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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Yi Ok(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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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Yi Ok
Family Name
Yi
First Name
Ok
Middle Name
-
Preferred Name
-
Pen Name
Yi Ok, 문무자, 매사
ISNI
-
Birth
1760
Death
1815
Occupation
Poet
Period
Classical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이옥(李鈺)

 

◆기본 정보

이옥(李鈺, 1760~1815)은 한평생 소품문(小品文) 창작에 전념하여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긴 문인이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 정조(正祖)가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을 정도로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하였다.

 

◆작가 생애

이옥의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경금자(絅錦子)‧화석자(花石子)‧매화외사(梅花外史)‧청화외사(靑華外史)‧석호주인(石湖主人)‧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문양산인(汶陽散人) 등이다. 정조 16년(1792)에 성균관(成均館) 상재생(上齋生)으로서 작성한 응제문(應製文)의 문체가 패관소설체(稗官小說體)로 지목되어 국왕의 질책을 받았다. 이후 정조 19년(1795) 경과(慶科)에서도 문체가 괴이하다는 지적을 받고 과거 응시를 금지하는 ‘정거(停擧)’에 이어, 지방의 군적에 편입되는 ‘충군(充軍)’의 명을 받았다. 이후 계속 구사한 문체가 논란을 빚어 방말(榜末, 합격자 명단의 맨 끝)에 붙여졌다. 말년에는 경기도 남양(南陽)에서 글을 지으며 여생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이옥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패사소품(稗史小品)을 즐겨지었던 김려(金鑢, 1766~1821)와 강이천(姜彝天, 1769~1801) 등과 교유하며 문학의 창작과 비평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는 실학파(實學派) 문인들과도 활발히 교유하였다. 『백운필(白雲筆)』을 보면, 자신이 외가를 방문했을 때 이종사촌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서술한 문장이 있다. 「집에 대한 변[室辯]」을 통해서는, 안의현(安義縣)을 경유하여, 삼가현(三嘉縣)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당시 안의 현감이던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을 만난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벽돌로 건축한 중국의 양식을 수용하여 관아를 지은 박지원을 옹호하였다.

이옥이 교유한 인물들은 대체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문체를 순정한 고문으로 돌려놓음) 정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중에서도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굽히지 않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작품 세계

이옥의 문학 작품들은 그의 절친한 벗 김려가 자신과 교유한 인물의 글을 모아 놓은 『담정총서(潭庭叢書)』에 실려 있다. 그 밖에 『이언(俚諺)』, 『동상기(東廂記)』, 『백운필(白雲筆)』, 『연경(烟經)』 등이 따로 전한다.

『담정총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문무자문초(文無子文鈔)」, 「매화외사(梅花外史)」, 「화석자문초(花石子文鈔)」, 「중흥유기(重興遊記)」, 「도화유수관소고(桃花流水館小稿)」, 「경금소부(絅錦小賦)」, 「석호별고(石湖別稿)」, 「매사첨언(梅史添言)」, 「봉성문여(鳳城文餘)」, 「묵토향초본(墨吐香草本)」, 「경금부초(絅錦賦草)」 등이다.

「문무자문초」는 ‘남쪽 귀양길(南程)’ 10편, 상랑 전기(尙娘傳), 정운창 전기(鄭運昌傳), 신아 전기(申啞傳), 열녀 이씨 전기(烈女李氏傳), 장봉사 전기(蔣奉事傳), 성진사 전기(成進士傳), 가객 송실솔 전기(歌者宋蟋蟀傳), 노자를 읽고(讀老子), 초사를 읽고(讀楚辭), 주자의 글을 읽고(讀朱文), 남학의 노래를 듣고(聽南鶴歌小記), 호상에서 씨름을 구경하고(湖上觀角力記), 농자 잘 짓는 종에 관한 글(善畊奴記), 일곱 가지 밤(夜七), 동짓날 축원(冬至祝), 병화자 최구서에게 보내는 편지(與病花子崔九瑞狀), 원통경(圓通經)으로 구성되었다. 바둑‧노래 등에 능통한 예인의 일화, 작자의 사상을 보여주는 독서기 등이 주목된다.

