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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Heo Kyun

  • Birth
    1569 ~ 1618
  • Occupation
    Civil servant
  • First Name
    Kyun
  • Family Name
    Heo
  • Korean Name
    허균
  • ISNI

Description

  • Korean
  • English
  • 허균(許筠)

     

    작성 : 최원경(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분류 : 일반주제

     

    ◆기본 정보

    허균(許筠, 1569~1618)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문장가이자, 사상가, 개혁가이다. 중세의 예교(禮敎)에 저항하며 사회 모순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역모 사건에 걸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작가 생애

    허균은 당시 정치 세력 중, 동인(東人)의 실세인 허엽(許曄)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허성(許筬)은 남인(南人)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시’로 유명한 許난설헌이 허균의 누나이다. 허균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해, 유성룡(柳成龍)과 이달(李達)에게 학문과 시를 배웠다. 이후 허균은 서얼(庶孼)신분이었던 스승 이달을 위해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었다. 12세에 아버지가 죽고,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인 김씨와 첫아들을 잃은 후, 인간적인 번민을 겪기도 하였다. 25세에 『학산초담(鶴山焦談)』을 지었고, 29세에 장원급제한 후, 임진왜란의 모든 사실을 적은 『동정록(東征錄)』을 지었다.

    그는 남다른 재주로 30세에 병조좌랑(兵曹佐郎)에 오른 이래, 31세에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 36세에 수안군수(遂安郡守), 39세에 삼척부사(三陟府使), 40세에 공주목사(公州牧使), 46세에 호조참의(戶曹參議), 48세에 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리고 탁월한 문장으로 인해 중국 사신을 맞는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으로 세 번이나 선발되었으며,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두 차례의 사행을 다녀왔다. 두 차례의 사행에서 여러 명나라 학자들과 사귀었으며, 『태평광기(太平廣記)』를 포함하여 많은 책을 사왔다. 그러나 허균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매번 기생을 가까이 하였다거나, 첩의 자식들과 가까이 지낸다거나, 불교를 숭상한다는 등의 이유로 탄핵을 받았다. 1610년(광해군 2)유배를 떠난 이후, 칩거 생활 동안『한정록(閑靜錄)』, 『성수시화(惺叟詩話)』, 『도문대작(屠門大嚼)』등을 지었다. 1613년(광해군 5)에 가까이 지내던 서자 서양갑(徐羊甲) 등이 반란을 일으킨 칠서사건(七庶事件)에 연루되었다. 1618년에는 남대문에 광해군을 비방하는 격문(檄文)을 붙인 자가 허균의 심복인 현응민(玄應旻)이라는 것이 밝혀져, 50세의 나이에 역모죄로 능지처참(凌遲處斬) 되었다.

     

    ◆작품 세계

    대표적인 문집으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성수시화惺叟詩話」와 「도문대작屠門大嚼」 포함)와 「한정록」 등이 있다. 시화집(詩話集)으로는 『학산초담(鶴山樵談)』·과 시선집(詩選集)으로 『국조시산(國朝詩刪)」이 있다. 『고시선(古詩選)』·『당시선(唐詩選)』·『송오가시초(宋五家詩抄)』·『명사가시선(明四家詩選)』·『사체성당(四體盛唐)』 등의 시선집을 남겼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허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는 것은 「홍길동전」 이다. 학계에서는 「홍길동전」의 실제 작가와 관련하여 여러 다른 의견이 있지만, 이 작품은 허균의 인간관계와 사회의식 등 많은 부분이 반영되어 있어 허균의 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당시 불합리한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민중의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던 허균은 「유재론(遺才論)」이나 「호민론(豪民論)」 같은 글을 통해서 그의 개혁적인 사고를 드러내었다.

