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ABC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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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Lee Injik(이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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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Lee Injik
Family Name
Lee
First Name
Injik
Middle Name
-
Preferred Name
Lee Injik
Pen Name
Lee Injik, Yi In-jik, Yi Injik
ISNI
-
Birth
1862
Death
1916
Occupation
Novelist
Period
Classical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 Chinese(简体)

 

도입

 

 이인직(1862~1916)은 한국의 소설가이다. 한국 근대소설의 시조로 꼽힌다. 일본 유학 중 신문사 견습생으로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조선으로 돌아와 신소설 작가, 언론인, 정치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혈의 누(血의 淚)>(1906), <귀의 성(鬼의 聲)>(1906~1907), <은세계(銀世界)> 등이 꼽힌다.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비판하고 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작가의 입장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일제의 조선 통치를 지지하고 선전하는 언론 활동을 펼쳤고, 한일 강제 병탄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생애

 

일본 유학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1900년 39세의 늦은 나이에 관비유학생 자격을 얻어 일본에서 유학했다. 이인직이 유학한 동경정치학교(東京政治學校)의 당시 교장이었던 마쓰모토 군페이(松本君平)는 당대 일본 언론계의 거물로, 교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언론의 파급력과 계몽성을 강조했던 인물이다.1) 그가 남긴 <신문학> 강의록을 통해 이인직이 일본 유학 중 배웠을 문학이론의 단면을 추측할 수 있다.2)

 

언론인이 되기까지
이인직이 1901년 지역 신문사의 견습생으로 들어갔던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인직의 이후 행적은 전문 소설가라기보다는 신문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조선인 유학생 입장에서 그는 신문사에 <한국신문창설취지서(韓國新聞創設取旨書)>(1903) 등 조선 사회에 신문을 보급해 계몽을 도모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게재했다. 또한 <한국잡관(韓國雜觀)>(1902), <한국실업론(韓國實業論)>(1902), <한국곡물론(韓國穀物論)>(1904) 등을 써서 한국에 대한 개괄적 정보를 전달하는 한편 <몽중방어(夢中放語)>(1901), <과부의 꿈>(1902) 등 문학적 글도 실었다. 견습생 시절 게재한 다양한 글들은 이인직의 언론인으로서의 면모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귀국 이후의 행적
1904년 일본 육군에 통역으로 임명되어 러일전쟁에 종군했다. 이후 조선에서의 본격적인 언론활동을 시작했다. 1906년 《국민신보》의 주필로 취임해 첫 소설 <백로주강상촌(白鷺洲江上村)>을 연재했다고 하지만 신문이 전해지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같은 해 《국민신보》를 나와 천도교 기관지 《만세보》 주필을 맡는다. 여기에 이인직은 논설 <사회(社會)>(1906), 소설 <혈의 누>, <귀의 성>을 연재해 큰 관심을 얻었다. 특히 <혈의 누>는 1907년 광학서포(廣學書舖)3)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큰 호응을 얻어 재판이 간행되었다. 

 

《만세보》가 재정난에 빠졌을 때 친일 계열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이완용의 후원을 얻어 신문사명을 《대한신문》으로 바꾸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시기부터 이인직의 친일 행적 역시 본격화된다. 1908년 《은세계》가 단행본으로 발표되었고, 창극으로도 상연되었다. 《은세계》를 발간한 곳은 이완용 친일내각 계열의 주요 정치가들이 참여한 동문사(同文社)였다. 이후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되는 시점까지 이완용, 조중응, 고마쓰 미도리(小松緣)4) 등 통감부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하며 일본의 조선 통치를 지지하고 선전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루어진 후에는 총독부 경학원의 사성(司成)으로 임명되었다. 특히 이인직에 대한 대우는 당시 같은 지위에 있었던 다른 총독부 관리들에 비해서도 좋았다고 한다.5) 여기서 이인직은 《경학원잡지》의 편찬과 발행을 맡아 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하고 이를 선전하는 활동을 벌였다. 1916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언론 활동을 통해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는 글을 다수 남긴 점을 근거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6)

 

작품세계

 

언론활동과 소설
이인직은 전문 소설가라기보다는 소설을 통해 언론활동을 펼쳤던 언론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근대적인 지식과 문명으로 조선 사회의 폐습과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전망을 보여준다. <혈의 누>의 주인공 옥련은 청일전쟁의 여파로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하며 조선 부인사회를 계몽하겠다는 포부를 갖는다. <은세계>는 당시 조선 통치자들의 무능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편, 신지식을 습득한 유학생들이 조선 사회를 진보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제시한다. <귀의 성> 역시 양반의 축첩이라는 조선 사회에 남아있는 폐습을 지적하고 있다. 이인직은 이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조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변화의 방향과 방법으로 근대 문명의 수용을 제시한다. 

