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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Kim Yeongrang(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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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Kim Yeongrang
Family Name
Kim
First Name
Yeongrang
Middle Name
-
Preferred Name
Kim Yeongrang
Pen Name
Kim Yeong-nang, Kim Yeong-Nan, 金永郎
ISNI
0000000115734283
Birth
1903
Death
1950
Occupation
Poet
Period
Modern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도입부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은 한국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한국 최고의 순수서정 시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며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1934)은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으로 유명하다.1) 시문학파2)의 대표적인 시인이고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순수시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생애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한학을 공부하면서 자랐고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지만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강진으로 내려갔다가 발각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 일로 휘문의숙을 졸업하지 못한 채 이듬해인 1920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과에 진학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발생으로 귀국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창작에 몰두한다.  

 

휘문의숙 시절 홍사용(洪思容)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대한 안목을 키웠고 아오야마학원에서 만난 박용철(朴龍喆)과는 평생의 지기가 된다. 박용철은 그에게 시를 쓸 것을 권유한 사람이었고, 김영랑의 모든 시를 다 외울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던 사람이다.3) 김영랑은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동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고 박용철이 발간했던 《시문학》4), 《문학》5) 등 잡지를 통해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사행소곡〉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하였고 1934년 《문학》 창간호에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는다. 1935년 첫 시집 《영랑시집》이 박용철에 의해 시문학사에서 간행되었고, 1939년 《문장》에 〈독을 차고〉를 발표하면서 창작을 재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였고 광복 후에는 고향인 강진으로 내려가 우익 운동에 참여하는 등 행동가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시기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던 중 폭격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태원 남산 기슭에 가매장하였다가 1954년 망우리로 이장하였으며 1981년에 유고집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간행되었다.

 

작품 세계 

 

초기 시의 음악적 리듬과 서정성
1930년 3월 《시문학》에 〈동백잎에 빗나는 마음〉(후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로 개제)과 〈四行小曲(七首)〉를 비롯한 1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한 김영랑은 등단과 동시에 박용철에 의해 “사행소곡(四行小曲)은 천하일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낸다.6) 박용철의 이와 같은 평가는 훗날 김영랑이 순수·유미의 서정시인으로 평가 받는 계기가 된다. 

 

김영랑의 초기 시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그의 시가 보여주는 뛰어난 음악성이고 다른 하나는 간결하고 정갈한 언어로 표현된 순수서정의 세계이다. 뛰어난 음악적 리듬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하였던 그의 개인적 이력과 관련되어 논의되었고 서정적인 측면은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거나 혹은 현실인식이 배제된 결과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동백잎에 빗나는 마음〉은 김영랑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시일뿐만 아니라 《시문학》 창간호의 시적 특징을 대표하는 시로도 정평이 나있다.7) 5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초기 4행시의 변형이며 시적 화자의 마음의 상태를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고 있는 감각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시이다. 이런한 감각적인 언어 중에서 유독 주목되는 부분은 “마음”이라는 시적 대상이다. 김영랑은 총 86편의 시 중 54편에서 “내 마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연구자들에 의해 통계된 바 있다. 이처럼 김영랑의 초기 시에서 “내 마음”은 상당히 중요한 시적 대상이었고 이러한 “내 마음”에 집중하고 있는 초기 시의 세계는 주로 슬픔, 비애, 우울 등과 같은 정서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들은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었고 이런 “내 마음”의 슬픔과 좌절이 ‘기다림’의 미학8)으로 승화된 것이 바로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로 시작되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로 마무리되면서 기다림에서 시작하여 다시 기다림으로 수렴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순수한 기다림이 아닌 크나큰 상실의 슬픔을 내포하고 있는 기다림이다. 시적 화자는 피었다 지는 모란을 보면서 느꼈던 상실감을 기다림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고 이러한 희망과 슬픔의 양가적인 감정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시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후기 시의 사회적 참여 의식  

