性,兼具艺术的完美和深度。作家因此被视为韩国的代表短篇小说作家。        


短篇小说集《月夜》(《달밤》,1934)、《乌鸦》(《가마귀》,1937)、长篇小说《思想的月夜》(《사상의 월야》,1946)


Original Works15 See More

  • DLKL
    Korean(한국어) Printed/Published Work
    고귀한 사람들

    Gogwihan saramdeul

    Yi Tae Jun / 이태준 / 1953
  • 까마귀
    Korean(한국어) Printed/Published Work
    농군: 이태준 단편선

    Nonggun: itaejun danpyeonseon

    Yi Tae Jun / 이태준 / 2006
  • 달밤
    Korean(한국어) Printed/Published Work
    달밤

    Dalbam

    Yi Tae Jun / 이태준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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