灰烬之上,希望升腾
2021 Korean Literature Review Contest
by 王闰 , on May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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灰烬之上,希望升腾
—《烧纸》书评 —
提起“燃烧”二字,总会联想起燃烧过后满目疮痍所带来的无尽绝望,但其实火焰燃烧时的热烈同样包含了炽热的希望。韩国作家型导演李沧东因执导电影《燃烧》而广为人知,“燃烧”这一意象也贯穿于他的艺术创作之中。小说集《烧纸》作为其青年时期文学创作的代表作,所收录的十一篇短篇小说也足以表现无数平凡人如同火焰燃烧般绝望与希望并存的命运。
不加遮掩的疮痍
上世纪80年代,韩国正处于社会与政治的动荡期。驻华韩国文化院院长金辰坤把这一时期的艺术家和作家分为两类:一类与社会问题保持一定的距离,努力保守艺术创作的纯洁性;另一类则积极关注社会问题,通过艺术记录、推动社会变革,他们一边是艺术家,一边是知识分子,他们既有艺术家的责任,也有知识分子的良心。李沧东属于后者。阅读李沧东的作品,常觉得有鲁迅的影子,不同国家、不同年代的两位作家,同样用柳叶刀般的尖锐笔触,精准而又不留情面地剖析现实与人性。相比于美化过的苦难,对于痛苦的正视往往难得多。因而在当下的文学语境中,“煽情”与“比惨”的文字比比皆是,这些消费苦难的文字即使让人读时有所触动,读罢便能轻易恢复。而平凡人对于命运的难以抵抗,或是在抵抗命运中所遭遇的疾病与贫穷、残疾与死亡,却因其让人难以承受的沉重与真实而少有人触碰。但这却是《烧纸》一书的中心话题。翻开《烧纸》,全书不见一丝轻松愉悦,满眼尽是不加遮掩,甚至让人不忍直视的命运疮痍。作者描绘的对象是真真正正的“社会底层人”,唯一能做的只是“等这座与自己毫不相关的城市恣意欢乐产生出遍地垃圾之后,给它收拾干净”的临时清洁工大杞、住在富人区却只是给老板看房子的尚洙、替儿子照顾美国狗的乡下人老金……这些小人物有时无知,有时愤懑,但他们始终像是别人生活的背景,随时可以被替换或是拿掉。作者将这些小人物从城市灯火下的幽暗角落托举出来,为他们看似平凡却暗流涌动的人生打上一盏聚光灯,让他们被更多人看到。然而,“当你面对真实,是容不得抒情和发泄的。”作者并未因对“底层人”这一身份的同情或是怜悯而对他们的痛苦有所遮掩或是开脱,反而是如同纪实记者般,用冷静的语气客观地叙述他们的悲伤与绝望。同名短篇小说《烧纸》中,老太太不肯相信丈夫已经被枪毙,依旧被丈夫被抓走时的恐惧缠绕多年,小姑子因为丈夫参与抓捕哥哥,而后轻信哥哥还活着的骗局,使嫂子被骗子强暴,一直生活在内疚甚至是疯癫中,哥哥成国因为父亲“赤色分子”的身份未能被士官学校录取,弟弟成浩被父亲的左翼思想所影响,常常与哥哥产生矛盾;《空房子》中,工厂的普通职员尚洙因替老板看房子而住在价值数亿韩元的富人区豪宅里,却因为与工人朴正八发生矛盾担心被报复,对奇怪的骚扰电话和富人区屡次发生的失窃案而胆战心惊,甚至因为格格不入的贫穷打扮而被怀疑成小偷关进警察局……
有韩国评论家认为,李沧东是20世纪80年代韩国小说界的代表性作家,因为他“用坚实的小说结构展现韩国民众的伤痕。”阅读《烧纸》一书时,我们像是能感受到有某种不可抗拒的力量,将本就活得艰辛的小人物们又一次狠狠挤压,让他们愈发绝望。这种力量或许便是时代的变动。战争留下的潜在矛盾给《烧纸》《祭奠》《脐带》中的底层民众带来了亟待化解的家庭冲突,而城市化带来的贫富差距与阶级固化则使《为了大家的安全》《舞》等其他作品中的小人物们愈发孤立无援。小人物们在世界变换之中颠沛流离,而作者也以这些往往被人忽略的他们为载体,将当时韩国所有的症结与伤疤,甚至是满目疮痍都完完整整、不留情面地展现在读者眼前。
燃烧之中的升腾
同名短篇小说《烧纸》中,作者对“燃烧”做出了如下描绘,“火苗很快烧起来。纸从边缘开始发黑,然后燃烧。印在白纸上的黑字被火焰吞噬着,挣扎着发出悲鸣,最后还是消失了”,然而“消失”并不意味着彻底毁灭,只剩下满地灰烬,因为“燃烧”本身就带着一股炽热的,没有被社会消磨殆尽的希望。因而《火与灰》中,自焚的大学生才会“没有坠落,而是穿透了死亡,正在上升。” 相比于停留在展露不忍直视的真实,向读者传递这些升腾的希望或许才是作者写作的本意。正如李沧东在采访中所谈到的那样,“文学应该反映社会现实,描写与现实痛苦作斗争的人物故事,并通过这些人物故事探讨救赎。”对于现实的鞭挞只是手段,而对于未来的重建才是最终目的。而“救赎”与“重建”的核心要义便是承认当下的绝望,并在此之上寻求新的希望。