「매화외사」는 호랑이를 잡은 아낙 전기(捕虎妻傳), 수칙 전기(守則傳), 차씨‧최씨 의인 전기(車崔二義士傳), 살아있는 열녀 전기(生烈女傳), 문묘의 두 의로운 수복 전기(文廟二義僕傳), 부목한 전기(浮穆漢傳), 유광억 전기(柳光億傳), 심생 전기(沈生傳), 신씨 병사 전기(申兵使傳), 매미의 권고(蟬告), 타던 말의 전기(所騎馬傳), 바다 경관(海觀), 황학루 사적에 대한 고증(黃鶴樓事蹟攷證), 남령 전기(南靈傳), 의협심 있는 기생에 대한 기록(俠娼紀聞)으로 구성되었다. 의로운 인물 군상을 바라보는 이옥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화석자문초」는 거울에 묻다(鏡問), 오이 이야기(瓜語), 파리채에 새긴 글(蠅拂刻), 고양이를 탄핵하다(劾猫), 서풍을 논하다(論西風), 차조 이야기(衆語), 용을 꾸짖다(詰龍), 가라지에서 깨닫다(莠悟), 촉규화에 대한 설(蜀葵花說), 일곱 가지 끊어야 할 일(七切), 각로 선생 전기(却老先生傳), 묵취향 서문(墨醉香序), 묵토향 앞에 적다(墨吐香前敍), 묵토향 뒤에 적다(墨吐香後敍), 도화유수관 문답(桃花流水館問答), 구문약에 대한 짧은 서문(歐文約小序), 신기루 누대에 관한 글(蜃樓記)로 구성된다. 외부 세계와 갈등하는 작자의 이념을 객관적 사물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중흥유기」는 이옥이 1793년에 북한산의 절인 중흥사를 유람하고 남긴 기록이다. 동행한 사람들, 갖고 간 물건들, 여정 도중 본 건물들이 자세하여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 밖의 「도화유수관소고」, 「경금소부」, 「석호별고」 등에도 다양한 인물과 사물, 토속과 세태에 대한 이옥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다.

- 『이언(俚諺)』 : 여성 화자를 통해 속담이나 방언과 같은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여 남녀 사이의 정을 노래하였다. 이옥은 남녀 사이의 애정을 포착한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스스로 그러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언』 은 모두 66수인데, 「아조(雅調)」 17수, 「염조(艶調)」 18수, 「탕조(宕調)」 15수, 「비조(悱調)」 16수다.

- 『동상기(東廂記)』 : 1791년에 이옥이 왕의 명령을 받고 지은 희곡이다.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씨의 혼인을 다루었다. 음담패설이 섞인 구어체 문장으로 혼인 풍속을 실감 나게 묘사하였다.

- 『백운필(白雲筆)』 : 1803년에 경기도 남양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백운사에서 붓 가는 대로 기록했다는 뜻에서 ‘백운필’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후기에 많이 배출된 백과전서식 저술의 하나로, 각종 동식물의 생태적 특성과 이용 방법을 소개하였다.

- 『연경(烟經)』 : 담배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담은 책이다. 총 4권에 걸쳐 담배의 재배법, 성질, 도구부터 일종의 흡연 문화까지 주목하였다. 특히 간결하고도 기괴한 문체로 담배 피우는 장면을 묘사한 4권은 ‘문학서’로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이옥은 기성의 문학과 권위에 도전하여 개성적이고 주체적 글쓰기를 한 작가이다. 그는 시속의 변화와 개인의 서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소품(小品)을 중시하였는데, 여기서 새로운 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고 창작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이러한 이옥의 문학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국왕인 정조조차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적는 이옥의 글쓰기를 꺾지 못할 정도로 독창적인 글쓰기를 하였다. 그는 하찮은 사물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주변의 물명(物名)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조선 후기 작가 중 일부가 소품을 창작하였지만, 그들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고문(古文)에 있었다. 그러나 이옥은 “고문을 배우면서 허위에 빠진다.”라는 발언까지 하면서 오로지 소품(小品)에만 몰두하였다.