    허균은 「유재론」에서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낮은 사람은 쓰지 않는 당시 현실을 비판하였다. 반면에 「호민론」은 허균의 혁명이론을 함축하고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호민은 ‘사회모순의 약한 부분을 노려 혁명의 기회를 엿보는 존재’를 말한다. 이 호민이 바로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연결된다. 「호민론」에서 허균은 ‘국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강조하여, 민본(民本)사상을 위한 국왕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또 학문의 목적과 진위를 논한 「학론(學論)」과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국방을 강화해야 함을 논한 「병론(兵論)」 역시 허균의 개혁적인 사상을 잘 보여준다. 그 외 허균은 5편의 전(傳)을 지었는데, 특히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은 전통적인 전(傳)에서 변모하여 소설화의 경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징 및 문학사적 평가

    허균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불교·도교·서학(천주교)에 두루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유럽의 지도와 천주교의 『게십이장(偈十二章)』을 얻어 오는 등, 새로운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안정복(安鼎福)의 기록에 따르면 허균은 “남녀 간의 情欲은 하늘이 준 것이고, 윤리와 기강을 分別하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은 성인보다 높으니,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준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순암선생문집(順菴先生文集)』 권17,「천학문답(天學問答)」)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한다. 허균은 예교(禮敎)의 가르침과 성인(聖人)이 제정한 ‘분별의 윤리와 이념’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남녀 간의 정욕을 인위적으로 억압하는 예교의 허구성을 정면에서 문제 삼았다.

    이처럼 예교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그의 사상은 문학으로 이어져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허균은 기존의 성리학자들처럼 관념적인 이념을 전달하고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도구로 문학을 인식하지 않았다. 그는 문학을 자기의 개성이나 정감을 표현하기 데 초점을 두었다. 이를 기반으로 허균은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고, 타자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그 결과 당시 문단은 시를 보는 허균의 안목을 탁월한 것으로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개성적인 필치(筆致)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형상화하고 새로운 문학세계를 구현하려는 그의 개성은「홍길동전」으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의 문집 곳곳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당대 허균에 대한 평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불온한 사상으로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로 지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아버지 허협과 성리학자인 이황(李滉)과 이이(李珥)가 허균을 두고 평한 기록은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문장가로서는 뛰어났으나 학문은 그에 못 미치는 인물이거나, 급진적인 말로 주장하다 결국 권력에 영합하여 희생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허균이 살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는 동아시아의 전환기로 조선 사회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 허균은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업적을 남기는 한편, 개혁적인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변화하는 시대와 현실의 고민을 문학에 담아내려고 하였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민족문학사연구소, 『한국 고전문학 작가론』, 소명출판, 2006.

    김동욱 편, 『허균의 문학과 혁신 사상』, 새문사, 1981.

    김동욱, 「교산허균(蛟山許筠)」, 『한국의 사상가 12인』, 현암사, 1975.

    김진세, 「허균연구(許筠硏究)」,

    『국문학연구』 2, 서울대학교, 1965.

    이이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의 생각』, 뿌리깊은 나무사, 1980.

    정주동, 「허균(許筠)」, 『한국의 인간상』 5, 신구문화사, 1972.

    조동일, 「영웅의 일생, 그 문학사적 전개」, 『동아문화』 10,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71.

    조동일, 「허균(許筠)」,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1978.

    임형택,「허균(許筠)의 문예사상」, 「어무적(魚無迹)의 시 세계와 홍길동전(洪吉童傳)」『한국문학사의 시각』 창작과 비평사, 1984.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2&cate1=Z&cate2=&dataGubun=서지&dataId=ITKC_BT_0292A [한국고전종합DB 고전번역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03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균 [許筠]

     

  • Heo Gyun (許筠)                             

     

    Introduction

    Heo Gyun (許筠, 1569–1618) was a civil official, writer, thinker and reformer in the mid-Joseon period. He left a large body of writing opposing Korea’s medieval etiquette-based education and criticizing the social contradictions of his time. Heo met a tragic death by execution after being implicated in a case of treason.

     

    Life

    Heo Gyun was the third son of Heo Yeop (許曄), an influential figure in the political faction known as the Easterners. His elder brother, Heo Seong (許筬), was a leading member of the Southerners faction, while his elder sister, Heo Nanseolheon, was a famous poet. Heo began learning to write at the age of five, studying and learning poetry under Yu Seong-nyong (柳成龍) and Yi Dal (李達). Later, Heo wrote Songok sanin jeon (蓀谷山人傳 Tale of Songok the Hermit) for Yi Dal, who was of the social status known as seoeol (庶孼 born to a yangban father and a lower-class mother). Heo’s father died when Heo was 12 years old. He later lost his wife, known by her surname, Kim, and his s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causing him great suffering. When he was 25, Heo wrote Haksan chodam (鶴山樵談 Haksan’s Tale of a Woodcutter). At the age of 29, after winning first place in the state examination, he wrote Dongjeong rok (東征錄 Record of Subjugating the East), a factual record of the Japanese invasions.

