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 Man-Sik (June 17, 1902 – June 11, 1950) was a Korean novelist known for his satirical bent.
Life
Chae Man-sik was born in present-day Gunsan, Jeollabuk-do, South Korea. He graduated from Choogang High School and attended Waseda University in Tokyo, Japan. He worked as a reporter for the Dong-a Ilbo, the Chosun Ilbo, and Kaebyeok, as well as working as an editor for the Kaebyeok Publishing Company's many magazines, including Hyeseong and Jeilseon.
Chae Man-sik entered the literary scene in 1924 with the publication of his short story "Segilro" (세길로 Three Paths) in Joseon Munye. He first gained critical attention ten years later with the publication of the short story, "Redimeideu insaeng" (레디메이드 인생 A Ready-Made Life). In 1936 he moved to Kaesong (now in North Korea) to devote himself solely to creative writing.
Writing
Chae Man-sik's literary career began with his first short story, "Three Paths," in 1924. His early stories and plays were written from a class-sensitive perspective. With the publication of "A Ready-Made Life," he began to focus his attention specifically on the plight of intellectuals and artists during an era of colonial oppression, which he expanded upon in later works such as Intelliwa bindaetteok (인텔리와 빈대떡 An Intellectual and Mung-Bean Pancakes) and "Chisuk" (치숙 My Innocent Uncle).
Having been arrest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1938 as a result of his affiliation with the Society for Reading, Chae Man-sik was released on the condition that he participate in a pro-Japanese literary organization, the Korean Literary Society for Patriotism. Chae complied, writing a handful of pro-Japanese works as a result, including a celebratory account of what he had observed when visiting the Japanese Army's Manchurian Front in December 1942.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however, Chae Man-sik openly reproached the pro-Japanese actions of Korean intellectuals at the end of the colonial period, his own included, by writing such works as Minjogui joein (민족의 죄인 Transgressor of the Nation) and "Yeongno" (역로 Railroad).
Until his death in 1950, shortly before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Chae Man-sik continued to produce satires of contemporary society in post-liberation Korea. The short stories "Maengsunsa" (맹순사 Constable Maeng) and "Non iyagi" (논 이야기 Story of a Rice Paddy) are particularly noteworthy in this regard, focusing on the turbulence and confusion of a society embarking upon the difficult process of rebuilding a nation. He published over 290 works in total throughout his life, including novels, short stories, essays, plays, and reviews.
Chae Man-sik's collected works were published in 1989 by the publishing house Changbi.
채만식(1902~1950)은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생애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18년 상경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2년 졸업했다. 1922년에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했으나, 1923년에 중퇴했다.
1924년 단편 〈새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장편소설, 단편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다수 발표했다.
1929년 말부터 개벽사에 입사하여 잡지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이후 《조선일보》로 옮겼다가 사직하고, 1936년부터 전업 작가로 지냈다. 특히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했고, 《춘추》 등에 발표한 산문과 1943∼1944년에 《매일신보》 등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을 통해 징병, 지원병을 선전, 선동했다. 또한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부문 행사, 위문 파견 등 친일활동을 했다. 1945년 고향으로 내려간 후 〈민족의 죄인〉(1948)을 집필했고 1950년 세상을 떠났다.
2001년 채만식문학관을 개관했고, 2002년 소설비가 건립되었으며, 2002년 채만식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작품 세계
채만식의 작품들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식민지 아래에서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또한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특히 풍자적 수법을 작품에 잘 구사했다. 채만식은 민중의 현실을 작품에서 다룰 때는 비극적 리얼리즘으로, 대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나 비판이 필요할 때는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으로 소설을 구성했으며, 당대의 정치적인 문제를 적절하게 소설의 주제로 삼았다. 또한 작가는 소설뿐 아니라, 희곡도 다수 발표했다. 1960년대 말까지는 채만식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고, 1970년대에 중편소설 〈소년은 자란다〉, 〈과도기〉(1973) 등을 비롯한 많은 유작들이 발굴 및 공개되면서 작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1938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단편 〈치숙(痴叔)〉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수난과 현실에 대응하는 양상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민족의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었던 지식인이다. 작가는 부정적인 인물이 긍정적인 인물을 비난하는 것을 통해, 곧바로 자기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만든다.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은 대학교까지 다녔지만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지식인 실직자와 신문사 사장이 벌이는 대화에서 드러나는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기법은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다. 미군정 시기에 미군정에 기생(寄生)하는 한국 사람들과 친일파의 모습을 풍자한 〈미스터 방(方)〉, 〈맹순사〉 그리고 〈논 이야기〉 등은 광복 직후 혼란한 사회상황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한편 《아름다운 새벽》(1947)과 《매일신보》에 1944년 10월 5일부터 1945년 5월 17일까지 연재한 《여인전기》는 친일소설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
1) 전집
《채만식전집》(전 10권), 창비, 1989.
《채만식 소설 전집》(eBook), 유페이퍼, 2016.
2) 단편 소설
〈새길로〉, 《조선문단》, 1924.
〈레디메이드 인생〉, 《신동아》, 1934.5~7
〈치숙(痴叔)〉, 《동아일보》, 1938.3.7.~3.14
〈맹순사〉, 《백민(白民)》3호, 1946.
〈미스터 방(方)〉, 《대조》(2권7호), 1946.7
《채만식 단편집》, 학예사, 1939.
3) 장편소설
《인형의 집을 나와서》, 《조선일보》, 1933.5.27.~11.14.
《탁류(濁流)》, 박문서관, 1939.
《태평천하(太平天下)》, 동지사, 1948.
《금(金)의 정열》, 영창서관, 1941.
《냉동어(冷凍魚)》, 《인문평론》, 1940.4~5.
《아름다운 새벽》, 박문서관, 1947.
《어머니》, 《조광》, 1943.3~6, 8~10(7회 미완)
《여인전기》, 《매일신보》, 1944.10.5.~1945.5.17.
《민족의 죄인》, 《백민》, 1948.10~1949.1
4) 희곡
〈제향날〉, 《조광》, 1937.11
〈당랑(螳螂)의 전설〉, 《인문평론》,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