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ABC List

We provide information on Korean writers: biographical and bibliographic data, overseas literary events and international media coverage.

Writer

Kim Siseup(김시습)

Title
Kim Siseup
Family Name
Kim
First Name
Siseup
Preferred Name
-
Pen Name
KIM THỜI TẬP, Kim Si-seup, Kim Siseup
ISNI
0000000081605773
Birth
1435
Death
1493
Occupation
Writer, Civil servant
Period
Classical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
  • Korean(한국어)
  • English(English)
  • German(Deutsch)

김시습(金時習)

 

◆기본 정보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전기 생육신(生六臣)의 한 분으로 유불도(儒佛道)을 넘나들면서 사유하며 탁월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조선 전기 방외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전기소설(傳奇小說)의 백미(白眉)인『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한시도 남겼다. 저서로 『매월당집(梅月堂集)』 23권 6책이 전한다.

 

◆작가 생애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자 열경(悅卿)이다.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이며 법호(法號)는 설잠(雪岑)이다. 무반(武班)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3살 때 외조부로부터 글을 배워 한시를 지을 줄 알아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1세 때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생각한 유교의 이상과 현실이 모순을 일으키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설잠(雪岑)이었다.

승려(僧侶)가 된 이후 김시습은 전국을 떠돌며 방외인(方外人)으로 살았다. 30대에는 경주 남산의 금오산(金烏山)에 거처를 마련하고 여기서『금오신화』를 창작하였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등에서 승려(僧侶)로 지내다가 40대 후반에 환속하여 혼인도 하였다. 김시습은 전국을 떠돌면서 지방의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가는 곳마다 시를 써서 남기기도 하였다. 만년에 김시습은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 거처를 정하고 이곳에서 병사하였다. 김시습은 유교의 왕도정치를 신봉하였지만, 현실이 유교의 이상과 어긋나자 불교에 귀의하여『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와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와 같은 불경을 주석(註釋)하지만, 불교에도 안주하지 못하였다. 김시습은 인생 자체가 방황의 연속이었고, 자신이 꿈꾸던 유교적 이상과 현실이 어긋난 데서 온 결과였다.

유교적 이상과 현실이 모순을 일으킨 갈등의 연속이었고, 이러한 현실에 비판적 의식을 표출하며 유교적 이상을 바랐던 그의 삶은 자신이 만년에 지은 「아생(我生)」이라는 한시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나 태어나 사람 꼴 취했거늘, 어찌해서 사람 도리 다 못하였나./젊어서는 명리를 일삼았고, 장년이 되면서 자빠지고 넘어졌네./가만히 생각하면 부끄러운걸, 진작 깨닫지 못하였나니./후회해도 지난 일 돌이킬 수 없기에, 잠 못 이루고 가슴을 방아 찧듯 내리친다./하물며 충효도 다하지 못했으니, 이외에 무엇을 구하고 찾으리./살아서는 한 죄인이요, 죽어서는 궁색한 귀신이 되리라./다시 헛된 명예심 또 일어나니, 돌아보면 근심과 번민만 더해지네./백년 후에 내 무덤에 표할 때, 꿈속을 살다 죽은 늙은이라 써주시게나./행여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천년 뒤에 속마음 알 수 있으리.”라 하였다.

김시습은 자신이 꿈꾸던 유교적 이상과 정치 현실이 어긋나자 이러한 현실과 단절한 채 은거하며 방외인으로 자처하였다. 그러므로 유교에서 추구하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임금께 충성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일조차 못 하였기 때문에 ‘몽사노(夢死老 : 꿈속을 살다 죽은 늙은이)라 자처하였다. 이는 세속에서 추구하는 이치나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시습은 평생 갈등과 고뇌로 삶을 짊어졌던 전형적인 방외인의 삶이었다.

 

◆작품 세계

김시습은 시와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으며, 방외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방외인 문학의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먼저 고전 서사 문학사에서 김시습의 작품이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금오신화』다. 이것은 전기소설로 현재 5편만 남아 있다. 조선에서 간행된 판본에는 ‘서갑집후(書甲集後, 갑집 뒤에 쓰다)’라 기록 하고 있다. 김시습은 모두 4권에 각 권 5편인 20편의 작품과 부록 1편을 더하여 총 21편을 구상하였던 것 같다. 체제는 명(明)나라 구우(瞿佑, 1341~1372)의『전등신화(剪燈新話)』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금오신화』는 전기소설의 백미(百媚)로『전등신화』를 훨씬 뛰어넘는 빼어난 소설이다.