초기 시에서 김영랑은 주로 자연의 이미지나 사물을 통해 비애, 슬픔, 상실 등과 같은 우울한 감정 세계를 선보였지만 1939년 《문장》에 〈독을 차고〉를 발표하면서 다시 시작 활동을 재개한 김영랑의 시 세계는 초기 시와는 다른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毒을 차고〉에서 시적 화자는 마음속에 ‘독’을 품고 주위에서 그를 노리는 이리, 승냥이들과 대결한다. 그러면서 시적 화자는 말한다. 산채로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더라도 외로운 魂을 건지기 위하여 독을 차고 갈 것이라고. 이 시의 발표 시기가 식민지 말기라는 상황을 염두에 둘 때 그 ‘독’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저항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지점이지만 이와 같은 저항이 적극적인 사회적 저항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시인의 내적 갈등으로 남았다는 것은 하나의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또한 김영랑 시의 한계 중의 하나로 지적된다. 

 

그는 비록 초기 시의 순수서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이러한 부분이 해방 후의 시들에서 조금은 보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해방 후 발표된 〈북〉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확인가능하다.
  

주요 작품

 

 시집: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영랑시선》, 중앙문화협회, 1949.
 《영랑시선》, 정음사, 1956.
 《영랑시집》, 박영사, 1959.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중당문고, 1975.
 《모란이 피기까지는》, 문학세계사, 1981.

 
번역된 작품  

 

Lê Đăng Hoan Kim Ki Te, Đến Khi hoa Mẫu Đơn Nở, Nhà Xuất Bản Văn Học, 2007.9) 
Anthony of of Taizé, Until peonies bloom: the complete poems of Kim Yeong-nang, Merwin Asia, 2010.10)
Brother Anthony of Taize, Korean Poems Printed by Letterpress, ASIA, 2016.11)

 

수상 내역

 

  2008년 금관문화훈장 수여

  

참고 문헌

 

(1) 후주
1) 박노균, 《김영랑: 최고의 순수 서정 시인》, 건국대학교출판부, 2003.
2)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8843&cid=40942&categoryId=32861
3) ‘나는 문학이다’의 《영랑시집》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492&cid=60538&categoryId=60538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7934&cid=46645&categoryId=46645
5) 한국잡지100년 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1823&cid=42192&categoryId=51076
6) 박용철, 〈신미 시단의 회고와 비평-고귀한 감정과 표현의 능력〉, 《중앙일보》, 1931.12.7.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1807&cid=46645&categoryId=46645
8) 정명교, 〈한국적 서정시를 태동시킨 김영랑의 시와 박용철의 시론〉, 《다산과 현대》10,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7. 
9) [한국문학번역원] 전자도서관 번역서지정보 https://library.ltikorea.or.kr/node/12023
10) [한국문학번역원] 전자도서관 번역서지정보 https://library.ltikorea.or.kr/node/9170
11) [한국문학번역원] 전자도서관 번역서지정보 https://library.ltikorea.or.kr/node/30545


(2)기타 참고 자료  
김용직•박철희, 《한국현대시작품론》, 문장사, 1981.
김용직 외, 《한국현대시사연구》, 일지사, 1983.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이숭원, 《영랑을 만나다: 영랑 시 전편 해설》, 태학사, 2009.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김영랑
나는 문학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492&cid=60538&categoryId=60538
한국현대문학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279&cid=41708&categoryId=41737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8875&cid=60533&categoryId=60533

 

Introduction

 

Kim Yeongrang (birth name: Kim Yoon-sik, 1903-1950) was a Korean poet.  Considered as one of the greatest lyric poets in Korea, he is most famous for his ground-breaking work Morani pigikkajineun (모란이 피기까지는 Until Peonies Bloom) published in 1943.1) As a major figure in the school of poetic literature, he led the Pure Poetry Movement2) along with Park Yongcheol and Chong Chi-Yong

 

Life

 

He was born in 1903 in Gangjin, North Jeolla Province as the eldest of five children in a wealthy landowning family. He grew up studying Chinese literature, and graduated from Gangjin Elementary School in 1915, before moving to Seoul to study English at the Christian Youth Center. In 1917, he enrolled at Whimoon High School. Follow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he returned to Gangjin, where he was caught in possession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was subsequently jailed for six months, which hindered him from graduating from Whimoon High School. In the following year, he went to Japan to study for a degree in English at Aoyama University. In the wake of the 1923 Great Kantō earthquake, he returned to Korea to focus on his writing career. 