또한, 이옥은 생생한 저잣거리에 주목하고 거기서 많은 창작의 소재를 찾았다. 그가 남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 하층 여성, 천한 노비, 도적, 저잣거리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비롯하여 생활 주변의 자잘한 사물들이다. 시정에 떠도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취재한 작품들을 통해 패설(稗說)과 소품을 중시한 이옥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옥은 작고 쇄미한 것에 관심과 애정을 쏟고, 이를 소품으로 창작하였다. 본디 소품의 특징 중의 하나가 ‘비리(卑俚)하거나 쇄세(瑣細)한 대상을 섬세하고 속된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옥은 실제 창작에서 거미, 봉숭아, 이와 벼룩, 거울, 파리채, 오이 등 생활 주변의 자질구레한 사물을 포착하여 그 특징을 고스란히 묘사하였다. 그중 백미는 단연코 『백운필(白雲筆)』이다. 이 글은 정치나 도학 등의 소재가 아닌, 풀, 나무, 꽃, 나물, 구름, 돌과 같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였다. 이옥은 작고 쇄미한 것을 주목하여 세밀히 관찰하고 묘사하거나, 놀라운 은유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독자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끝으로 이옥은 중세 유교 이념인 예교(禮敎)가 가두어 놓았던 인간의 정(情)을 끄집어내어 이것을 문학의 본질로 삼았다. 이옥은 만물의 개별성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인간의 정이라고 보았다. 만물의 보편적 원리보다 구체성과 개별성에 주목할 때 유교 이념이 강조했던 ‘이(理)’보다 ‘정’이 우선시 되는데, 이옥은 이러한 정 중에서도 오직 ‘남녀 간의 정’이 어떤 위선이나 포장도 없고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다고 여겼다. 그래서 결국 남녀 사이의 애정을 포착하는 것이 문학에서 중요하다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옥의 주장은 이언(俚諺)에 잘 나타나 있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연경, 담배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08.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완역 이옥 전집』 1~5, 휴머니스트, 2009.

박무영 외,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3권, 휴머니스트, 2006.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李鈺&ridx=0&tot=288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옥 [李鈺]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59320&res=y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박수밀, 이옥의 문학에 나타난 생태 글쓰기와 그 의미 [2014년 시간강사지원사업, 과제번호 2014S1A5B5A07042281]

 

 

◆해외 번역 현황

Mourning for a butterfly and others: stories, Yi ok, trans. Barbara WallLEE Dongmyong, Peppercorn, 2010.

 

 

Yi Ok (李鈺, 1760-1815)                             

 

1. Introduction

Yi Ok was a writer who left behind many lively and interesting works, having put his all into the creation of brief essays on minor subjects (小品文 sopummun) his whole life. He was an uncompromising and unique writer. As a Confucian student of the National Confucian Academy (成均館) in 1792, Yi Ok did not bend even when he received a command from King Jeongjo (正祖, r. 1776-1800) to fix the ‘irreverent and strange writing’ style in the essay on minor subjects on the written exam to which the King Jeongjo himself had set questions.

 

2. Life

Yi Ok’s courtesy name was Gisang (其相), his pen name was Munmuja (文無子), Gyeonggeumja (絅錦子), Hwaseokja (花石子), Maehwa Oesa (梅花外史), Cheonghwa Oesa (靑華外史), Seokho Juin (石湖主人), Dohwa Yusugwan Juin (桃花流水館主人), and Munyang Sanin (汶陽散人). He received the king [Jeongjo]’s reprimand for the writing style of the eungjemun (應製文 writings in king’s official order), which he composed on the grounds that it was like a common story collected by low-rank officials (稗官小說體 paegwan soseolche) in 1792. Then in 1795, he was forbidden from taking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for having received the assessment that his writing style was strange. He even received the command to go to the army in the countryside. Later, even though he finally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his name was put in last place on the examination roster for continuing to stick with his writing style and causing controversy. It is speculated that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writing in Namyang county in Gyeonggi province, until his late years.

When Yi Ok studied at the National Confucian Academy during his youth, he exchanged writings and views on criticism with Kim Ryeo (金鑢, 1766-1821) and Kang Icheon (姜彝天, 1769-1801), who mainly wrote brief essays of unofficial history (稗史小品 paesa sopum). One can deduce that he actively socialized with Silhak (實學 Practical Learning) School writers as well. In his work, Baekunpil (白雲筆 Writings in Baekun [Temple]), there is an anecdote he heard from his cousin, Yu Deukgong (柳得恭, 1748-1807), when he visited his mother’s side of the family. Also, in another story, he met Pak Jiwon (朴趾源, 1737-1805), Anui county’s magistrate at that time, on his way down to a place of exile, Samga county. In this story, he wrote that he advocated for Pak Jiwon, who had made the provincial office in Chinese styles built with bricks.

The figures with whom Yi Ok made these social exchanges mostly had the commonality of having gone against the King Jeongjo’s munche banjeong (文體反正 Rectification of Textual Style). And among them, Yi Ok was a representative figure who made unique pieces without compromising his writing.

 

3. Works

Yi Ok’s literary works was put in Damjeong cheongseo (潭庭叢書 Collectanea of Damjeong [Kim Ryeo]), in which was collected by his closest friend Kim Ryeo, the writings of figures with whom Kim Ryeo had made exchanges. His works are also in Ieon (俚諺 Vulgar Maxims), Dongsanggi (東廂記), Baekunpil (白雲筆), and Yeongyeong (烟經 Writing of Smoking).