『금오신화』에는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만복사저포기(萬福寺摴蒱記)」,「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州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이 실려 있다. 현재 중국 대련(大連)도서관에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명종(明宗) 때 간행한 것으로 보이는 목판본『금오신화』가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서갑집후(書甲集後)’라는 제목 아래 『금오신화』 창작과 관련한 김시습의 시 두 편을 실어놓고 있다. 본래 작품이 갑집(甲集) 5편이 아니고, ‘을집(乙集)’, ‘병집(丙集)’, ‘정집(丁集)’ 등이 더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씨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애정(愛情) 전기소설(傳奇小說)이다. 「만복사저포기」는 양생(梁生)이 배필을 구하기 위해 만복사의 부처님과 저포 놀이에 이겨 처녀 귀신을 만나 애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용궁부연록」은 고려 시대의 한생(韓生)이 용궁의 잔치에 초대받아 다녀온 이야기다. 「남염부주지」는 박생이 남염부주라는 기이한 세계를 꿈속에서 여행하여 왕위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사상소설을 지향하고 있다.「취유부벽정기」는 서로 우리 고대역사를 화제로 삼아 시를 읊조리며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사는 남녀가 애정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김안로(金安老, 1481∼1537)는『금오신화』을 두고 “김시습은 금오산에 들어가 글을 지어 석실(石室)에 감추어두고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글은 대개 기이(奇異)한 이야기를 지어 자신의 뜻을 그 글에 빗대어 풍자〔술이우의(述異寓意)〕하였으며『전등신화(剪燈新話)』를 본받아 저술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김시습은 ‘술이우의’ 방식으로 자신을 뜻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방황의 종착지에서 산출된『금오신화』는 김시습의 개인사와 관련이 깊다.

예컨대『금오신화』는 현실 세계와 현실이 아닌 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직접 그리지 않고 배경으로 처리하거나 끝내 주인공이 현실 세계를 등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서사의 결말은 김시습의 고독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뜻에 맞는 인물과 완전한 만남을 이루지만, 끝내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소설의 결말이다. 이는 세상과 불화하여 세상을 비판하면서 평생 현실비판 의식으로 일관한 김시습의 삶에 대응한다. 이처럼 현실 세계를 철저히 등지는 『금오신화』의 서사에서 우리는 김시습의 처절한 고독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김시습의 작품은 애민(愛民)과 민본(民本)을 지향한다. 김시습은「태극설(太極說)」, 「귀신설(鬼神說)」, 「이단변(異端辨)」, 「애민의(愛民義)」 등에서 자신의 사상적 견해를 보여주는데, 주로 현실 인식과 비판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특히「애민의」는 유교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민본 사상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일찍이 김시습은 “내 마음과 세상사가 상반(相反)되니 시를 제외하면 즐거운 것이 없네.”(「서민(敍悶)」)이라 하여 삶의 중요한 목표로 한시 창작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그의 한시는 방외인 시 세계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체로 김시습은 백성의 삶과 그들의 처지에 무한한 애정과 공감을 보내는 애민의식(愛民意識)을 드러내는 방향을 한시를 창작한다.

「영산가고(詠山家苦)」와 「오호가(嗚呼歌)」, 「기농부어(記農夫語)」와 「탁목(啄木)」 등이 대표적이다. 「영산가고」는 칠언절구 8수의 연작 형태인데, 주로 관리들의 수탈에 쫓겨 깊은 산중에 사는 산민(山民)의 고초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읊고, 이러한 고통이 끝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오호가」에서는 민생의 처절한 삶이 사대부 집권층의 사치와 향락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 결과 자영농이 몰락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자영층의 몰락은 집권층에 있으며, 작자는 이런 현실을 타개할 방안을 찾지 못한 채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시습이 활동한 시기는 15세기 후반인데, 이미 조선조는 여러 정변을 겪으면서 지배 계층에게 공신전(功臣田)을 남발했고, 지배 계층도 이를 토대로 토지의 겸병(兼倂)을 확대하였다. 이 무렵에 조선 사회는 사회적 모순이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자영농은 더욱 어려워졌고,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기농부어」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포착한 빼어난 작품이다. 그리고「탁목」에서는 딱따구리를 등장시켜 인간 세상의 좀 벌레를 징계하여 다스리기를 바란다. 백성을 못살게 하는 좀 벌레와 같은 존재의 제거를 염원하는 것은 사실 현실에서 쉽게 이룰 수는 없다. 전국 각지 백성의 삶을 직접 보고 분명하게 확인한 경험을 시로 포착하였다. 백성을 못살게 하는 모든 좀 벌레 같은 존재의 제거를 바라는 것은 김시습의 애민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김시습의 민본 사상과 현실 비판의식을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외인의 삶과 문학은 현실 비판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문학사적 위상과 의의