 

이처럼 이인직은 소설을 통해 조선 사회의 계몽을 주장했다. 소설 <은세계>가 연극으로도 공연된 사실 역시 이인직의 문학이 사회계몽사업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연극개량운동을 주도하면서, 일본의 신연극운동을 받아들이고 이를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형해 계몽사상의 효과적 전달수단이 될 수 있도록 연극을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 이는 당시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사회진화론의 논리를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진화론에 의하면 인구 증가에 의한 압력이 인류 진보의 요인이 되었으며, 따라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8) 더 문명한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를 지배하는 것 또한 이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이인직은 이를 일본 유학 중 접하고 나아가 일본이 서구 열강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목격함으로써 국가 차원에서의 개화가 중요하다고 절감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여기에 계몽사상의 역설이 있으니, 민족국가 건설이 좌절된 시점에서 계몽과 문명화에 대한 욕구는 곧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던 것이다.

 

문학사적 의의
이인직의 문학은 언론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지만, 문학사적 기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임화, 김동인 등 식민지 시기의 주요 문인들은 모두 한국 근대소설의 시작으로 이인직을 지목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고전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난 근대적 소설 양식을 불완전하게나마 선보였다는 점에 있다. 임화는 <혈의 누>와 <은세계>가 조선의 당대 현실을 소설의 배경이자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고전소설과 달리 구체적인 역사와 현실이 소설을 통해 재현되었다는 것이다.9) 김동인은 <귀의 성>을 높이 평가하며, 이 소설이 입체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선악의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아가 고전소설의 주된 주제였던 권선징악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10) 요컨대 이인직은 한국문학사에서 고전소설과 근대소설 사이의 다리 역할을 수행한 소설가로 인정된다. 

 

주요작품11)

 

(1) 소설
《은세계/모란봉/빈선랑의 일미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혈의 누》, 권영민 편, 문학과지성사, 2007.
《은세계(큰 글씨 책, 초판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혈의 누(1908년 광학서포 재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2016.
《귀의 성》, 서울프렌드, 2019.
《은세계》, 서울프렌드, 2019.
《혈의 누》, 서울프렌드, 2019.

 

(2) 어린이책
《굳세어라 옥련아(신파극장)》, 한결 역, 문공사, 1999.

 

(3) 기타

다지리 히로유키, 《이인직 연구》, 국학자료원, 2006. <부록> (일본어로 쓴 소설, 논설들이 번역 수록되어 있음.)

 

번역된 작품

 

Silvery World and Other Stories (은세계 외), Cornell East Asia Series, 2018.
Koran Classical Literature (한국 고전문학), 1989.

 

참고문학

 

1) 마쓰모토 군페이(松本君平)는 미국 필라델피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트리뷴 기자로 재직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1898년 동경정치학교를 열었다. 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일문 위키백과》 松本君平 항목 참조.
https://ja.wikipedia.org/wiki/松本君平
2)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바 없으나, 다지리 히로유키(田尻浩幸)의 연구서에 그 일부가 번역 소개되었다. 다지리 히로유키, 《이인직 연구》, 국학자료원, 2009, 265쪽~274쪽. 
3) 광학서포(廣學書舖)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출판사이다. 1906년 윤치호, 이상설 등 당대 선각자들이 설립했다. 이인직의 신소설, 신채호와 장지연의 번역위인전 등을 출판했다. 한일병탄 이후 압수와 검열로 활동이 위축되어 한문 고전 서적을 주로 출판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자세한 정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학서포 항목 참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5328
4) 고마쓰 미도리(小松緣)는 당시 조선 통감부 소속 고위 관리였다. 한일병탄 조약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5) 경학원은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성균관의 이름을 대체하여 만든 유교 교육기관이다. 이때 다른 사성의 봉급이 600원으로 기록되어 있었는 데 비해 이인직의 봉급은 900원으로 훨씬 높은 금액을 받았다. 900원은 당시 중추원 부의장 이완용(2000원), 조중응 등 고문(1600원), 참의 18인(1000원) 다음에 위치한 것으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다지리 히로유키, 《이인직 연구》, 국학자료원, 2009, 38쪽. 
6)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정리한 친일인사의 명단이다. 상세 내용은 《한글 위키백과》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항목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민족문제연구소의_친일인명사전_수록자_명단
7) <은세계>는 애초에 연극 공연을 염두에 두고 창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세계>가 공연된 원각사와 이인직의 연극개량운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아래의 기사를 참조하라. 
<신연극 ‘은세계’와 한국 연극>, 《연합뉴스》 2017.11.
https://www.yna.co.kr/view/AKR20171108061600371
8) 사회진화론은 18세기 유럽에서는 매우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생각이었다. 조선에는 18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한글 위키백과》 사회진화론 항목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사회_진화론
9) 임화, <개설 신문학사>, 1939, 《임화 문학예술전집 2권: 문학사》, 박이정, 2001.
10) 김동인, <조선근대소설고>, 토지, 2019. (e-book)
11) 이인직의 신소설은 한국근대소설의 효시로 받아들여져 오랫동안 폭넓게 읽혔다. 따라서 그 판본 또한 무수히 많다. 여기서는 이북으로 읽을 수 있는 판본, 비교적 최근에 간행된 판본, 원본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판본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한글 위키백과》 이인직 항목
https://ko.wikipedia.org/wiki/이인직
김덕영,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 작가 이인직>1 《민족문제연구소 역사 콘텐츠》 
https://www.minjok.or.kr/archives/92329
김덕영,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 작가 이인직>2 《민족문제연구소 역사 콘텐츠》 
https://www.minjok.or.kr/archives/93465
김덕영,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 작가 이인직>3 《민족문제연구소 역사 콘텐츠》 
https://www.minjok.or.kr/archives/96783

