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Yeong-su (1909 – 1979) was a South Korean writer.
Life
Oh Yeong-su was born in Eonyang, South Gyongsang Province. He went to Japan to attend an intensive program at Niniwa Middle School from which he graduated in 1935. He then attended Nihon University to study engineering, but caught beri-beri and was forced to withdraw and return to Korea. Around this time he published children's poems in the Chosun Ilbo and the Dong-a Ilbo. He returned to Japan in 1937, but quickly left again to avoid conscription into the Japanese imperial army. He returned and finally graduated from the Tokyo National Arts Academy.
Upon his return to Korea, he quickly traveled to Manchuria, a common pathway for Koreans seeking to escape Japanese colonial rule. Sometime thereafter he returned to Korea and married in 1942. Oh made his official literary debut in 1949, publishing "Namiwa yeotjangsu" (남이와 엿장수 Nami and the Taffyman) in Sincheonji, and winning the Seoul Shinmun New Writer's Award with the short story "Meoru" (머루 Wild Grapes).
In 1954 Oh moved to Seoul to help prepare the first edition of Hyundae Munhak. He quickly became the editor of the journal, where he worked until poor health forced him to stop in 1966. He eventually moved back to Ulsan, where he died at his home in 1979.
Writing
Oh Yeong-su is one of the second generation of twentieth-century Korean writers—those who by and large received their higher education in Japan and became active forces in the Korean literary world after Liberation. Like Hwang Sun-Won and Kim Dong-ni—two other representatives of that generation—Oh is well known for his portraits of country people.
Oh's first publications occurred on his first return trip to Korea (1935-7) during which time his children’s poetry was published in the Chosun Ilbo and the Dong-a Ilbo. In 1949 he published his first fictional works, "Nami and the Taffyman" and "Meoru." These were followed by "Atchiya" (아찌야 Uncle), published in Sabyong Mungo, and "Hwasandaegi" (화산댁이 The Woman from Hwasan) published in Munye, in 1952.
From 1954 to 1966, as editor of Hyundae Munhak, Oh Yeong-su contributed almost 30 stories, including "Sangchun" (상춘 Spring’s Awakening), "Hujo" (후조 Migratory Birds), and "Seomeseo on singmo" (섬에서 온 식모 Girl from an Island). Oh Yeong-su also wrote for other periodicals such as Sintaeyang, which published his work "Eotteon jugeum" (어떤 죽음 A Death at the Mill).
In 1955 Oh Yeong-su received the Prize of the Korean Literature Association, and the Asian Liberty Literature Prize in 1959. In 1968 he issued an omnibus of his work, the five volumes of which contained 90 stories. Three years before his death, Oh published his sixth collection, Hwanghon (황혼 Dusk). In 1978 he released his last anthology of stories and received an award from the Academy of Arts as well as a governmental Cultural Medal of Merit.
Sus primeras obras fueron poemas infantiles que publicó en su primer viaje de regreso a Corea entre 1935-1937 en los periódicos Chosun Ilbo y Dong-a Ilbo. En 1949 publicó su primer relato de ficción "Nami y el hombre de los caramelos", que salió en la revista Nuevo mundo. Poco después publicó "Uvas salvajes", que ganó un premio del periódico Seoul Shinmun.8 En 1952 publicó "Tío" en el Boletín literario de los soldados (Sabyong Mungo) y "La mujer de Hwasan" en Artes literarias (Munye). De 1954 a 1966, como editor de la revista Literatura moderna,9 contribuyó con casi 30 historias, incluyendo "Despertar de primavera", "Aves migratorias" y "La chica de la isla". También escribió para otras publicaciones, incluyendo el cuento "Una muerte en el molino". En 1955 recibió el premio de la Asociación Coreana de Literatura y el premio Asian Liberty de literatura en 1959.10 En 1968 publicó una antología de su obra, cinco volúmenes que contenían 90 historias.11 Tres años antes de su muerte, publicó su sexta obra de antología Crepúsculo. En 1978 publicó su última antología de relatos y recibió un premio de la Academia de Artes y la Medalla al Mérito Cultural del gobierno.
Les premières publications de Oh Yeong-su datent de son retour en Corée (1935-1937), époque où ses poèmes d'enfance sont publiés dans les journaux Chosun Ilbo et Donga Ilbo. En 1949, il publie sa première œuvre de fiction Nami et le marchand de bonbons (Namiwa yeotjangsu) qui sera suivi par Raisins muscats (Meoru)7. En 1952, il publie Oncle (Ajjiya) et La mère Hwasan (Hwasandaegi) dans des magazines littéraires. De 1954 à 1966, en tant qu'éditeur de la revue Littérature Contemporaine (Hyundae Munhak), il publie plus de trente récits, dont L'éveil du printemps (Taechun-gi), Les oiseaux migrateurs (Hujo), ou La fille au pair venue d'une île (Seomeseo on singmo). En 1955, il reçoit le prix de l'Association Coréenne de Littérature et le prix de la Littérature Libre d'Asie en 19592. En 1968, il publie un recueil de ses récits en cinq volumes contenant 90 histoires5. Trois ans avant sa mort, il publie un sixième volume intitulé Crépuscule. En 1978, il publie sa dernière anthologie de récits et reçoit le prix de l'académie des arts ainsi que l'ordre du mérite du Ministère de la Culture de Corée du Sud.