김시습의 한시는, 선조의 명으로 간행된 『매월당집』에 수록된 것만도 무려 2,200여 수에 이른다. 1518년에 편찬한 『속동문선(續東文選)』에도 68수나 실려 있다. 조선 전기 문인 가운데 『속동문선』에 50여 수 이상의 한시가 실린 인물은 서거정(徐居正)과 김종직(金宗直), 그리고 김시습이다. 김시습은 내면의 갈등과 자기 독백, 현실에 대한 분노와 백성에 대한 애정을 직설적이며 솔직하게 표출하고 있다. 한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담박한 정서로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진실을 담고 있다. 또한, 김시습은 자신의 삶을 방외인에 두고 세계인식을 소설에 투영함으로써 소설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성과는 조선 전기 사대부 문학의 중요한 성과이자 방외인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염부주지」는 이후 임제(林悌, 1549∼1587)의 「수성지(愁城志)」로 계승되며,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의 「천군전(天君傳)」과 같은 마음을 의인화 한 천군계(天君系) 소설로 이어진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임형택, 「매월당의 문학의 성격-방외인 문학의 세계와 현실주의 정신」, 『대동문화연구』13,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9.

임형택, 「조선 전기 문인 유형과 방외인 문학」,『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2.

임형택, 『한국 문학사의 시각』, 창작과 비평사, 1984.

박희병, 『한국 전기소설의 미학』, 돌베개, 1997.

심경호, 『김시습 평전』, 돌베개, 2003.

민족문학사 연구소 엮음, 『새 민족문학사 강좌 01』 창비, 2009.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2650&cid=46644&categoryId=4664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시습(金時習)

 

 

◆ 해외 번역 현황:《금오신화》

(1) French : Kim Siseup, Histoire merveilleuses du mont Ceumo, trans. by Choi Ae-young et al・Jean Bellemin Noel(France : Editions Imago, 2019).

(2) Portuguese : Kim Si-seup, Contos da Tartaruga Dourada, trans. by Yun Jung Im(Brasil : Liberdade, 2017).

(3) Czech : Kim Si-sup, Vyprávění z hory Kumo, trans. by Jaroslav Bařinka(ODEON, 1973).

(4) Russian : Ким Сисып, Новые рассказы, услышанные на горе Золотой Черепахи, trans. by Д. Воскресенский・Вл.Сорокин(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72)

(5) Russian : Ким Сисып, Ким Си Сып: Новые рассказы, услышанные на горе Золотой Черепахи, trans. by Д. ВоскресенскийВл.СорокинД.Восресенский(СемаРШ, 2003).

(6) Russian : Ким Сисып, Истории, записанные на горе Золотая Черепаха: КОРЕЙСКИЕ РАССКАЗЫ И ПОВЕСТИ ХV-XIX BB., trans. by Г.РачковВ.СорокинД.Восресенский(ГИПЕРИОН, 2011)

(7) Bulgarian : Гuм Cucъб, ГЪМОСИНХУА: разкази, написани в планината Гъмо - Златната костенурка, trans. by Куон Джчн Чой・Cофuя КамъроВа(CEMA PШ, 2003).

(8) Chinese : 金时习, 《金鳌新话》, 权锡焕・陈蒲清 譯(Changsha : 岳麓书社, 2009).

(9) Vietnamese : KIM THỜI TẬP, KIM NGAO TÂN THOAI, trans. by Toàn Huệ Khanh・Ly Xuan Chung(NHÀ XUẤT BẢN ĐẠI HỌC QUỐC GIA HÀ NỘI, 2004).