 

Introduction

 

Lee Injik (1862-1916) was a Korean novelist. Considered the ancestor of modern Korean novels, Lee started out in the media as an assistant at a newspaper company while studying abroad in Japan. Upon his return to Joseon, he became an active writer of sinsoseol, a journalist, and a politician. His representative works are Hyeorui nu (血의 淚 Tears of Blood) (1906), Gwiui seong (鬼의 聲 Songs of Spirits) (1906-1907), and Eunsegye (銀世界 Silvery World). Lee’s criticism of the underdeveloped status of Joseon and his argument for enlightenment led to a support for Japanese rule over the kingdom. Through the media, Lee advocated for Imperial Japan’s rule over Joseon, and played a critical role in Japan’s forcible annexation of Joseon.

 

Life

 

Studying in Japan
Lee Injik was born in Icheon, Gyeonggi Province, in 1862. In 1990, at the relatively late age of 38, he received a royal scholarship to study in Japan. He attended Nihonseisaku School, whose principal was Japanese media mogul Matsumoto Kunpei (松本君平). Even in his role as principal, Matsumoto always emphasized the influence of the media and the importance of enlightenment.[1] His collected lectures Shinbungaku offer insight into the kind of literary education Lee received during his time in Japan.
Before entering the media

 

Rather than become a professional novelist following his studies, Lee served as an assistant at a local newspaper company starting in 1901. Afterwards, he founded a newspaper and served more as a journalist than a writer of fiction. As an international student, he wrote the article “Hanguksinmunchangseolcwijiseo” (韓國新聞創設取旨書 Article for the Intention to Establish Newspapers in Korea) (1903) in a for the implementation of newspapers in Joseon, which he claimed would spur on enlightenment. Lee also published informative articles about Korea such as “Hangukjapgwan” (韓國雜觀 Miscellaneous Things to See in Korea) (1902), “Hanguksileopnon” (韓國實業論 Theory of Industry in Korea) (1902), and “Hangukgongmulnon” (한국곡물론 Theory of Grains in Korea) (1904), as well as literary works such as “Mongjungbangeo” (夢中放語 Words Spat Out in Dreams) (1901) and “Gwabuui kkum” (과부의 꿈 The Widow’s Dream) (1902). Lee’s writings from this time serve as a preview of his future newspaper career.

 

Return to Joseon
In 1904, Lee was named an interpreter for the Japanese Army and served in the Russo-Japanese War. Afterwards, he kicked off his media career in Joseon. In 1906, he worked as the editor-in-chief of the Gungmin Sinbo and is said to have serialized his first novel Baengnojugangsangchon (白鷺洲江上村), but the assertion could not be confirmed because no copies of the newspaper currently exist. The same year, he left the Gungmin Sinbo and became the editor-in-chief of the Cheondoist newsletter Mansebo, where he serialized the debate “Sahwe” (社會 Society) and the novels Hyeorui nu and Gwiui seong, which were received with public acclaim. Hyeorui nu in particular was published in book format in 1907 by Gwanghakseopo[3] and reprinted due to its popularity.