 

During his time at Whimoon High School, his friendship with the likes of Hong Sa-yong helped develop his literary outlook. It was at Aoyama University that he met Park Yongcheol, who was to become his lifelong friend. Not only did Park first encourage Kim to write poetry, but also, he remained an ardent supporter of his work.3) Kim’s writing career was prompted by the literary journals Poetic Literature 4) and Munhak 5)—both published by Park Yongcheol. Kim made his debut as a poet in March 1930 by publishing “Sahaengsogok” (사행소곡 A Song of Four Verses) in the inaugural issue of Poetic Literature. In 1934, the publication of “Morani pigikkajineun” (모란이 피기까지는 Until Peonies Bloom) in the inaugural issue of Munhak earned him much fame. His first collection of poetry Yeongnangsijip (영랑시집 Poetry of Kim Yeongrang), was published by Park Yongcheol’s Simunhaksa in 1935. In 1939, he resumed his creative endeavour by publishing “Dogeul chago” (독을 차고 Filled with Poison) in the literary journal Munjang.

 

Toward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he refused to change his name or visit Japanese shrines. After liberation, he returned to Gangjin and took part in the right-wing effort. In 1950, at the start of the Korean War, he was killed in bombing in Seoul. He was temporarily buried at the foot of Mt. Namsan until 1954 when his grave was moved to Mangu-ri. Kim’s last collection of poetry, Morani pigikkajineun (모란이 피기까지는 Until Peonies Bloom) was published posthumously in 1981. 

 

Writing 

 

Musicality and Lyricism of Early Poetry 

Kim began his writing career in March 1930 with the publication of 13 poems in Poetic Literature, including “Dongbaegipe bitnaneun maeum”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Heart Glowing with Camellia Leaves) and “Sahaengsogok” (사행소곡 A Song of Four Verses). Almost immediately, he emerged as a powerful voice in the literary circle. Park Yongcheol lauded “Sahaengsogok” as ‘the finest poetry on earth.’ 6) Park Yongcheol’s favorable evaluation of Kim’s work helped him establish himself as a lyric poet of pure aesthetics. 

 

Kim’s early poems drew attention for two reasons—one is the outstanding musicality of his poetry and the other is the world of pure lyricism expressed in concise and beautiful language. The excellent rhythms of his poetry were based on his personal engagement with music since a young age. For the lyrical quality of his work, the poet was at times criticized for turning a blind eye to or excluding colonial reality. His representative early poem “Dongbaegipe bitnaneun maeum” famously defined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 inaugural issue of Poetic Literature.7) The five stanzas (a variation of the original four-stanza poetry) are characterized by sophisticated language, which compares the narrator’s mind to a flowing river. In particular, the poem focuses on ‘the heart’ as a poetic object. In 54 of the 86 poems he wrote, Kim’s focus was on ‘my heart’. As such, ‘my heart’ plays an important role in Kim’s early poetry imbued with sentiments like sadness, grief, and depression. However, these sentiments are not directly expressed. Rather, they are mostly implied by images of nature. Feelings of sadness and despair in ‘my heart’ become elevated to the aesthetics of waiting 8) in his celebrated work “Morani pigikkajineun” (모란이 피기까지는 Until Peonies Bloom). The poem stars with ‘Until peonies bloom / I just go on waiting for my spring to come,’ and ends with ‘Until peonies bloom / I just go on waiting / for a spring of glorious sorrow.’ In other words, it starts and ends with the act of waiting. This wait, however, encompasses grief of loss. Through waiting, the narrator seeks to overcome the sense of loss he feels while watching the peonies bloom and fall. These ambivalent feelings of hope and sorrow are made transparently clear in the line ‘a spring of glorious sorrow.’