 

 

Kim Siseup (金時習, 1435-1493)

 

1. Introduction

Kim Siseup, one of the Six Surviving Ministers (生六臣 sangyuksin) from the early Joseon period (朝鮮 1392-1910), contemplated back and forth the merits Three Teachings (儒佛道 shortened form for referring to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ogether) and left behind many excellent works. A representative author of early-Joseon Outsider literature (外邦人 文學 oebangin munhak), he not only wrote the best jeongi soseol (傳奇小說 fiction of remarkable things) in Hanmun (漢文Chinese characters) Geumo Sinhwa (金鰲新話 New Stories from Gold Turtle Mountain), but also left behind outstanding Hansi (漢詩 Chinese character poetry). His posthumous anthology Maewoldangjip (梅月堂集 Collection of Maewoldang) in 23 chapters of 6 volumes is currently being passed down.

 

2. Life

Kim Siseup’s family name was from Gangneung (江陵) county and his courtesy name was Yeolgyeong (悅卿). His pen names were Maewoldang (梅月堂) and Dongbong (東峰), and his posthumous Buddhist name was Seoljam (雪岑). Born into a military official’s household, Kim Siseup learned to write from his grandfather when he was 3 years old, and he was well known as a child prodigy for his ability to write Hansi. However, when he was 21 years old, he heard the news that Prince Suyang (the future King Sejo) had driven King Danjong (端宗 r. 1452-1455) off the throne and taken it for himself; and Kim Siseup lost his faith in the Confucian ideology and its truths. He shaved his own head and became a Buddhist monk. His Buddhist name became Seoljam (雪岑).

After becoming a Buddhist monk, Kim wandered the whole country, living as an outsider (方外人). In his 30s, he set up a dwelling on Mt. Geumo near Gyeongju’s Mt. Nam and created the Geumo sinhwa. Then, he went up to Seoul to live as a Buddhist monk on the back of Mt. Surak and ended up leaving the monastic life to get married in his late 40s. Kim taught young local scholars while wandering the whole country, and he wrote poems for people wherever he went. In his later years, he took residence at the Muryang Temple in Buyeo county and there, died from an illness. Though he had first espoused Confucianism’s royal politics, he turned to Buddhism when reality ran askew the Confucian ideology and wrote a commentary on Buddhist scriptures like Siphyeondam yohae (十玄談要解) and Jodong owi yohae (曹洞五位要解). But ultimately, he was not able to settle on even Buddhism. Kim’s life itself was a continued wandering, and it was the result of the untenability between reality and the Confucianism of which he dreamt.

There was a continued conflict between his Confucian ideology and reality, and he expressed criticism against this reality, the life he had hoped from his Confucian ideology. A poem Asaeng (我生 My Life), which he wrote in his later years, provides a good picture of this conflict:

“Born into this pitiful human life, why wasn’t I able to do my human duty / I pursued fame and wealth when I was young, I tripped and fell when I became old / It is shameful when I stop to think about it, I should have realized sooner / Because I cannot undo my past when I regret them, I pound my chest as a mill unable to sleep / Moreover unable to fulfill my duties, what else shall I want and desire / I am a sinner alive, I will be an impoverished spirit dead / Ambitions had risen again, they’ve only added to suffering / On my tombstone a hundred years from now, write an old man who died in a dream / If by chance somebody understands me, they will know my heart a thousand years later.”

 

As Kim’s Confucian ideology and the political situation he dreamt of became awry, he severed himself from this conflict to assume the sojourner’s life. Therefore, because he was unable to complete the pursuit of Confucianism for filial piety and royal duty, he thought of himself as “mongsano (夢死老 an old man who died living inside a dream).” This shows that those who chase after wealth, honor, success, and fame (富貴功名 bu gwi gong myeong) were difficult to understand. Kim was the typical sojourner who carried his life with conflict and agony for the entirety of his whole life.