 

When Mansebo ran into financial difficulties, the influential pro-Japanese politician Ye Wanyong offered assistance. Lee renamed the newspaper to Daehan Sinmun and became its president. It was at this point in time that his pro-Japanese actions intensified. In 1908, Eunsegye was published in book format and even adapted into a Changgeuk. The publisher of Eunsegye was Dongmunsa, with which prominent pro-Japanese politicians from Ye’s faction were involved. Until the Japan-Korea Treaty of 1910, which resulted in Japan’s annexation of Korea, Lee was an outspoken supporter of Japanese rule over Korea and consorted frequently with important figures in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 Korea including Ye Wanyong, Cho Jung-eung, and Komatsu Midori (小松緣).[4]

 

Following the annexation, Lee was named to the position of Saseong at Gyeonghagwon, a Confucian school under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Lee was treated particularly well, even among others of his rank at the Governor-General.[5] In his new position, Lee took on the responsibility of editing and publishing the magazine Gyeonghagwonjapji, which promoted and advocated for the Governor-General’s policies. Lee died of a chronic disease in 1916. He was listed in the Dictionary of Pro-Japanese Names for publishing multiple articles justifying Japanese rule over Joseon in his career in the media.[6]

 

Writing

 

Journalism and Novels

Rather than a novelist, Lee Injik is classified more as a journalistic figure who used his novels as an extension of his newspaper career. His representative works show the common thread of overcoming the backwardness and underdeveloped status of Joseon by the application of modern knowledge and civilization. Oknyeon, the protagonist of Hyeorui nu, is separated from her parents at a young age in the Sino-Japanese War. She goes to Japan, then to the United States, and becomes determined to bring enlightenment to Joseon’s women. Eunsegye is a condemnation of the corrupt and ineffectual rulers who controlled Joseon, and an assertion that international students who have acquired outside knowledge must bring progress to Joseon society. Gwiui seong also denounces Joseon society, examining the practice of noble yangban taking concubines. In these works, Lee argued that Joseon society must change, and claimed that the acceptance of modern civilization is the answer.

 

The theater adaptation and performance of Eunsegye was also a call for social enlightenment in Joseon. Lee led the movement for the modernization of theater, arguing that Joseon must embrace the new theater movement in Japan and adapt it for the local culture so that theater could become an effective means of public enlightenment,[7] He was a proponent of Social Darwinism, which was a prevailing belief in the world at the time and claimed that the concept of survival of the fittest was justified because the pressure of population growth led to the advancement of civilization.[8] For Lee, this belief justified the rule of more developed nations over others. His conviction that national enlightenment was necessary likely solidified when he watched Japan defeat Russia, one of the greatest powers in the West. However, when the possibility of establishing a nation-state was struck down, the desire for enlightenment and progress led to his justification of colonial rule.

 

Literary significance
Although his works were written primarily for the purpose of journalism, Lee’s contribution to Korean literature cannot be denied. Prominent Korean literary writers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era—including Kim Dong-in—named Lee Injik as the father of modern Korean literature because of his use of the modern novel format, which though incomplete, broke away from classical Korean literature. Novelist Yim Hwa spoke highly of Hyeorui nu and Eunsegye for their use of contemporary realities as the setting and theme—the use of specific historical settings and realities was another change from classical Korean novels.[9] Kim Dong-in praised Gwiui seong for avoiding black-and-white morality and the traditional good-triumphs-over-evil narrative via the use of multidimensional characters.[10] From this perspective, Lee Injik is remembered as the novelist who bridged the era of classical Korean literature and the era of modern Korean literature.

 

Works

 

1) Novels
≪은세계/모란봉/빈선랑의 일미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Eunsegye/Moranbong/Binseonnangui ilmiin (Silvery World/Moran Hill/The Poor but Virtuous Husband’s Japanese Beauty), Seoul National University, 2003.
≪혈의 누≫, 권영민 편, 문학과지성사, 2007 / Hyeorui nu (Tears of Blood), ed. Kwon Youngmin, Moonji, 2007.
≪은세계 (큰 글씨 책, 초판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 Eunsegye (Silvery World) (large print, first edition), Jisigeulmandeuneunjisik, 2014.
≪혈의 누(1908년 광학서포 재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2016 / Hyeorui nu (Tears of Blood) (1908 Gwanghakseopo Reprint Original Design Edition), Sowadari, 2016.
≪귀의 성≫, 서울프렌드, 2019 / Gwiui seong (Song of Spirits), Seoul Friend, 2019.
≪은세계≫, 서울프렌드, 2019 / Eunsegye (Silvery World), Seoul Friend, 2019.
≪혈의 누≫, 서울프렌드, 2019 / Hyeorui nu (Tears of Blood), Seoul Friend, 2019.

