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
김규동(1925~2011)은 한국의 시인이다. 1948년 ≪예술조선≫에 시 <강>이 입선되어 등단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같은 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당선되었다. 《후반기》 동인으로, 전후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했고, 한국예술인총연합 고문,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냈다. 2011년 9월 28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애
김규동은 1925년 2월 13일 함경북도 종성에서 출생했다. 경성고등 보통학교 졸업, 1948년 평양종합대학(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과 중퇴 후, 시인 김기림을 찾아 남한으로 왔다. 1950년 ≪연합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사에서 근무했다. 1951년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동인으로 활동했고, 김수영, 천상병 시인 등과 교류했다. 1955년 첫 시집 『나비와 광장』 출간 후, 1962년부터 약 10년 가량 절필했다.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했고, 1984년 민주통일국민회의 중앙위원을 지냈다. 1988년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 공동 대표, 198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냈다. 2001년 시각전(詩刻展)을 열었다. 2006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고, 2011년 2월 ≪김규동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2011년 9월 28일 향년 86세로 타계했다.
작품세계
김규동은 1948년 ≪예술조선≫에 <강>을 발표하였으며,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가 당선되었고, 같은 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당선되었다. 첫 시집 ≪나비와 광장≫(1955), ≪진공회담≫, ≪밤의 신화≫에서는 한국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을 다루지만 새로운 문학적 도전과 실험을 시도한다. 이들 시집에는 외국의 문학이론, 특히 초현실주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체파 운동 등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전망 없는 사회에 대한 고민과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1)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박인환, 조향, 김경린, 이봉래, 김차영 등과 ≪후반기後半期≫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대 모더니즘이 거두었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한 작업 중에 발표한 것이 시 <불안한 속도>다. 김규동은 이 시를 통해 과거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처럼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1959년 ≪새로운 시론≫으로 후반기 동인 중 유일하게 시론을 발표한 김규동은 시에는 현실 반영과 비판 그리고 역사의식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시인이 홀로 현대문명의 소음을 피하여 화조풍월의 고향 산천을 찾아 영구히 하향(下鄕)해서는 아니된다. 한 시대의 예술정신이란 그 시대의 가장 강렬하고 대표적인 저항정신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후반기 회원들은 청년의 기개로 전통을 반대하며 도시적 취향으로 과감하게 언어를 두고 실험정신을 발휘하였으나, 시선집 ≪깨끗한 희망≫(1985)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50년대 모더니즘 문학운동이 민족 현실을 다루지 못했다고 고백하였다.2)
1962년부터 10년에 걸친 절필 이후, 1974년부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민족문학 진영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민족분단 문제, 사회노동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발화하면서 문학의 현실참여를 실천하였다. 절필 이후 발표한 첫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의 자서에서 “비탄에 젖은 절망의 노래가 어찌 사회와 민중의 내일을 위하여 빛이 될 수 있었을까 보냐.”라고 하면서 시 창작이란 것이 개인의 정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1970년대 군부독재와 산업화의 분위기 속에서 주로 민중시를 창작하면서 분단문제를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를 시에 담았다. 80년대에는 독재권력의 문제 등 정치적 부조리를 정면으로 언급하며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문학운동에 동참하였다.3)
김규동의 작품세계를 정리해보면, 초창기에는 죽음 의식이 강하게 드러났고, 그것은 실향민으로서의 좌절감, 고립의식 등이 변용된 또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시인의 작품에서는 죽음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나비 이미지가 주요한 대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시인이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시인은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시인의 정신사적 궤적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4)
한편 김규동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복의 대상은 어머니와 고향이며 동시에 ‘회복’은 분단체제 하에서 갈등해온 민족을 향해있다. 시인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회복’의 정신은 고향과 민족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5)
주요작품
1) 시집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현대의 신화≫, 덕련문고, 1958
≪죽음 속의 영웅≫, 근역서재, 1977
≪깨끗한 희망≫, 창비, 1985
≪하나의 세상』, 자유문학사, 1987
≪오늘밤 기러기 떼는≫, 동광출판사, 1989
≪생명의 노래≫, 한길사, 1991
≪느릅나무에게≫, 창비, 2005
≪김규동 시선집≫, 창비, 2011
2) 산문집
≪지폐와 피아노≫, 한일출판사, 1962
≪어머님 상서≫, 한길사, 1987
≪어머님 지금 몇 시인가요≫, 나루, 1991
≪시인의 빈손- 어느 모더니스트의 변신≫, 소담출판사, 1994
≪나는 시인이다≫, 바이북스, 2011
3) 평론집