《舞》中,旅行过后,妻子与“我”在发现一穷二白的家进了小偷,却因为没有任何值钱的东西而什么也没有丢失后,“在小偷们劫掠过的这片触目惊心的残骸之上兴致勃勃地舞蹈”。“舞蹈”像是一种欲望的升华,发现自己的一无所有让他们痛快淋漓,在因为近乎于病态的节俭而变得辛苦又尴尬的旅行后,对于苦难的正视让他们摆脱了压抑欲望的战战兢兢,反而屹立于疮痍与灰烬之上,有机会看到并拥抱新的希望。《一头有心事的骡子》中,被撞死了骡子,打算告别城市的清洁工大杞,将明知一切的虚幻,却依旧抚摸自己的妓女拥入怀中时,标志着他们一同接受了世界的荒诞并选择与之共存。即使被社会挤压到没有生存之所时,这些小人物一旦化作能够直视鲜血的猛士,便能唤醒体内坚毅的内核而继续生存下去。在书中的绝大多数篇目中,作者写至“承认绝望”便止住了笔,而并未把为读者创设希望的曲笔用到完满,探求希望的重任便交到了读者手中。从文章结尾略扬起的笔调来看,叙事结束后的留白之中所蕴含的深意或许便是,承认绝望并不意味着束手就擒,反而是应为了希望而与绝望继续缠斗不休。因为在希望被悬置时,“与黑暗捣乱”的反抗是唯一可以把握的现实。我们并不能准确推测作品中的主人公们之后会做出怎样的抉择,妻子与“我”是否依旧会日复一日地压抑欲望,大杞是否会在那个“万物都散发着早晨清新的气息”的日子离开首尔,但我们可以确认的是,他们在发现自己一无所有后,也会因此“于无所希望中得救”。
而将这全部的绝望与希望展示给读者的李沧东,在当下的时代又显得那么珍贵。正如作者在《火与灰》中借主人公之口所说的那样,“大街上、新闻里每天都在发生小说里的情节,小说还能写什么呢?”现实已经足够荒诞,单纯地解剖现实便足以唤起人们的思考。在接受新京报的采访时,李沧东曾表示“我想要表达和发问的,不是政治社会的现实本身,而是现实中人类的生存状况。在强大的现实条件面前,个人乍看上去软弱无力,却在与现实抗争,为了证明自己的存在而奋斗。对于这一点,不论韩国还是中国,都是一样的。”当国内学者感慨当代小说退出公共记忆时,或许我们需要感谢,在并不算遥远的国度中,依旧有能够把小说与广阔社会相联结的李沧东,他对于公共议题的深入探寻或许也能使鲁迅先生“空留纸上声”与“荷戟独彷徨”的孤寂有所缓解。
半个世纪前,鲁迅先生对中国青年的希冀便是“有一分热,发一分光,就令萤火一般,也可以在黑暗里发一点光,不必等候炬火。”而半个世纪后的今天,李沧东也承担了同样的作家使命——“我所有的希望,就是能有一点点的改变。这就像是用一根蜡烛在传递火种,手递手,点燃别人手里的蜡烛。”火焰燃烧之时也是希望迸发之时。而作为读者的我们,或许能做的便是,接过他们手中的蜡烛,点燃自己心中的炬火,在灰烬之上看到因真实而存在的满目希望。
“연소”라고 하면 타버린 뒤의 만신창이가 주는 끝없는 절망을 떠올리지만, 사실 타오르는 불꽃의 열정에는 타오르는 희망도 담겨 있다. 영화 ‘버닝’의 연출로 잘 알려진 작가주의 감독 이창동의 예술 창작에도 ‘버닝’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소설집 《소지》는 그의 청춘 문학 창작의 대표작으로, 그 안에 수록된 11편의 단편 소설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불타는 듯한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운명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숨김없는 만신창이
1980년대의 한국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시기였다. 김진곤 주중 한국문화원장은 이 시기의 예술가와 작가들을 이렇게 분류하였다. 하나는 사회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예술창작의 순수성을 보수하려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사회문제에 적극 관심을 갖고 예술적 기록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술가이면서 지식인이였다. 예술가의 책임과 지식인의 양심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창동은 후자에 속한다.