 

2) Children’s Books
≪굳세어라 옥련아(신파극장)≫, 한결 역, 문공사, 1999 / Gutseora Oknyeon-a (Stay Strong, Oknyeon), trans. Han Gyeol, Mungongsa, 1999.

 

3) Other
Tajiri, Hiroyuki, “Appendix,” Lee Injik yeongu (Research on Lee Injik), Kookhak, 2006. (Includes Lee Injik’s Japanese-language novels and essays)

 

Works in Translation

 

≪은세계≫, 1908 / Silvery World and Other Stories, Cornell East Asia Series, 2018.
Korean Classical Literature, 1989.

 

References

 

Notes
[1] Matsumoto Kunpei (松本君平) was a graduate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who worked as a reporter at the New York Tribune. He returned to Japan and opened Nihonseisaku School in 1898. Refer to “松本君平,”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松本君平.
[2] Although never translated and published in Korean, the part of the collection was translated in Tajiri Hiroyuki (田尻浩幸)’s research paper. 
Tajiri, Hiroyuki, “Lee Injik yeongu,” (Research on Lee Injik), Kookhak, 2006, p.265-274.
[3] The publisher Gwanghakseopo played an important part in modern Korean literature, Founded by pioneers in the field like Yun Chi-ho and Yi Sangsul in 1906, it published sinsoseol by Lee Injik and translated biographies by Sin Chaeho and Chang Chi-yon. Following Korea’s annexation, the publisher was subjected to confiscation and censorship, forcing it to scale down its activities to the translation of Classical Chinese texts.
“Gwanghakseopo,”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5328.
[4] Komatsu Midori (小松緣) was a high-level official at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 Korea who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signing of the Japan-Korea Treaty of 1910.
[5] Originally known as Sungkyunkwan, Gyeonghagwon was the re-named Confucian school established in 1911 by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Other people of the Saseong rank received a pay of 600 won at the time, where Lee Injik was paid 900 won. The only personnel paid more than Lee were Ye Wanyong (2000 won), Cho Jung-eung and other advisers (1600 won) and 18 people of the Chamui rank (1000 won).
Tajiri, Hiroyuki, “Lee Injik yeongu,” (Research on Lee Injik), Kookhak, 2006, p.38.
[6] A list of Japanese sympathizers compiled by 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Refer to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민족문제연구소의_친일인명사전_수록자_명단.
[7] Silvery World is considered to have been written with theatrical adaptation in mind. For more information on the Wongaksa Theater and Lee Injik’s push for the modernization of theater, refer to “신연극 ‘은세계’와 한국 연극,” Yonhap News, November 2017, https://www.yna.co.kr/view/AKR20171108061600371.
[8] Social Darwinism was a mainstream line of thought in eighteenth-century Europe. The concept garnered attention in Joseon in the 1880s. Refer to “사회 진화론,”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사회_진화론.
[9] Im, Hwa, “Summary of New Literature History,” 1939. Park, I-jeong, Im Hwa Literature Collection vol.2: Literary History,” 2001.
[10] Kim, Dong-in, “Examining Modern Joseon Novels,” Toji, 2019. (e-book)
[11] Lee Injik’s sinsoseol novels are considered the primogenitors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nd were read extensively for many years. As a result, they have been reprinted and published many times over. This list of works is curated around editions in e-book format, relatively new editions, and editions that preserve the form of the original publications.
“이인직,”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이인직.
Kim, Deok-yeong, “Lee Injik, Writer of the First Sinsoseol Hyeorui nu (1),” 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https://www.minjok.or.kr/archives/92329.
Kim, Deok-yeong, “Lee Injik, Writer of the First Sinsoseol Hyeorui nu (2),” 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https://www.minjok.or.kr/archives/93465.
Kim, Deok-yeong, “Lee Injik, Writer of the First Sinsoseol Hyeorui nu (3),” 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https://www.minjok.or.kr/archives/96783.

 

 李人稙(1862-1916),韩国小说家。1906年7月22日至10月11日在《万岁报》连载了《血之泪》(《혈의누》),之后相继推出了《鬼之声》(《귀의성》)、《雉岳山》(《치악산》)等与以往小说类型完全不同的新小说。作为新派小说作家之一,他对近代韩国小说的发展起到了极其重要的作用。        


小说《银世界》(《은세계》,1908)、《血之泪》(《혈의누》,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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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세계 외

    Eunsegye oe

    Lee Injik et al / 이인직 et al / 1908
  • DLKL
    Korean(한국어) Printed/Published Work
    한국고전문학

    Hangukgojeonmunhak

    Pak Jiwon et al / 박지원 et al / -
  • DL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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