Other works included in Damjeong cheongseo were: Munmuja muncho (文無子文鈔), Maehwa Oesa (梅花外史), Hwaseokja muncho (花石子文鈔), Jungheung yugi (重興遊記), Dohwagwan sogo (桃花流水館小稿), Gyeonggeum sobu (絅錦小賦), Seokho byeolgo (石湖別稿), Maesa cheomeon (梅史添言), Bongseong munyeo (鳳城文餘), Muntohyang chobon (墨吐香草本), Gyeonggeum bucho (絅錦賦草).

Munmuja muncho (文無子文鈔) is in chapter 19 of Damjeong chongseo, consisting of 10 essays of ‘the way to exile in the south’ (南程 namjeong), 7 biographies (傳 jeon), such as Sangrang jeon (尙娘傳), Jeong Unchang jeon (鄭運昌傳), Sin Ah jeon (申啞傳), Yeollyeo Yi-ssi jeon (烈女李氏傳), Jang Bongsa jeon (蔣奉事傳), Seong Jinsa jeon (成進士傳), Gagaek Song Silsol jeon (歌者宋蟋蟀傳), 7 of miscellaneous notes (雜著 japjeo), and 3 records (記 gi). Among these 27 pieces, two anecdotes one essay of an artist who is proficient in the game of Go, songs, and other writing [record] that shows Yi Ok’s thoughts, are worth noticing.

Maehwa Oesa (梅花外史) is in chapter 21 of Damjeong chongseo, consisting of 11 biographies (傳 jeon) and 5 miscellaneous notes (雜著 japjeo); Poho cheo jeon (捕虎妻傳), Suchik jeon (守則傳), Munmyo iuibok jeon (文廟二義僕傳), Cha-Choe iuisa jeon (車崔二義士傳), Saengyeollyeo jeon (生烈女傳), Bu Mokhan jeon (浮穆漢傳), Yu Gwangeok jeon (柳光億傳), Sim saeng jeon (沈生傳), Sin byeongsa jeon (申兵使傳), Seongo (蟬告), So gimajeon (所騎馬傳), Haegwan (海觀), Hwanghangnu sajeok gojeung (黃鶴樓事蹟攷證), Namryeong jeon (南靈傳), Hyeopchang gimun (俠娼紀聞). All these stories reveal Yi Ok’s recognition of the righteous characters at that time.

Hwaseokja muncho (花石子文鈔) is made of Gyeongmun (鏡問), Gwaeo (瓜語), Seungbulgak (蠅拂刻), Haengmyo (劾猫), Nonseopung (論西風), Jungeo (衆語), Hiryong (詰龍), Suo (莠悟), Chokgyuhwaseol (蜀葵花說), Chiljeol (七切), Gangno seonsaeng jeon (却老先生傳), Mukchwihyang seo (墨醉香序), Mukchwihyang jeonseo (墨吐香前敍), Mukchwihyang huseo (墨吐香後敍), Dohwa yusugwan mundap (桃花流水館問答), Gumunyak soseo (歐文約小序), Sillugi (蜃樓記). One can grasp through objective matters the author’s ideology of strife against the outside world.

Jungheung yugi (重興遊記) is a record (記 gi) that Yi Ok left after sightseeing Jungheungsa, a temple at Mt. Bukhan near Seoul, in 1793. It is a valuable document for its detailed descriptions of the people that accompanied, the objects they took with them, and the buildings seen during the itinerary. Beside it, Dohwagwan sogo (桃花流水館小稿), Gyeonggeum sobu (絅錦小賦), and Seokho byeolgo (石湖別稿) contain Yi Ok’s unique perspective on a variety of characters and objects, about their customs and social conditions.

Ieon (俚諺 Vulgar Maxims) is a collection of maxims of the affection between men and women by female narrators in the folk language of proverbs and their dialects. Yi Ok assessed works that captured the love between men and women very thoroughly, and he himself wrote poems of the same kind. There are 66 songs (or poems) divided into four sections in this work: 17 songs of refinement (雅調 ajo), 18 of splendor (艶調 yeomjo), 15 of dissipation (宕調 tangjo), and 16 of inexpression (悱調 bijo). It is, perhaps, Yi Ok’s strangest and most compelling work.