1914年2月11日、慶尚南道 蔚州郡に生まれる。慶南高校で教師として勤めながら文芸誌『백민(白民)』に『산골아이(山の子)』、『6월의 아침(6月の朝)』などを発表し、詩人として文学活動を始めた。1949年に雑誌『신천지(新天地)』に『고무신(ゴム靴)』を発表して小説家に転身した。1950年、ソウル新聞新春文芸に『머루(ヤマブドウ)』が当選され正式に登壇した。
呉の作品の傾向は大きく3つに分けることができる。第一に、子供の純粋な世界を描いた『남이와 엿장수(ナミと飴屋)』、『머루(ヤマブドウ)』、『대장간 두칠이(鍛冶屋ドチリ)』、『Y소년의 경우(Y少年の場合)』などの作品を挙げられる。大人にはない子供の温かくて純粋な心が童話のように描かれている。
第二は、人情世態を描きながらも現実を告発している『화산댁이(華山宅)』、『박학도(朴ハクド)』、『여우(きつね)』、『명암(明暗)』などの作品がある。都市の混濁した世態を醜いものだと見ていて、これを解決できるのは人間の美しい人情だと語っている。
第三は、自然や故郷に対する回帰意識が描かれている『갯마을(漁村)』、『메아리(こだま)』,『수련(睡蓮)』、『추풍령(秋風嶺)』などの作品がある。人間は生まれた本郷を忘れられない生き物で、根源的な故郷というのは自然だという。呉は典型的な短編小説作家として、韓国の素朴な叙情が作品の根本にあると評価されている。
오영수(1909~1979)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생애
오영수는 1909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호는 월주(月洲) 혹은 난계(蘭溪). 일본 오사카 니나와 중학 속성과를 나와 동경국민예술학원을 수료하였다.
1927년 《동아일보》에 동시 <병아리>를 발표한 이후 1949년 《신천지》에 〈남이와 엿장수〉(후에 ‘고무신’으로 개작)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으며, 1955년 《현대문학》의 창간과 더불어 편집장으로 20여 년간 일했다. 성품이 소박하고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만년에는 고향 근처로 낙향하여 요양과 창작에 집중했다.
1968년 작가는 90편 가량의 단편을 모아 《오영수전집》 전5권을 출간했다. 1979년 《문학사상》에 단편 〈특질고〉를 발표한 후, 필화를 겪고 절필했다.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 197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1979년 세상을 떠났다.
작품 세계
오영수는 전형적인 단편소설 작가로서 한국의 소박한 서정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자연과 고향, 농촌과 가난한 사람들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작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가난한 자, 서민, 변두리 인생이며, 도시인보다는 시골사람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지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며, 세련되었다기보다는 촌스러우며, 세상을 요령있게 살기보다는 세상에 떠밀려 다니는 인생이며, 현명하다기보다는 어리숙하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의리와 선의로 세상을 대하고, 온정을 베푸는 쪽이며, 서술자 역시 이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영수의 작품세계는 세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어른들이 가질 수 없는 어린이의 따스하고 순진한 마음을 그린 〈남이와 엿장수〉, 〈머루〉, 〈대장간 두칠이〉(1950), 〈Y소년의 경우〉(1959), 〈태춘기〉(1956)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화산댁이〉(1952), 〈박학도〉(1955), 〈명암(明暗)〉(1958), 〈후일담〉(1960) 등을 들 수 있다. 작가는 이 시기에 도시의 혼탁한 세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셋째는 자연 혹은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갯마을〉(1953), 〈메아리〉(1959), 〈은냇골 이야기〉(1961), 〈추풍령〉(1967), 〈망향수(望鄕愁)〉(1972) 등이 있다. 작가는 이들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요한 문제로 제기한다.
소설 〈갯마을〉은 1953년 《문예(文藝)》 제19호에 발표되었고, 1956년 중앙문화사에서 발간한 단편집 《갯마을》에 수록된 작품이다. 자연의 세계에 사는 토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갯마을’은 현실 사회와 단절된 공간이며 인간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린 이러한 작가의 경향은 현대사회의 인간상실의 문제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원시적 자연과 농촌 공동체에 대한 찬미로 이어진다.
주요 작품
1) 전집
《오영수전집》(전 5권), 현대서적, 1968.
《오영수대표작선집》(전7권), 동림출판사, 1977.
2) 소설집
《머루》, 문화당, 1954.
《갯마을》, 중앙문화사, 1956.
《명암(明暗)》, 백수사, 1958.
《메아리》, 백수사, 1960.
《수련(睡蓮)》, 정음사, 1965.
《황혼》, 창작과비평, 1976.
《잃어버린 도원(桃園)》 율성사, 1978.
수상 내역
197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8년 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