    Heo’s exceptional talents saw him appointed to the position of assistant chief in the Ministry of War (兵曹佐郎) at age 30, then to that of governor of Hwanghae Province at age 31, governor of Suan County at 36, magistrate of Samcheok at 39, magistrate of Gongju at 40, third minister in the Ministry of Taxation at 46 and minister of Punishments at 48. As an outstanding writer, Heo was appointed three times to a temporary position in charge of receiving visiting Chinese envoys, and was twice sent on official journeys to China as an ambassador (cheonchusa 千秋使) to honor the birthday of the imperial crown prince. On these two journeys abroad, he became friends with several Ming scholars and purchased many books, including Taiping guanggi (太平廣記 Extensive Records of the Taiping Era), bringing the latter back to Korea with him. But Heo’s official career was a rocky one. He was impeached several times, on charges such as consorting with gisaeng (courtesans), maintaining close relationships with the children of concubines, or revering Buddhism. After being sent into exile in 1610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Gwanghaegun), Heo wrote works including Hanjeong rok (閑靜錄 Records of Peace and Leisure), Seongsu sihwa (惺叟詩話 Old Man Seong’s Notes on Poetry) and Domun daejak (屠門大嚼 ???) while confined at home. In 1613 (the fifth year of the reign of Gwanghaegun), Heo was implicated in the so-called Chilseo Sageon (七庶事件) rebellion, of which his close friend, Seo Yang-gap (徐羊甲), the son of a concubine, was one of the instigators. In 1618, when it came to light that a declaration slandering Gwanghaegun had been put up in Seoul’s Namdaemun area by Hyeon Eung-min, a devoted follower of Heo, Heo was charged with treason and put to death by dismemberment at the age of 50.

     

    Works

    Key collections of works by Heo include Seongso bubugo (惺所覆瓿藁 Poetry and Prose Essays of Heo Gyun) (containing Seongsu sihwa (惺叟詩話 Old Man Seong’s Notes on Poetry), Domun daejak (屠門大嚼 ???)), and Hanjeongnok (閑靜錄 Records of Peace and Leisure). His anthologies of notes on poetry include Haksan chodam, and his poetry anthologies include Gukjo sisan (國朝詩刪 ???). Heo is also said to have written poetry collections titled Gosi seon (古詩選 Selected Ancient Poems) Dangsi seon (唐詩選 Selected Tang Poems), Song oga sicho (宋五家詩抄 Selected Poems by Five Song Poets) Myeong saga si seon (明四家詩選 Selected Poems by Four Ming Poets) and Sache seong Dang (四體盛唐 Four Poetic Styles from the Height of the Tang Dynasty), but these are no longer extant. Hong Gil-dong jeon (洪吉童傳 The Tale of Hong Gil-dong) is often cited as Heo’s greatest work. Though scholars are divided on the question of its authorship, the work reflects Heo’s human relationships and social consciousness in many parts; it is therefore right to regard Heo as the author. Heo was aware of the problems of the unreasonable social class system of his time and deeply interested in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works such as Yujae ron (遺才論 On Wasted Talent) and Homin ron (豪民論 On the Heroic Masses), reveal his reformist thought.

    In Yujae ron, Heo criticizes the way talented individuals are denied meaningful employment because of low social status. Homin ron, by contrast, implies his revolutionary doctrine. Here, the term homin refers to “people targeting the weak points created by social contradictions and looking for chances for revolution.” This kind of popular hero relates to the eponymous hero of Hong Gil-dong jeon. Above all, Heo uses Homin ron to emphasize the fact that “the king exists for the sake of the common people, not to dominate them,” stressing the royal attitude required by the philosophy of government for the people (minbon sasang 民本思想). Hak ron (學論 On Study), a discussion of the purpose and truth of learning, and Byeong ron (兵論 On the Military), an argument for the need to boost national defense capability by reforming the military system, also demonstrate Heo’s reformist thought. He also wrote five jeon (傳 tales), among which Namgung Seonsaeng jeon (南宮先生傳 Tale of Master Namgung), in particular, leads toward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jeon genre and a shift in the direction of novelization.