 

3. Work

Kim Siseup left behind many works of poetry and fiction worthy of attention, showing sojourner literature at its best, stories that welled up from one’s own experiences of the sojourner’s life. First, one of the best-known works in ancient narrative literary history was Kim’s Geumo sinhwa. Presently, only 5 anecdotes are extant. In the version published during the Joseon period, it was recorded in the “seo gapjip hu (書甲集後 wrote [it] after the first volume).” Kim seems to have structured the work with 5 anecdotes with 4 chapters each to make 20 anecdotes for the main body of the work and added an anecdote of appendix to make a total of 21 anecdotes. It looks as though Kim had in mind Jiandeng xinhua (剪燈新話) by Qu You (瞿佑, 1341-1372) of the Ming (明) dynasty when writing Geumo sinhwa. However, referred to as the best of jeongi soseol, it was a much more distinguished fiction than Jiandeng xinhua.

Geumo sinhwa included the 5 anecdotes Yi Saeng gyujangjeon (李生窺墻傳 Student Yi Peers over the Wall), Manboksa jeopogi (萬福寺摴蒱記 Old Bachelor Yang Plays a Jeopo Game with a Buddha of Thousand Blessing Temple), Chwiyu bubyeokjeonggi (醉遊浮碧亭記 Student Hong Plays at Floating Emerald Tower), Nam yeombuju ji (南炎浮州志 Student Bak Visits the Underworld or Hell), and Yonggung buyeonnok (龍宮赴宴錄 Student Han Visits the Dragon Palace). Presently, the woodblock-printed book of Geumo sinhwa, which looks to have been published by Yun Chunyeon (尹春年, 1514-1567) during King Myeongjong (明宗 r. 1545-1567), is housed in Dalian Library in China. In the woodblock-printed book, two pieces of poetry by Kim, that related it to the creation of Geumo sinhwa, were included underneath the note “seo gapjip hu.” This shows that the original work was not made up of only 5 anecdotes of gapjip (甲集 such as first volume), but most likely included others such as “euljip (乙集 second volume),” “byeongjip (丙集 third volume),” and “jeongjip” (丁集 fourth volume).”

Yi Saeng gyujangjeon is a romance fictions tory that drew a picture of the love between Student Yi and Ms. Choe. Manboksa jeopogi was the story of Student Yang who won a game of jeopo against a Buddha of Thousand Blessing Temple and got married with a maiden ghost who died three years ago. Chwiyu bubyeokjeonggi was the story of how a man and a woman confirmed their love by writing poetry about the ancient history of Korea from separate space-time dimensions. Nam yeombuju ji was a story about how Student Bak traveled to the Underworld [or Hell] called Nam yeombuju in a dream to receive the crown. It aimed to be an ideological novel. Yonggung buyeonnok was the story of how Student Han of the Goryeo period was invited to a party at the Dragon King’s palace.

Kim Anro (金安老, 1481∼1537) recorded the following in regards to Geumo sinhwa: “Kim Siseup went up to Mt. Geumo to write the work. He hid it in a stone chamber and said, ‘There will be someone who knows of me in future generations.’ It was a very strange story into which he alluded to his thoughts with satire in imitation of Jiandeng xinhua.” Thusly, Kim Siseup used the satire technique to express himself through the work. Produced at the final destination of sojourning, Geumo sinhwa was deeply related to his personal history.

For instance, Geumo sinhwa did not directly draw an opposition or conflict between the world of reality and the world of unreality, setting them as the background and plotting the main character who ultimately turned their back on the world of reality. This ending was an expression of Kim’s loneliness. Though a meeting of wholeness was shared between characters whose hearts and minds were aligned, the ending of the fiction was one in which there was ultimately no reconciliation with the world. It was Kim’s answer to his life, which cohered to discord with the world and a lifelong criticism of reality. In it, we can catch a glimpse of Kim’s wretched solitude in Geumo sinhwa’s narrative, where he thoroughly turned his back on the world of reality.

In addition, Kim aimed towards love for the people and people-orientedness in his works. He showed his ideological views in works such as “Taegeukseol (太極說 Taiji Theories),” “Gwisinseol (鬼神說 Theory of Ghostly and Godly Existence),” “Idanbyeon (異端辨 Sifting Heterodoxical Doctrines),” and “Aeminui (愛民義 apathy of the people),” generally providing his perception of reality and the rationale for its criticism. In particular, he displayed in “Aeminui” the people-centered ideology, which makes up the basic grounds for Confucianism exactly as it was. Early on, Kim said, “Since my heart and my view of the world are in conflict, excluding poetry, nothing brings me joy.” He proposed the creation of Hansi as an important objective of life. Though, his Hansi was characteristic to the world of sojourner poetry. For the most part, he created Hansi whose directions revealed the spirit of love for the people, through which he sent a limitless affection and sympathy for the people’s lives, their circumstances.

