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 Jin-geon (1900 – 1943) was a Korean author.
Life
Hyun Jin-geon was born in Daegu in 1900. His pen name was Bing-heo. He was educated in Seoul, Tokyo, and Shanghai, where he studied German at Shanghai Hogang University.
In China, Hyun and fellow Korean writers Yi Sang-hwa and Baek Gi-man published the literary magazine Geohwa. His first work was published in 1920.
His official literary debut came with "Huisaenghwa" (희생화 Sacrificial Flowers) published in Kaebyok in November 1920. The work was not favorably received, but his subsequent works fared much better: he established his reputation as a major realist writer with "Bincheo" (빈처 Poor Man's Wife) and "Sul gwonhaneun sahoe" (술 권하는 사회 The Society that Drives You to Drink), both of which were published in 1921.
In 1922, with Park Chong-hwa, Hong Sa-yong, Park Yeong-hui, and Na Do-hyang, Hyun founded the literary journal Baekjo. After six years as a fiction writer, he then switched to journalism, working for the Chosun Ilbo, the Shidae Ilbo, and the Dong-a Ilbo. In 1940 he returned to fiction, serializing Heukchi Sangji (흑치상지 Heukchi Sangji), a novel about a Baekje general who fought against Tang invaders. This was deemed improper by Japanese censors and the work was never completed.
Hyun died on April 25, 1943.
Writing
Hyun devoted himself to creating realistic works. Beginning with "Unsu joeun nal" (운수 좋은 날 A Lucky Day), he spurned the confessional mode of the first-person narrative and instead wrote in the third person perspective in his attempt to portray life vividly and without subjectivity. Working in this manner he wrote some of his most popular works: "Bul" (불 Fire), "B-sagamgwa leobeu leteo" (B 사감과 러브레터 Proctor B and the Love Letter), and "Gohyang" (고향 Hometown). In 1931, he published his final short story, "Yeonaeui cheongsan" (연애의 청산 Giving up Love) in the November issue of Sin Dong-a, and moved to writing long historical novels, including Jeokdo (적도 Equator), Muyeong tap (무영탑 The Shadowless Pagoda), and Heukchi Sangji.
Hyun Jin-geon se dedicó a escribir obras realistas. Como se aprecia en "Un día de suerte" (Unsu joeun nal), rechazó la forma confesional de la narración en primera persona y escribió en tercera persona para describir la vida de un modo vívido y objetivo. Trabajando de esta manera escribió algunas de sus obras más conocidas: "El fuego" (Bul), "La supervisora B y la carta de amor" (B-sagamgwa leobeu leteo) y "El pueblo natal" (Gohyang). En 1931 publicó su última obra de ficción "El ladrón torpe" y empezó a escribir largas novelas históricas, como El ecuador (Jeokdo), La pagoda sin sombra (Muyeong tap) y Heukchisangji.
Hyeon Jin-geon est né à Daegu dans le sud de la péninsule le 9 août 1900. Il a eu une éducation internationale : il passe ses années de lycée à Tokyo et étudie l'allemand à l'université Hogang à Shanghai en Chine. Pendant ses années en Chine, Hyeon et certains de ses compères écrivains comme Lee Sanghwa et Baek Giman, publient une revue littéraire de cercle, intitulée Flambeau (Geohwa)1. Et son premier récit, Fleur sacrifiée (Huisaenghwa) voit le jour par la publication dans Gaebyeok en novembre 1920. Cette nouvelle ne reçut pas un accueil favorable, ce qui ne fut pas le cas des récits suivants : il acquiert le statut d'écrivain majeur avec Ma femme démunie (Bincheo) et La société qui vous incite à boire (Sul gwonhaneun sahoe), qui ont été publiés en 1921 et 1922. En 1922, avec la coopération des écrivains Park Jong-hwa, Hong Sa-yong, Park Yeong-hui, et Na Do-hyang, il fonde le journal littéraire Baekjo. Après six ans dans l'écriture, il change de cap et embrasse une carrière de journaliste en travaillant pour le journal Chosun Ilbo, le Shidae Ilbo, et le Dong-a Ilbo2. En 1940, il retourne à l'écriture avec une publication en série intitulée Heukchisangji, un héros de la guerre de l'époque Baekje qui s'est battu contre l'invasion des Tang. Cette série littéraire fut censurée par le gouvernement japonais en Corée, et ce travail ne put être terminé. Il décède le 21 mars 1943.