이창동 작품을 읽다보면 노신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이곤 한다. 다른 나라, 다른 시기의 두 작가이지만 모두 유엽도처럼 날카로운 터치로 현실과 인간성을 정교하고 가차없이 파헤친다. 미화된 고난에 비해 고통에 대한 직시는 늘 훨씬 어렵다. 그래서 현재의 문학적 맥락에서는 ‘선동적이다’, ‘비참하다’는 글들이 넘쳐나고, 잔뜩 소비된 고난의 글들을 읽을 때는 감명을 받아도 읽고 나면 쉽게 회복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저항하기 힘든 운명, 혹은 운명을 거스르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질병과 빈곤, 장애와 죽음은 그 견디기 힘든 무게와 현실 때문에 좀처럼 다가가는 사람이 적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소지”의 핵심 주제이다.
《소지》라는 책을 펼치는 순간, 책 전체에 여유와 기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온통 숨김없는, 직시 불가능한 운명의 만신창이였다. 작가가 그린 대상은 진정한 ‘사회의 밑층 사람들’이였고 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 도시가 흥청망청 놀다가 도처에 쓰레기가 생기면 깨끗이 치워주는’ 임시 청소부 대기, 부유촌에 살고 있지만 주인의 집만 봐주는 상수, 아들을 대신해 미국인 개를 돌보는 시골사람 김씨…, 이러한 소인물들은 때론 무지하고 때론 분하지만, 그들은 다른 이들의 삶의 배경처럼 언제든지 교체되거나 사라진다. 저자는 이들을 도시 등불 아래 어두운 구석에서 끄집어내어 평범해 보이지만 종종 어둠이 밀려드는 그들의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진실을 직시할 때면, 서정적인 감정과 분한 감정을 참을 수 없다”. 저자는 “사회의 밑층 사람들”의 신분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가리거나 씻지 않고 오히려 기정사실을 기술하는 기자마냥 그들의 슬픔과 절망을 냉철한 어조로 서술한다. 동명 단편소설 <소지>중 할머니는 남편이 총살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남편이 끌려갈 때의 기억에 아직도 공포에 휩싸여 오랫동안 힘들어한다. 시누이는 경찰 남편이 자신의 오빠를 잡는 데 동참한 것 때문에 오빠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기극을 믿어 형수는 사기꾼에게 겁탈까지 당하고, 그 죄책감때문에 아직도 정신이 나간 채 생활을 한다. 형 성국은 ‘빨갱이’ 아버지때문에 사관학교에 합격하지 못하고, 동생 성호는 아버지의 좌익사상에 영향 받아 형이랑 자주 모순을 겪는다. <빈 집>에서 공장직원 상수는 사장의 집을 대신 봐주느라 수억원 대의 부잣집에서 살다가 노동자 박정팔과의 갈등으로 보복 당할까 봐 걱정해한다. 그리곤 이상한 전화와 부자 동네에서 반복되는 도난사건 때문에 두려워하다가 어울리지 않는 궁핍한 차림새 때문에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에 갇히기까지…
이창동을 1980년대 한국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은 한국 평론가는 “이창동은 탄탄한 소설구도로 한국인의 상처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소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렵게 살아가는 소인물들을 또 한번 짓누르고 절망하게 만드는 무언가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느낀다. 그 힘은 어쩌면 시대의 변동일지도 모른다. 전쟁이 남긴 잠재적 갈등은 <소지> <친기> <끈>중의 사회 밑층 사람들에게 화해가 필요한 집안충돌을, 도시화에 따른 빈부격차와 계급 고착화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춤>등 다른 작품 속 소인물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소인물들은 바뀌는 세상에서 떠돌고, 저자는 종종 간과되는 이들을 적재적소로 삼아 당시 한국의 모든 문제점과 흉터, 심지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온전하게 독자들의 눈앞에 드러낸다.