Among his Hansi, Yeongsanga go (詠山家苦 Hardship of Yeongsan’s Family) and Ohoga (嗚呼歌 Song of Alas), Gi nongbueo (記農夫語 Record of a Farmer’s Words) and Takmok (啄木 A Woodpecker) were among his representative works. Yeongsanga go was a series of seven-syllable quatrain (七言絶句); mainly a recitation from several sides of the hardships of people who lived deep in the mountains pursued by the exploitations of bureaucrats who hoped that their suffering would end. In Ohoga, he concluded that the wretchedness of the people’s lives was caused by the decadence and hedonism of the sadaebu (士大夫 the literati) ruling class, that their consequence was the collapse of independently-run farms. The fall of this independent working class was due to the ruling class, and the author anguished over it without having found a plan to overcome this reality. Kim’s active period was in the latter half of the 15th century; the Joseon dynasty had already experienced several political upheavals, over issuing meritorious subject lands (功臣田 gongsinjeon) to the ruling class, and the ruling class expanded the consolidation of lands on these grounds. Around the same time, Joseon society began to blossom societal corruptions; and due to this, the circumstance of independent farmers became that much more difficult, and they took the first step on the path to collapse. Gi nongbueo was a distinguished work that captured the circumstances of this occasion. In addition, in Takmok, he portrayed his wants with a woodpecker who would discipline and rule the worms of the human world. His longing for the elimination of those worm-like existences exploited the people was in truth not possible to satisfy in reality. He saw firsthand the lives of people in each place around the whole country and captured his vivid experiences of this into poetry. Kim’s wanting the extermination of the worm-like existences who made the lives of the people miserable clearly showed his spirit of love for the people. The fact that these works clearly captured Kim’s people-centered ideology and criticism of reality tell that the sojourner’s life and literature were premised on the criticism of reality.

 

4. Style and Legacy

Just counting Kim Siseup’s Hansi included in Maewoldangjip, which was published under King Seonjo’s orders, his works number as many as 2,200 titles. There are also 68 in Sok Dongmunseon (續東文選Sequel of Dongmunseon), which was compiled by Sin Yonggae (申用漑, 1463-1519) in 1518. Those among early-Joseon writers who have more than 50 titles of Hansi in Sok Dongmunseon are just three, Seo Geojeong (徐居正, 1420-1488), Kim Jongjik (金宗直, 1431-1492), and Kim Siseup. Kim Siseup, in a straightforward and honest display, expressed his inner conflict with the rage he felt over the harsh realities of the people and his affections for them. His Hansi were not bound to the Hansi form and were filled with candid truths that cut straight to the heart. Moreover, Kim lived a life of the sojourner and reflected that worldview onto fiction, marking a milestone in the history of Korean classical fiction. His works are wonderful examples of early-Joseon sadaebu literature as well as models of sojourner literature. In particular, Nam yeombuju ji was later succeeded by Im Je (林悌, 1549-1587) in Suseongji (愁城志), and its legacy continued in cheongun soseol (天君小說 fiction which is personified human mind) such as Cheongunjeon (天君傳) by Kim Wuong (金宇顒, 1540-1603).

 

5. Works in Translation: Geumo Sinhwa

[Bulgarian] Choĭ, Kuon Dzhchn and Kamarova, ГЪМОСИНХУА [Gaumosinhua], Sofii︠a︡: SEMA RSh, 2003.

 

[Chinese] Quan, Xihuan and Chen, Puqing, Jin Ao Xin Hua, Changsha Shi: Yue Lu shu she, 2009.

 

[Czech] Bařinka, Jaroslav, transl., Vyprávění z hory Kumo, Praha: Odeon, 1973.

 

[French] Bellemin-Noel, Jean et Choe Ae-young, transl., Histoire Merveilleuses du Mont Ceumo, Paris: Imago, 2019.

 

[Portuguese] Im, Yun Jung, transl., Contos da Tartaruga Dourada, São Paulo: Estação Liberdade, 2017.

 

[Russian] Voskresenskiĭ D. and Sorokin V., Novye Rasskazy, Uslyshannye na Gore Zolotoĭ Cherepakhi, Moskva: Khudozhestvennai︠a︡ lliterature, 1972.