     

    Features and Critical Reception

    The most salient feature of Heo Gyun’s thought was the deep interest he showed not just in Neo-Confucianism but in Buddhism, Taoism and Catholicism. He was profoundly interested in new ideas, bringing back European maps and the Catholic text 偈十二章 from his official trips to China. An Jeong-bok (安鼎福) recorded Heo as saying, “Carnal desire between men and women is a gift from heaven, while it is the teachings of the sages that outline ethics and discipline. Heaven is higher than the sages, so even if you violate the teachings of the sages, you cannot defy instincts given by heaven.” Sunam Seonsaeng munjip (順菴先生文集 Collected Works of Master Sunam), Vol. 17, “Cheonhak mundap” (天學問答 Questions and Answers on Catholicism). Heo wholly rejected Confucian teachings of etiquette and “ethics and ideology of discernment” as established by the sages, and directly criticized the made-up nature of etiquette teachings that sought to artificially suppress carnal desire between men and women.

    Heo’s ideas, free and unconstrained by doctrines of traditional etiquette, extended into the realm of letters, where he emphasized a unique literary world. Unlike existing Neo-Confucian scholars, he did not see literature as a tool for conveying conceptual ideologies and purifying human minds. Instead, he focused on using literature to express his own individuality and feelings. Based on this, Heo attempted to build a unique oeuvre and propose it as a standard for criticizing the works of others. As a result, Heo’s fellow writers noted his outstanding discernment in poetry criticism. His individual efforts to portray various real-world issues and build a new oeuvre in a unique literary style is embodied best of all in Hong Gil-dong jeon, but can also be found in various other parts of his collected works.

    But Heo’s contemporaries were highly critical of him, branding him a threat to the basic social order because of his subversive ideas. Accounts of Heo in Joseon wangjo sillok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and from figures including his own father, Heo Yeop, and Neo-Confucian scholars Yi Hwang (李滉) and Yi i (李珥) all reflect unfavorably on him. They judge him to be an outstanding writer but lacking an equally high level of learning, or a man who makes radical claims but ultimately ends up sacrificing his ideas and pandering to those in authority. But the late-16th and early-17th centuries, when Heo lived, were a time of transition in East Asia that saw Joseon society at a crossroads. In this period, Heo made great achievements based on outstanding literary talent, attempting to capture the realities and concerns of a changing era in writings based on his own reformist ideas.

     

    References

    Society for Korean Literary History, Hanguk gojeon munhak jakga ron (Authors of Classical Korean Literature), Somyung, 2006.

    Kim Dong-uk, ed.,  Heo Gyun ui munhak gwa hyeoksin sasang (Heo Gyun’s Literature and Revolutionary Ideas), Saemoon, 1981.

    Kim Dong-uk, “Gyosan Heo Gyun” (Gyosan Heo Gyun), in Hanguk ui sasangga 12 in (12 Korean Thinkers), Hyeonamsa, 1975.

    Kim Jin-se, “Heo Gyun yeongu” (A Study of Heo Gyun), 

    Gungmunhak yeongu (Studies in Korean Literary) 2, Seoul National University, 1965.

    Yi I-hwa, ‘Seongso bubugo’ Heo Gyun ui saenggak (Heo Gyun’s Thoughts in ‘Poetry and Prose Essays of Heo Gyun’), Ppurikipeun Namusa, 1980.

    Jeong Ju-dong, “Heo Gyun” (Heo Gyun), Hanguk ui ingansang (Human character in Korea) 5, Shingu Books, 1972.

    Jo Dong-il, “Yeongung ui ilsaeng, geu munhaksajeok jeongae” (The Lives of Heroes and Their Development in Literary History), Donga munhwa (East Asian Culture) 10, The Institute of Asi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1971.

    Jo Dong-il, “Heo Gyun” (許筠 Heo Gyun), Hanguk munhak sasangsa siron (Essays on the History of Ideas in Korean Literature), Jisik Sanup, 1978.

    Im Hyeong-taek, “Heo Gyun ui munge sasang” (Heo Gyun’s Literary Thought), “Eo Mu-jeok ui si segye wa Hong Gil-dong jeon” (Eo Mu-jeok’s poetic world and the Tale of Hong Gil-dong), in Hanguk munhwasa ui sigak (Perspectives in Korean Literary History), Changbi, 1984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서지&dataId=ITKC_BT_0292A        [Hanguk gojeon jonghap DB (General database of Korean classics)] Seongso bubugo (惺所覆瓿藁 Poetry and Prose Essays of Heo Gyun)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030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Heo Gyun [許筠 Heo 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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