Dongsanggi (東廂記) is a play Yi Ok wrote in 1791 by the king’s command. It dealt with the marriage of an old bachelor and an old bachelorette. It is a fun depiction of marriage customs in colloquialisms and with lewd jokes mixed in.

Baekunpil (白雲筆)is a work completed at Namyang county, Gyeonggi province, in 1803. It was named “Baekunpil” to mean that it was recorded in freeform at Baekun Temple. An encyclopedic writing often produced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it introduces the ecological characteristics and uses of various kinds of plants and animals

Yeongyeong (烟經 Writing of Smoking) is a book filled with information related to tobacco. Across a total of 4 chapters, Yi Ok paid attention to everything from methods of cultivation, to its properties, paraphernalia to smoking culture. He depicted scenes of people smoking in a concise and unique kind of writing, earning it the label of a “cultural text.”

 

4. Style and Legacy

Yi Ok wrote unique works that challenged authority. He emphasized on brief essays on minor subjects, in which he honestly expressed a change in poetry and personal lyricism; and he poured all of his efforts into discovering and creating the value of new literature there. Yi Ok’s literature has several unique characteristics.

First, Yi Ok’s creative writing was such that even the King Jeongjo was not able to bend it away from Yi Ok’s unique and original thoughts. He discovered truth in insignificant subjects, and he showed a profound interest in the name of subjects (物名 mulmyeong) of his surroundings. A portion of Late-Joseon authors created brief essays on minor subjects, but their purpose was limited to imitating classical texts. However, Yi Ok remarked, “one falls into falsehood in learning the classical texts,” solely dedicating his writing to the minor subjects.

Second, Yi Ok paid attention to the lively streets of the city and there, found the subject matter for many of his creations. They were trivial objects in the life surroundings of the crowded streets of generally low-class women, lowly servants, and thieves. Readers can catch a glimpse of Yi Ok’s spirit, which added  to gossip or popular stories (稗說 paeseol) and minor subjects through the telling of the strange and interesting stories that circulated in municipal circles.

Third, Yi Ok poured his attention and affections into small and insignificant things, and he made them into minor subjects. Originally, one of minor subject’s characteristics was that they were “expressions of vulgar or insignificant subjects in detailed and crude language.” Yi Ok captured trivial subjects of his life surroundings - spiders, pitches, fleas and ticks, mirrors, fly swatters, cucumbers - in his creations, depicting their characteristics exactly as they were in reality. The best among them is surely Baekunpil. Its themes weren’t politics or ethics, but rather, discussions of the world’s truths through things that nobody noticed like grass, trees, flowers, vegetables, clouds, stones. Yi Ok paid attention to the small and insignificant things, describing his observations in detail and impressed readers by deftly conceptualizing wonderfully metaphorical expressions.

Lastly, Yi Ok pulled out the human attachments (情 jeong) that medieval Confucian thought had stored away and found it in the essence of literature. Yi Ok saw human attachments as the binding force of all things, even among the most distinct subjects. For Yi Ok, who paid attention to the concreteness and individuality of things rather than the universal principle of all things, “jeong (情)” came first before “li (理 rational principle),” which the Confucian ideology emphasized; and even within this jeong, Yi Ok treated solely the “jeong between men and women” as honestly revealing one’s self without any hypocrisies or coverings whatsoever. Therefore, he eventually proposed that capturing the affection between men and women was important for literature. This position of Yi Ok comes out best in his work, Ieon.

 

5. References and External Links

 

5.1. References

 

Ahn, Daehoe, transl., Yeongyeong, Dambae ui Modeun Geot [Writing of Smoking, Everything in Tobacco], Hyumeoniseuteu, 2008.

 

Gojeon Munhak Yeonguhoe, transl., Wanyeok Yi Ok Jeonjip [Completed Translation of the Collection of Yi Ok], Hyumeoniseuteu, 2009.

 

Pak, Gyeongsin, et. al., Hanguk ui Gojeon eul Ingneunda [Reading Korean Classics] vol. 3, Hyumeoniseuteu, 2006.

 

5.2. External Links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Yi Ok [李鈺]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李鈺&ridx=0&tot=2888

 

[Korean Research Memory], Yi Ok ui Munhak e Natanan Saengtae Geul Sseugi wa Gu Uimi [The Ecological Writing and Its Meaning in Yi Ok’s Literature] by Sumil Pak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59320&res=y

 

6. Works in Translation

 

[German]

Lee, Dongmyong und Wall, Barbara, transl., Trauer über einen Schmetterling: und andere Erzählungen, Thunum: Ed. Peperkor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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