1900年、陰暦8月9日、慶尚北道に生まれる。4人兄弟の四男。父・玄慶運は郵便局長。三男の玄鼎健は上海の大韓民国臨時政府で活動中、日本官憲に逮捕され、平壌の監獄で獄死した。その兄の妻も夫の後を追って自殺、玄鎮健はこの兄の影響を最も強く受けていた。12歳のとき、渡日して東京の成城中学校に入学、1917年に卒業して帰国。翌1918年に上海に渡り滬江大学のドイツ語専門部に入学し、1920年に帰国。玄鎮健が文壇に出たのは父の従兄弟である玄僖運の紹介で1920年に雑誌『開闢』(11号)に載せた「犠牲花」であるが、習作の粋を出なかった作で、一般には「貧妻」を玄の処女作とみなしている。「貧妻」が評価され、徽文学校出の青年グループ、朴鍾和、羅彬、洪思容、李相和、朴英熙らと共に雑誌『白潮』の同人となり、「酒を勧める社会」「堕落者」などを発表していく。その文才は廉想渉の激賞を受けるほどであった。1936年、当時、東亜日報の社会部長であった玄は、ベルリンオリンピックのマラソンで優勝した孫基禎の日章旗を抹消した事件(日章旗抹消事件)のため、起訴され、1年の獄中生活を送る。その後、言論界を去った。玄は積極的な抗日運動には関わらなかったが、日本人とは付き合わず、朝鮮人とだけ親睦を交わした。兄を日帝に殺されたこともあり、玄は最後まで反日思想を固く守った。1943年、陰暦3月21日、逝去した。
Hyun Jin-geon wurde am 9. August 1900 in Taegu geboren. Mit zwölf ging er in Japan auf die Seijo-Mittelschule und später besuchte er die Shanghai-Universität, wo er Deutsche Literatur studierte. Nach seiner Heimkehr veröffentlichte er zusammen mit den koreanischen Autoren Lee Sanghwa und Paek Kiman ein Literaturmagazin namens Kŏhwa (거화, 炬火) [2]. Hyun Ji-geon arbeitete als Journalist bei der Zeitung Chosun Ilbo sowie später bei den Zeitungen Sidae Ilbo, Maeil Ilbo und Dong-a Ilbo. Außerdem war er ein Mitbegründer des literarischen Magazins Paekcho in den 1920ern[3]. Hyun Ji-geon, auch unter dem Künstlername Pinghŏ (빙허, 憑虛)[4] bekannt, ist ein bedeutender Autor der frühen modernen Literatur Koreas, besonders im Bereich der Kurzgeschichte. Mit dem Blick unter die Oberfläche zeigt er die damalige Realität auf. Seine erste Erzählung Opferung (희생화) wurde 1920 veröffentlicht, jedoch wurde ihr wenig Beachtung geschenkt. Erst die nachfolgenden Werke verhalfen ihm zu einem Ruf als bedeutender Autor des Realismus. Die Geschichten Verarmte Ehefrau (빈처) und Gesellschaft, die zum Trinken ermuntert (술 권하는 사회) basieren auf seinen eigenen Erfahrungen in einer Zeit kolonialer Unterdrückung, in der (nicht nur) die koreanischen Intellektuellen ihrer materiellen Basis und sozialen Identität beraubt wurden. Der Protagonist von Verarmte Ehefrau (빈처) muss zusehen, wie seine aristokratische Frau ihren Status verliert und verarmt. In solchen dunklen Zeiten wird der Alkoholkonsum paradoxerweise zu einer Möglichkeit der Flucht vor dieser Gesellschaft, die zum Trinken ermuntert. Beginnend mit Ein glückbringender Tag (운수좋은 날) wechselte der Schriftsteller vom Ich-Erzähler zur personalen Erzählsituation, um das Leben objektiver und anschaulicher darzustellen. Zu den Erzählungen, die in diesem Stil verfasst wurden, zählen unter anderem Feuer (불), Heimleiter B und der Liebesbrief (B사감과 러브레타) und Heimat (고향). Nachdem er ausschließlich Kurzgeschichten verfasst hatte, begann er im Jahr 1931 historische Romane zu schreiben, unter anderem Äquator (적도), Turm ohne Schatten (무영탑) und Hǔkch'i sangji (흑치상지). Grund für diesen Wandel war Hyun Ji-geons Absicht, in Zeiten einer zunehmenden japanischen Militarisierung koreanische nationale Identität zu erhalten. Diese Aufgabe beschäftigte ihn bis zu seinem Tod im Jahr 1943.