≪새로운 시론≫, 산호장, 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 한일출판사, 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 백미사, 1979
수상 내역
1959년 자유문인협회상
1996년 은관문화훈장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참고문헌
1) 이동순, <김규동 시세계의 변모과정과 회복의 시정신>, ≪동북아 문화연구≫26, 2011.3
2) 김규동, ≪나는 시인이다≫, 바이북스, 2011.3
3) 이동순, <흰 나비와 자기부정의 시학>, 김규동시선집 ≪길은 멀어도≫, 미래사, 1991
4) 이명찬, <김규동론>, ≪국어교육≫148, 2015.2
5) 맹문재, ≪김규동 깊이 읽기≫, 푸른사상, 2012
Introduction
Kim Kyudong (1925~2011) was a Korean poet. He made his literary debut in 1948 when his poem ‘Gang (강 River)’ was published in Yesul Joseon. In 1955, he won Hankook Ilbo New Writer’s Contest and Chosun Ilbo New Writer’s Contest for his works “Urineun salrira” (우리는 살리라 We Will Live) and “Podaega itneun poonggyeong” (포대가 있는 풍경 View with Artillery Corps) respectively. A member of the literary group Hoobangi, Kim led the modernist poetry movement after the war, and served as an advisor for the Korean Federation of Artists and the Writers Association of Korea. He passed away on September 28th, 2011 from a chronic disease.
Life
Kim Kyudong was born on February 13th , 1925 in Jongseong, North Hamgyeong Province. He graduated from Gyeongseong High School, and dropped out of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t Pyongyang University (now Kim Il-sung University) in 1948, before travelling to South Korea in search of the poet Kim Kirim. In 1950, he worked at the Yonhap Shinmun and the Hankook Ilbo. In the following year, he joined the literary group Hoobangi, whereby he interacted with other poets like Kim Su-Young and Cheon Sang-byeong. After publishing his first collection of poetry Nabiwa gwangjang (나비와 광장 Butterfly and Square) in 1955, he stopped writing for about ten years from 1962. In 1974, he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Congress for the Restoration of Democracy. In 1984, he served on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National Congress for Democracy and Unification. In 1988, he became a co-representative of the National Congress for Independent Democracy and Unification, and then an advisor for the National Association of Literary Writers. Kim hosted an exhibition of poetry engravings in 2001, and won the Manhae Prize for Literature in 2006. His poetry collection Kimgyudong si seonjip (김규동 시선집 Collected Poems of Kim Kyudong) was published in February 2011. His died on September 28th, 2011 at the age of 86.
Writing
Kim Kyudong published “Gang (강 River)” in Yesul Joseon in 1948. In 1955, he won Hankook Ilbo New Writer’s Contest and Chosun Ilbo New Writer’s Contest for his works “Urineun salrira” (우리는 살리라 We Will Live) and “Podaega itneun poonggyeong” (포대가 있는 풍경 View with Artillery Corps) respectively. His first three poetry collections Nabiwa gwangjang (나비와 광장 Butterfly and Square), Jingong heodam (진공회담 Vacuum Conference), and Bameui shinhwa (밤의 신화 Legends of the Night) deal with the tragedy of the Korean War, while putting forward new literary challenges and experiments. These collections show direct influence of foreign literary theories, particularly surrealism, Freud’s psychoanalysis and Cubism, and illustrate an awareness of society without any prospects. 1)
While taking refuge in Busan in 1951, he established a literary group called Hoobangi with Park Inhwan, Cho Hyang, Kim Kyungrin, Lee Bongrae and Kim Chayoung, for the purpose of upholding the success of the modernists of the 1930s and overcoming their limitations. His effort resulted in the publication of the poem “Bulanhan sokdo” (불안한 속도 Uneasy Speed), which marked his departure from the modernists of the 1930s and created a new style. In 1959, he published Saeroun siron (새로운 시론 New Poetic Theory), in which he stressed that poetry should reflect and criticize reality with a historical consciousness. He claimed, “The poet should not move away permanently from the noise of modern civilization alone—in search of the beauties of nature in his hometown. The artistic spirit of the era is the most powerful and representative spirit of resistance.’ Filled with youthful spirit, the members of Hoobangi opposed traditions and made daring experiments based on their own urban sentiments. However, as admitted in Kkaekkeutan huimang (깨끗한 희망, Clean Hope) (1985), the modernist literary movement of the 1950s failed to address national reality. 2)