 

[Russian] Voskresenskiĭ D. and Sorokin V., Kim Si Syp: Novye Rasskazy, Uslyshannye na Gore Zolotoĭ Cherepakhi, Sofii︠a︡: SEMA RSh, 2003.

 

[Vietnamese] Khanh, Toàn Huệ and Chung, Ly Xuan, Kim Ngao Tan Thoai, Hà Nội: Nhà xuất bản Quốc gia Hà Nội, 2004.

 

6. References and External Link

 

6.1. References

 

Im, Hyeongtaek, “Maewoldang ui Munhak ui Seonggyeok: Bangoein Munhak ui Segye wa Hyeonsiljuui Jeongsin [Characteristics of Literature of Maewoldang: Works of Outsider Literature and Spirit of Realism],” Daedong Munhwa Yeongu 13, Daedong Munhwa Yeonguwon, Sungkyunkwan University, 1979.

 

Im, Hyeongtaek, “Joseon Jeongi Munin Yuhyeong gwa Bangoein Munhak [Types of Writer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Outsider Literature],” Hanguk Munhak Yeongu Immu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Korean Literature], Jisik Saneopsa, 1982.

 

Im, Hyeongtaek, Hanguk Munhaksa ui Sigak [Perspective of Korean Literature History], Changjak gwa Bipyeong, 1984.

 

Pak, Huibyeong, Hanguk Jeongi Soseol ui Mihak [The Aesthetics of Korean Jeongi Soseol], Dolbegae, 1997.

 

Sim, Gyeongho, Kim Siseup Pyeongjeon [Critical Biography of Kim Siseup], Dolbegae, 2003.

 

Minjok Munhaksa Yeonguso, comp., Sae Minjok Munhaksa Gangui [New Lecture of Korean Literary History] vol. 1, Changjak gwa Bipyeong, 2009.

 

6.2 External Link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Kim Siseup [金時習]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2650&cid=46644&categoryId=46644

 

 

Kim Si-seup wurde in Seoul geboren und stammte vom Kim-Clan aus Kangnŭng ab[2]. Ab dem dritten Lebensjahr erhielt er Schreibunterricht von seinem Großvater mütterlicherseits und schrieb bereits chinesische Gedichte. Sein Ruf als Genie drang bis zum Hofe König Sejongs, der ihn dazu ermunterte weiterhin fleißig zu lernen und ihm eine Karriere am Hof versprach.[3]

Im Alter von 15 Jahren starb seine Mutter. Danach lebte er zunächst bei seiner Tante, die jedoch kurze Zeit später ebenfalls verstarb, woraufhin er zu seinem Vater zog. Dieser war inzwischen schwer erkrankt. Nachdem er die staatliche Beamtenprüfung (kwagŏ) nicht bestanden hatte, zog er sich in den Chunghŭng-Tempel in der Nähe von Seoul zurück.

Politische Unruhen aufgrund der Herrschernachfolge sollten Kim Si-seups zukünftiges Leben stark beeinflussen. 1455 gelang es dem zweitältesten Sohn König Sejongs, Prinz Suyang (der spätere König Sejo), den rechtmäßigen Nachfolger Tanjong abzusetzen und selbst den Thron zu besteigen. Sechs Minister, die bei dem Versuch Danjongs Herrschaft wiederherzustellen, scheiterten, wurden wie viele andere Mitverschwörer mit dem Tode bestraft und Tanjong selbst wurde ermordet. Kim Si-seup, der Prinz Suyang ebenfalls nicht als neuen König anerkannte, wurde aus Protest heraus Mönch und begab sich auf Wanderschaft.

Während dieser Zeit entstanden rund 2200 Gedichte. 1465 ließ er sich am Südberg (namsan) in Kyŏngju nieder und schrieb dort die Prosasammlung Neue Geschichten vom Goldschildkrötenberg (금오신화,金鰲新話), die den Beginn der koreanischen Prosaliteratur markiert, jedoch noch in klassischem Chinesisch verfasst worden war. Nach Fertigstellung dieses Werkes lebte er eine Zeitlang in Seoul, bevor er sich erneut auf Wanderschaft begab.

1493 starb er im Muryang Tempel in der Provinz Süd-Ch'ungch'ŏ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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