현진건(1900~1943)은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생애
현진건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빙허(憑虛).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의 세이조중학에 입학하여 1917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고, 1921년 발표한 〈빈처(貧妻)〉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22년 나도향, 박영희등과 함께 문예잡지《백조(白潮)》를 창간했고, 단편소설 〈타락자〉(1922), 〈운수 좋은 날〉(1924) 등을 발표하면서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를 개척한 작가가 되었다.
작가는 소설 창작 뿐 아니라 외국 소설을 번안과 번역하기도 했는데, 1922년 7월 《개벽》에 번안소설 〈고향〉(치리코프 원작)과 〈가을의 하룻밤〉(고르키 원작)을 발표했고, 1925년 5월 《시대일보》에 투르게네프의 단편 〈첫날 밤〉을 번역 발표했다.
작가는 《시대일보》와 《매일신보》의 기자로 근무하였고 1935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일할 때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1년 간 복역했다. 출옥 후 현진건은 《동아일보》를 사직하고 양계 사업을 시작했다가, 1939년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귀했다. 학예부장으로 일하면서 장편소설 《흑치상지》(1939. 10. 25.~1940. 1. 16.)를 연재했는데 총독부의 검열과 탄압으로 불과 58회 만에 강제 중단되었고, 이어 1926년에 출간된 그의 작품집인 《조선의 얼골》까지 총독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가 금지되었다.
1943년 세상을 떠났다. 2009년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진건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작품 세계
현진건의 작품들은 대부분 지식인의 관점에서 시대의 어려움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등이 있다. 작가는 후기로 갈수록 하층민의 관점에서 암울한 현실과 고통 받는 그들의 삶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렸다. 보여준다. 〈운수 좋은 날〉(1924)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현진건의 소설은 창작과정으로 보아 3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단계는 1920년대 초 체험소설이 중심이 되었던 시기이다.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1인칭소설로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은 작품들이다. 둘째 단계는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 좋은 날〉(1924), 〈사립정신병원장〉(1926) 등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을 썼던 시기다. 대체로 3인칭소설로 되어 있고, 작가의 경험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완전한 허구 속의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당대의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에 의하여 고발한 소설들이다. 셋째 단계는 역사소설을 집필한 시기이다. 《적도(赤道)》(1939), 《무영탑》( 1939) 등의 역사장편소설을 통하여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단편소설 〈타락자〉는 1922년 1월부터 3월까지 《개벽》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는 식민지치하에서 지식인이 겪었던 좌절과 타락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비교적 장황한 화제와 사건을 통해서 타락자와 기녀(妓女)의 애정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기녀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과 저주받아야 할 것은 사회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단편소설 〈사립정신병원장〉은 1926년 1월 《개벽》에 발표되었다. 물질적 빈곤을 겪던 주인공이 정신적으로도 파멸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이야기다. 작가는 비극적인 삶을 통해 당시 일제하 빈궁한 사람들의 한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빼앗긴 조국과 그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누구든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의 무능력한 모습들은 당시 19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일한 것으로서 작가는 이를 통해 생의 비극성이나 역사적 현실을 드러내었다.
장편소설 《무영탑》(1939)은 1938년 7월 20일부터 1939년 2월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으로 귀족적 인물이나 영웅이 아닌 일반 서민 아사달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아사달과 아사녀의 비극이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1930년대 당시, 군국주의의 억압 속에서 현실 인식의 방향을 역사로 돌린 당대의 역사소설들과 유사한 경향을 지니면서도 민족의 해방이라는 민족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동시에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복잡한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운명과 예술의 의미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장편 《흑치상지(黑齒常之)》(1939∼1940)와 《선화공주(善花公主)》(1941)가 미완으로 끝난 것에 비해 유일하게 완성된 역사소설로서 현진건의 역사의식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주요 작품
1) 전집
《현진건 문학 전집》(전 6권), 국학자료원, 2007.
2) 소설집
《지새는 안개》, 박문서관, 1925.
《조선의 얼골》, 글벗집, 1926.
《현진건 단편선》, 1941.
3) 장편소설
《적도(赤道)》, 박문서관, 1939.
《무영탑》, 박문서관, 1939.
4) 번역
《악마와 가치》, 박문서관, 1924.
5) 기행문
《단군성적순례(檀君聖跡巡禮)》, 예문각, 1948.
수상 내역
2005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