After a 10-year hiatus from 1962, he resumed writing in 1974 when he joined the National Literacy Council and the Korean Federation of Artists. By raising his voice about the issues of national division and social labor, he brought literature into reality. In his poetry collection, Jugeum sogui yeongung (죽음 속의 영웅 Hero in Death) (1997), he asked “How could a song of despair imbued with grief become light of the future for society?” In other words, he emphasized that poetry-writing should not remain in the realm of personal sentiments but turn into a movement instead. In the 1970s, he created mostly popular poems amid the atmosphere of military dictatorship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midst of the military dictatorship and industrialization during the 1970s, he wrote mostly national poetry that embodied his will to overcome the problem of national division. In the 1980s, he confronted the political absurdities of the dictatorial government, and joined the literary movement to achieve democracy and social justice. 3)
Kim’s early poems reveal a sharp consciousness of death, no doubt resulting from his frustration and sense of isolation as a displaced person. In his later poems, the butterfly image emerges as an important subject matter, which can be seen as a representation of the poet’s longing for his hometown and family. In addition, his poems about his mother show changes that trace the poet’s spiritual trajectory. 4)
The overriding theme in Kim Kyudong’s poetic world is ‘recovery’—targeted at his mother and hometown. At the same time, it is aimed at the nation suffering from discord and division. The spirit of recovery as pursued constantly by the poet points to his aspirations for his homeland and people. 5)
Works
1) Poetry Collections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 Nabiwa gwangjang (Butterfly and Square), Sanhojang, 1955
≪현대의 신화≫, 덕련문고, 1958 / Hyeondaeui sinhwa (Modern Mythology), Deokryeon, 1955
≪죽음 속의 영웅≫, 근역서재, 1977 / Jugeum sogui yeongung (Hero in Death), Geunyeok Seojae, 1977
≪깨끗한 희망≫, 창비, 1985 / Kkaekkeutan huimang (Clean Hope), Changbi, 1985
≪하나의 세상≫, 자유문학사, 1987 / Hanaui sesang (One World), Jayu Munhaksa, 1987
≪오늘밤 기러기 떼는≫, 동광출판사, 1989 / Oneulbam gireogi tteneun (A Flock of Geese Tonight), Dongwang , 1989
≪생명의 노래≫, 한길사, 1991 / Saengmyeongui norae (Song of Life), Hangil, 1991
≪느릅나무에게≫, 창비, 2005 / Neureumnamuege (To the Elm Tree), Changbi, 2005
≪김규동 시선집≫, 창비, 2011 / Kim Kyudong si seonjip (Collected Poems of Kim Kyudong), Changbi, 2011
2) Essay Collections
≪지폐와 피아노≫, 한일출판사, 1962 / Jipyewa piano (Banknotes and Piano), Hanil, 1962
≪어머님 상서≫, 한길사, 1987 / Eomeonim sangseo (A Letter to My Mother), Hangil, 1987
≪어머님 지금 몇 시인가요≫, 나루, 1991 / Eomeonim jigeum myeon siingayo (Mother, What Time Is It Now?), Naru, 1991
≪시인의 빈손- 어느 모더니스트의 변신≫, 소담출판사, 1994 / Siinui binson- eoneu modeoniseuteuui byeonsin (Poet’s Empty Hands: One Modernist’s Transformation), Sodam, 1994
≪나는 시인이다≫, 바이북스, 2011 / Naneun siinida (I’m a Poet), Bybooks, 2011
3) Literary Criticism
≪새로운 시론≫, 산호장, 1959 / Saeroun siron (New Poetic Theory), Sanhojang, 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 한일출판사, 1962 / Jiseonggwa godogui munhak (Literature of Intellect and Solitude), Hanil, 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 백미사, 1979 / Eoduun sidaeui majimang eoneo (The Last Language in the Age of Darkness), Baekmisa, 1979
Awards
Jayu Writers’ Association Award (1959)
The Republic of Korea's Eungwan Order of Cultural Merit (1996)
Manhae Prize for Literature (2006)
National Academy of Arts of Republic of Korea (2011)
References
1) Lee Dongsoon, Transformation of Kim Kyudong’s Poetic World and Poetry of Recovery, Journal of North-east Asian Culture, 2011.
2) Kim Kyudong, Naneun siinida (I’m a Poet), Bybooks, 2011.
3) Lee Dongsoon, White Butterfly and Poetics of Self-denial, Miraesa, 1991.
4) Lee Myeongchan, Korean Language Education, 2015.
5) Maeng Munjae, Understanding Kim Kyudong, Purun Sasang,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