연소 속의 솟아오름
동명 단편소설 <소지>에서 저자는 “연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불씨는 금방 타오른다. 종이 가장자리에서부터 검게 변하기 시작하고 연소한다. 백지에 찍힌 검은 글자는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면서 발버둥 치다가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지 않고 잿더미만 남는 것이 아니다. “타오르는 것” 자체가 불타는, 사회에 의해 소실되지 않는 희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과 먼지>에서는 분신한 대학생들이 “타락하지 않고 죽음을 뚫고 올라가고 있다”라고 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내는 데 머물기보다, 그 솟아오르는 희망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 작가의 본의일지 모른다. 이창동의 인터뷰대로 문학은 사회현실을 반영해 현실의 고통과 싸우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구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성토는 수단일 뿐 미래에 대한 재건이 목적이다. ‘구원’과 ‘재건’의 핵심은 현재의 절망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이다.
<춤>에서 여행 후 아내와 ‘나’는 자신들의 가난한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돈 되는 물건이 없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자 “도둑들이 한바탕 쓸고 간 후의 섬뜩한 잔해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춤>은 일종 욕망의 승화처럼 자신의 무소유가 너무도 기쁘고 통쾌하여 병적인 검소함으로 힘든 여행 후의 고난을 직시함으로써 욕망을 억누르는 전전긍긍에서 벗어나 오히려 만신창이와 먼지 위에 우뚝 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회였다. <꿈꾸는 짐승>에서 노새를 치어 죽이고 도시를 떠나려 하는 청소부 대기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어루만지는 기생을 품에 안을 때 세상의 황당함을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에 짓눌려 생존할 곳이 없을 때에도 이러한 소인물들은 선혈을 직시하는 맹사로 변신하면 체내의 의연한 내핵을 깨워내어 이 세상을 살아간다.
책 중 대부분의 편목에서 저자는 절망을 인정한다고 쓰고는 필을 멈추고, 독자를 위한 곡필 창설을 더 이상 하지 않고 희망을 탐구하는 중책을 독자에게 맡긴다. 글의 마직막에서 휘날리는 필치를 보면, 서사가 끝난 뒤의 여백에 담긴 깊은 뜻은 절망을 인정한다고 해서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위해 절망과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표류할 때 ‘어둠과의 싸움’이 유일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아내와 ‘내’가 계속해서 욕망을 억누를지, ‘만물이 아침의 싱그러운 기운을 내뿜는’ 날에 대기가 서울을 떠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들이 무소유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모든 절망과 희망을 독자에게 보여준 이창동은 요즘 시대에 너무나 소중한 작가이다. <불과 먼지>에서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했듯이 거리, 뉴스에서 매일 소설 같은 스토리가 벌어지는데 소설은 어떻게 쓰겠나. 현실은 이미 충분히 황당하고, 단순히 현실을 해부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고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창동은 《신경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표현하고 묻고 싶은 것은 정치사회의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 사람들의 생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현실조건 앞에서 개인은 언뜻 무기력해 보이지만 현실과 맞서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 점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국내 학자들이 당대 소설이 공공의 기억에서 퇴출됐다고 개탄할 때, 우리와 가까운 나라에도 소설을 넓은 사회와 연결시키는 이창동이 있었고, 그의 공공적인 의제에 대한 깊은 탐구는 노신 선생의 “빈 종이에 웨침”과 “홀로 싸움”의 고독을 풀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반세기 전 노신 선생이 중국 청년들에게 바랐던 것은 “열이 있다면 빛을 내고 반딧불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니 큰 불을 바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이창동도 마찬가지로 작가적 사명이 있었다. “나의 모든 희망은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다. 촛불 하나로 불씨를 전달하고 손에서 손으로 다른 사람의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길이 타오를 때가 바로 희망이 분출되는 때이다.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들고 있는 촛불을 받아 자신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잿더미 위에서 실존하는 희망을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Keyword : 烧纸,李沧东,2021 Korean Literature Review Contest,王闰
- 소지
- Author : Lee Chang-dong
- Co-Author :
- Publisher : 동아출판사
- Published Year : 0
- Country : 국가 > SOUTH KOREA
- Original Language : Korean(한국어)
- ISBN : 97889320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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