 

Social Consciousness of Late Poetry    

In his early poems, Kim mostly used images or objects of nature to present a world of gloom. However, when he resumed poetry writing in 1939 with the publication of “Dogeul chago” (독을 차고 Filled with Poison) in Munjang, he created a new poetic world with a different social consciousness than before. The narrator of “Dogeul chago” fills his heart with poison and goes up against wild animals attacking him from all sides. The narrator resolves to save his lonely soul by filling his heart with poison, even though he may get ripped apart alive by the animals. Given that the poem was published towards the end of the colonial era, this ‘poison’ carries heavy significance. It is regrettable that this distinct point of resistance remains as the poet’s internal conflict rather than expanding into an active social struggle. Therefore, this is often criticized as one of the limitations of Kim’s poetry. 

 

Despite his departure from the world of pure lyricism found in his early poetry, Kim failed to engage actively in social participation. This issue is addressed to a certain extent in his post-liberation poems which include “Buk” (북 Drum). 

  

Works

 

Poetry Collections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 Yeongnangsijip (Poetry of Kim Yeongrang), Simunhaksa, 1935

《영랑시선》, 중앙문화협회, 1949 / Yeongnangsiseon (Selected Poems of Kim Yeongrang), Joongangmunhwa, 1949

《영랑시선》, 정음사, 1956 / Yeongnangsiseon (Selected Poems of Kim Yeongrang), Jeongeumsa, 1956

《영랑시집》, 박영사, 1959 / Yeongnangsijip, Bakyoungsa, 1959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중당문고, 1975 / Until Peonies Bloom, Samjungdang, 1975 《모란이 피기까지는》 문학세계사, 1981 / Until Peonies Bloom, Munhak segyesa, 1981 

 

Works in Translation

 

Lê Đăng Hoan Kim Ki Te, 2007.Đến Khi hoa Mẫu Đơn NởNhà Xuất Bản Văn Học 9) 

Brother Anthony of Taizé, Until peonies bloom: The Complete Poems of Kim Yeong-nang, Merwin Asia, 2010. 10)

Brother Anthony of Taizé, Korean Poems Printed by Letterpress, ASIA, 2016.11)

 

Award

 

The Republic of Korea's Geumgwan Order of Cultural Merit (2008)

 

References

 

(1) Notes

1) Park Nokyun, Gimyeongnang: choegoui sunsu seojeong siin, Konkuk University Press, 2003.

2) Doosan Encyclopedia: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8843&cid=40942&categoryId=32861

3) Nanŭn Munhagida: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492&cid=60538&categoryId=60538

4) Encyclopaedia of Korean Cultur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7934&cid=46645&categoryId=46645

5) 100 Years of Korean Magazine 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1823&cid=42192&categoryId=51076

6) Park Yongcheol, Korea Joongang Daily, December 7, 1931.

7) Encyclopaedia of Korean Cultur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1807&cid=46645&categoryId=46645

8) Jeong Myeong-gyo, Dasangwa hyeondae vol 10., Yonsei University, 2017.

9) LTI Korea Digital Library: https://library.ltikorea.or.kr/node/12023 

10) LTI Korea Digital Library: https://library.ltikorea.or.kr/node/9170 

11) LTI Korea Digital Library: https://library.ltikorea.or.kr/node/30545 

 

(2) See Also  

Kim Yongjik & Park Cheol-hee, Hangukyeondaesijakpumnon, Munjang, 1981.

Kim Yongjik et al., Hangukyeondaesisayeongu, Iljisa, 1983.

Kwon Youngmin, Hangukyeondaemunhakdaesajeon, SNU Press, 2004.

Lee Sungwon, Yeongnangeul mannada: yeongnang si jeonpyeon haeseol, Taehaksa, 2009.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김영랑

 

Nanŭn Munhagida: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492&cid=60538&categoryId=60538

 

Sourcebook of Modern Korean Literatur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279&cid=41708&categoryId=41737

  

Sourcebook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8875&cid=60533&categoryId=6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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